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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4

양계초는 리영희 선생께 우상일까 이성일까

양계초(량치차오 梁啓超 1874~1929)는 강유위(캉유웨이 康有爲 1858~1927)의 제자입니다. 나이 차이는 16살밖에 나지 않지만 둘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습니다. 이들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나름대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봉건제를 타파하고 개혁을 하는 데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한계는 당대에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는 그이들이 바탕삼았던 논리 가운데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핵심으로 삼은 사회진화론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들의 인종주의 관점도 잘못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백인종의 세계 지배 그리고 아시아 침략을 막기 위해 황인종끼리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폭력적일 수 ..

리영희 선생:고난 컸기에 영향력 깊고 넓다

2006년인가 사랑하는 후배 설미정이 제게 라는 책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선배가 기자라면 이런 책은 한 번 읽어봐야 하지 않나?" 이러면서 언론인 리영희(1929~2010) 선생의 일대를 담은 그 책을 제게 건넸던 것입니다. 저는 를 쉽게 읽지 못했습니다. 읽다가 몇 차례나 "어휴!" 한숨을 내쉬면서 덮었다가 다시 펼쳐 읽곤 해야 했습니다. 거기 담겨 있는 리영희 선생의 간난신고가 저로 하여금 한숨이 절로 나오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안겨준 고난 두 가지 지금도 잊히지 않고 기억이 나는 대목은(그보다 더한 대목도 있지만), 해직 기자 시절 월부 책장사를 하는데 노끈으로 묶은 책 뭉치를 들고 가다가 겨울철 얼음판에서 생고생을 하는 장면입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양한 정도로 리영희..

리영희 선생을 생각하며 장지연을 떠올리다

오늘 아침 눈을 뜬 후 가장 먼저 접한 기사는 '리영희 선생 타계'였습니다. 회사에 출근하니 후배기자가 대뜸 이렇게 묻더군요. "국장님 세대에게 리영희 선생은 어떤 분인가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에겐 사상의 은사였지. 그분의 남북 군사력 비교 논문을 통해 남북관계를 알게 됐고, 중국과 베트남의 진실은 물론 한국에 살고 있는 이북 5도민들이 왜 극우반공주의자일 수밖에 없는지를 알게 됐으며, 이리역 폭발사고와 핵무기를 비교한 글을 통해 반전반핵 사상을 갖게 해주신 분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저렇게 돌아가실 때까지 끝까지 소신을 지키며 일관된 삶을 살아오신 분이 드물다는 점에서 시대의 표상이라 할 수 있지. 당장 우리 지역만 해도 젊을 때 데모깨나 했다는 사람들 중에서 나이 들고 난 뒤 자..

언론인 리영희의 크고 넓고 깊은 영향력

"언론인 리영희는 진정한 특종 기자다. 세계 정치의 맥을 잡아 혈을 찔렀다. 그런 특종 기사가 부지기수다. 국내 질서는 휘어잡았으나 국제 질서에서 비루했던 이 땅의 권력자들을 끝없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언론인 리영희는 참된 지식을 궁구했고 또한 기꺼이 나누었다. 독서의 넓음과 깊음은 현대사를 통틀어 따를 자가 별로 없고, 그에 바탕한 글쓰기는 비겁한 삶을 각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글은 방황하는 지식인에게 양심을, 주린 민중에게 밥을 주었다. 밥이 되는 양심을 나눠 주었다." "언론인 리영희는 언론 밖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돈과 권력은 그의 영토에 둥지를 틀지 못했다. 가족을 돌볼 만큼의 돈과 권력도 허락하지 않았는데, 매정한 아들, 아비, 남편의 기억은 곧고 청빈한 그의 땅에서 유일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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