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어린이날에 맞춰 소개하는 청소년책

김훤주 2009. 5. 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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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두의 우연한 현실>. 청소년을 위한 단편 소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높은 학년 가운데 좀 올된 아이라면, 지금 당장은 잘 모르겠다면서도 재미나게 읽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 키우는 어른들도 내용의 구성이나 말글의 감각적 구사 등에서 충분히 매력을 느낄만한 책입니다.

'힙합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십대를 보내지 못했음을 한탄'하는, 제13회 전태일문학상과 제1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받고 지난해에는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기금까지 받아 챙긴 신진 작가 이현의 첫 소설집이랍니다.

'어떤 실연'을 비롯해 표제작인 '영두의 우연한 현실' 등 여섯 꼭지 단편이 모여 있습니다. 대산문화재단은 기금을 지원하면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청소년 문학의 특성은 소재의 폭이 아니라 이제 막 독립된 인격과 자기 세계를 형성해 나가기 위해 고투하는 청소년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데서 온다. 이 작품집은 발칙하다. 어른들이 금기시할 법한 소재나 주제에 접근하여 그것이 청소년 주인공에게 얼마나 핵심적인 문제인가를 보여" 준다고 합니다.

이어서 "SF적 기법을 도입하여 청소년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계의 절망적 모습을 날카롭게 드러내기도 한다"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표제작을 두고 하는 얘기입니다. 두 영두가 있습니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1991년 8월 23일 같은 날 태어났습니다. 언제쯤인가 서로 갈라져 다른 우주에 살다가 어느날 '우연히' 만난다는 것입니다.

한 영두는 아버지가 직장에서 손가락을 잘릴 뻔했으나 무사했고, 다른 한 영두는 아버지가 직장에서 손가락을 세 개 잘리고 말았습니다. 0.3cm 차이로 갈린 운명, '우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것이 두 영두를 완전 다르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연'은 되풀이됩니다. 한 영두 어머니가 차린 분식점은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다른 영두는 아버지가 해고된 뒤 트럭 야채 행상을 하다가 사람을 치어 망하고 말지요. 한 영두는 그래도 학교에서 3등급은 유지하고, 다른 한 영두는 '신창공고 일짱'으로 잘 나가 버렸습니다.

도대체 현실이란 무엇인지. 저 복잡하고 엄청나게 힘이 센 현실이 과연 실체가 있는 철벽인지. 우리가 절대적이라 생각하고 거기 맞춰보려고 또는 벗어나 보려고 아득바득 애써야 하는 대상인지. '고딩'='고삐리'가 묻고 있습니다. 사계절. 210쪽. 9000원.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 4월 30일치 13면에 쓴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영두의 우연한 현실 - 10점
이현 지음/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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