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언론노조, 영원한 양치기소년일까?

김훤주 2008. 10. 3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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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이 21일부터 23일까지 벌인 찬반투표에서 86% 참여 82% 찬성으로 전면 파업을 가결했습니다. 상당히 높은 참여율과 찬성률을 보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최상재 위원장이 결정하는 대로 △YTN 낙하산 구본홍 반대와 공정방송 사수 △지상파 방송 장악하려는 방송법 시행령 개악 반대를 위해 파업을 벌여야 하게 됐습니다.

이밖에도 △조중동 방송을 위한 신문·방송 겸영 허용 반대 △지역신문 다 죽이는 신문 관련 법안 개악 반대 △지역·종교방송 말살하는 민영 미디어렙 도입 반대가 더 있습니다.  
 
1. 이번에도 그들의 비웃음거리가 돼야 하나?

언론노조 전면 파업, 굉장한 사건입니다. KBS는 사실상 탈퇴가 돼 있으니 그렇다 쳐도 MBC·SBS·EBS·CBS· YTN만 파업을 해도 대단할 것입니다. 여기에 한겨레·경향신문·서울신문·헤럴드미디어·한국일보 등이 더해지면 더 엄청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세상에서는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노조 찬반투표를 했는지 어떤지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왜 이럴까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언론노조가 전면파업을 실행하리라 보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된 까닭은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조직력이 전면파업을 할만큼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가 지금처럼 거세차게 우리를 몰아치는데 아무 대응도 않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크든작든 파업을 해야 합니다. 만약 이번에도 우리가 지난날 했던 것처럼 말로만 파업을 하고 간부 몇몇만 서울에 모여서 집회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면 우리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저이들의 비웃음거리만 되는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2. 언론노조는 파업하면 안 되는 노동조합인가?

지금 상황은 조중동을 뺀 대다수 신문·방송은 죄다 죽거나 다치게 생겼습니다. 재벌의 방송 진입 하한선 축소, 신문·방송 겸영 금지 철폐,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고사와 민영 방송광고업체 난립 같은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정책이 이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안팎에서 우리 언론노조의 전면 파업 찬반 투표 가결을 두고 실행으로 옮겨질 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투쟁 형태가 반드시 전면 파업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효과 면에서 뛰어나면서도 우리 의지가 굳건함을 보여줄 수만 있으면 그만입니다.

어쨌거나 우리 언론노조 소속 모든 지부와 본부가 하나같이 투쟁에 나서는 일은 누구도 생각지 못하거나 또는 안 합니다. 어떤 지부·본부는 할 것이고 어떤 지부·본부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조직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찬반투표 뒤 지도부는 걸맞게 단계별로 파업을 비롯한 투쟁 지침을 세워 제출했습니다만.)

그래도 지금은 긴 말이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와 본부 사무처 성원들은 본부·지부 조직들을 만나서 파업할 수 있는 의지력과 조직력을 갖추도록 다그쳐야 합니다. 지부장·본부장을 비롯한 집행간부들은 조합원들을 추슬러야 합니다.(물론 이것들은 제 생각일 뿐입니다.)

아울러 투쟁의 내용과 형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교육 선전할 콘텐츠를 챙겨야 합니다. 서울에서 한 번 모이자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난 7월 23일에 그런 수준에서 경고 파업을 한 차례 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7월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치른 경고파업 전진대회.

경고파업과 다를 바 없는 본 파업이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 경고파업은 이미 실패로 판명이 났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경고파업 이후로도 저이들은 자기 정책을 거의 바꾸지 않고 밀어붙였습니다.)

3. 언론노조의 양치기 소년 운명은 이제 그만

이쯤에서 10월 24일 오후 열린 자유언론실천선언 34주년 기념식 생각이 나는군요. 이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정동익 위원장이 이렇게 말씀했다지요. 우리가 양치기 소년이 되면 안 되는 가장 분명한 이유를 저는 여기에서 봅니다.

“언론 자유를 지켜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하기 이전에 모든 언론인이 연대하여 가열찬 투쟁을 벌여야만 언론 자유는 지켜낼 수 있고 그렇게 할 때라야만 반드시 국민들이 함께 할 것이다.” 여기서 ‘모든 언론인’은, ‘모든 언론노조 조합원’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물론 파업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는다면, 아마 백 개 정도는 쉽게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매체를 갖고 있으면서 왜 보도를 멈추려 하느냐가 가장 큰 까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역량입니다. 우리가 보도를 멈추는 방법 말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언론 장악 책동의 심각함을 알릴 수 있는 수단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최소한 열흘 정도, MBC SBS YTN 같은 방송이 하루 한 꼭지 이상씩 언론 장악 책동의 심각함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내보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한겨레와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국민일보 한국일보가 마찬가지 하루 한 꼭지 이상 같은 주제 기획기사를 지면에 깔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를 비롯해 부산일보와 매일신문과 경인일보 등 언론노조에 소속돼 있는 지역 일간지 15개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또는 우리 언론노조가 한 달 남짓 날마다 500명 가량씩 조합원을 동원해 서울 도심에서 시위를 벌일 수 있을까요?

이처럼 우리 역량이 아주 뛰어나다면, ‘모든 언론인이 연대하여 가열찬 투쟁을 벌이는 방법’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조건에서는, 언론노조의 모든 역량을 보도(또는 보도를 위한 노동)를 멈추는 데로 모으는 수밖에 없다고 저는 봅니다.

게다가 우리는 여태 파업 찬반 투표만 하고 실제 파업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조합원조차 자기가 들어 있는 언론노조를 ‘종이 고양이’로도 여기지 않는 실정입니다. 이것까지 감안한다면, 우리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전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 매체 비평 전문 인터넷 매체 <미디어스>에 10월 27일 투고한 글을 꽤 고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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