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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5000원 짜리 희망연대 백서의 의미

기록하는 사람 2020. 1. 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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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다음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친독재’라는 키워드를 넣어본다. ‘다음 책’에서는 유일하게, ‘네이버 책’에서는 6권의 책 중 맨 위에 <친일 친독재가 어깨 펴고 사는 나라>가 나온다. ‘친일’이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약 70종의 책이 나오는데, 물론 그 속에도 이 책이 포함되어 있다.

클릭하면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등 8개 인터넷서점에서 판매 중이라는 안내와 함께 책 소개, 저자 소개, 목차, 출판사 서평 등이 펼쳐진다.

이 책에는 ‘열린사회희망연대 20주년 기념 백서’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백서(白書)’란 말은 17세기 영국 정부가 발간한 외교정책 보고서에서 나왔다. 즉 정부가 펴낸 공식보고서의 표지가 흰색이었던 데서 비롯됐다. 이후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단체가 내는 활동보고서에도 ‘백서’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일반화했다.

지역사회 20년 역사투쟁 담아낸 기록물
유산 가치 부여한 판매·유통 결정 공감

책의 성격이 이러하다 보니 ‘백서’는 대개 ‘비매품’으로 발간된다. 비매품은 서점을 통해 유통(판매)되지 않는다. 유통되지 않는 책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검색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디지털 시대에는 ‘없는 책’이나 마찬가지 신세인 셈이다.

따라서 비매품은 그 책을 기증 또는 선물 받은 특정한 사람들 외에는 그런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 수 없다. 특히 세월이 지나 먼 훗날 ‘친일 친독재’ 문제를 연구하려는 학자에게도 그 책은 참고문헌이 될 수 없다. 검색에도 나오지 않고 구할 수도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열린사회희망연대 20주년 기념 백서가 포털에서 쉽게 검색되는 것은 ‘비매품’이 아니라 2만 5000원의 가격이 매겨져 판매·유통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 국제 표준 도서 번호)과 CIP(Cataloging In Publication : 출판예정도서목록), 그리고 바코드를 부여받아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 공식 납본, 등록된다. 즉 지구상에서 인류가 남긴 도서 유산으로 족보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단체가 백서에 가격을 붙여 유통하기로 한 결정이 탁월했다고 본다. 이 책은 또한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독재권력에 빌붙어 영화를 누렸던 기회주의 시인 이은상을 비롯, 자신의 출세를 위해 동포 청년들을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몬 친일작가 조두남, 이원수, 유치환, 그리고 남인수, 반야월 등 친일음악가들을 둘러싼 지역사회의 20년 역사투쟁을 담고 있는 소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대개 이러한 역사 기록물은 체계적으로 수집, 보존하지 않으면 수십 년만 지나도 멸실되기 일쑤다. 그래서 이런 백서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지역에는 열린사회희망연대 외에도 의미 있는 활동을 펼쳐온 민간단체가 많다. 그런 단체에서도 이렇게 유통되는 백서 발간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기억은 잊히지만 기록은 역사가 된다. 역사의 승자는 기록하는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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