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청소년 희망탐방대-표충사·용회마을
밀양 출신 역사 인물 가운데 점필재 김종직 다음 시기는 사명대사다. 학교에는 대개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신사임당의 동상이 있는데 밀양에는 사명대사 동상도 적지 않다. 어떤 학교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운동장 한편으로 밀어내고 한가운데 사명대사 동상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사명대사가 크게 대접받는 고장이 밀양이다.
사명대사는 밀양 출신으로 임진왜란을 맞아 스승 서산대사와 함께 승병을 일으켰다. 뒤에는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노예로 팔려나갈 조선인 포로들을 온전하게 데려오기도 했다. 이런 사명대사를 표충사가 모시고 있다. 표충사가 사명대사 이전에는 영정사였다. 신령스러운(靈) 우물(井)이 있는 절간(寺)이 표창할(表) 만큼 충성스러운(忠) 절간(寺)으로 바뀐 것이다. 표충사는 유교식으로 사명대사를 모시는 사당 표충사(祠)와 서원 표충서원도 품었다.
하지만 사명대사 얘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구구절절 늘어놓는 설명은 아이들에게 흥미를 잃게 한다.
표충사에서 한나절 지내면서 여기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지 온 몸으로 느끼게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표충사를 멋지게 기억하고 아끼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으로 족하다. 관심과 애정이 생기면 궁금해서라도 알아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늘에서 표충사 삼층석탑을 그리는 학생들.
대신 미션이 둘 주어졌다. 표충사에서 볼 수 있는 물건·건물·풍경 가운데 하나를 자세히 그리기가 첫째다.
둘째는 둘러보면서 궁금한 것을 하나 찾아 질문 만들기다. 들머리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린 아이들은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즐비하게 늘어선 아름드리 참나무에서는 도토리들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내고 살짝 단풍이 든 잎사귀가 하늘하늘 내려앉는다. 재잘재잘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정문 수충루 앞이다.
아이들은 곧바로 흩어져 그리기 시작했다. 사천왕 발 밑에 깔려 있는 여자 귀신, 우람한 삼층석탑, 멋지면서 편안한 누각 우화루의 현판, 대광전 부처님 손가락, 용마루가 듬직한 전각 지붕, 염불을 하는 스님의 뒷모습, 안팎에 그려진 이런저런 불화 등등….
사천왕문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
저렇게 한 번 관심을 집중하여 자세하게 살펴보고 그리면 평생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우화루 너른 자리에 모아 펼쳤다. 삐뚤빼뚤한 그림 앞에서는 웃기도 하고 제법 잘 그린 작품을 볼 때는 감탄도 터뜨린다. 솜씨가 뛰어난 그림보다는 관점이 남다르거나 특징을 잘 잡아낸 그림을 골라 문화상품권을 하나씩 선물했다.
질의·응답은 사천왕문 아래 그늘로 옮겨 진행했다. "스님이 머리를 깎는 이유가 뭐예요?" "사천왕 아래에 왜 여자가 밟혀 있어요?" "부처님 손 모양은 왜 저마다 달라요?" "정문 오른편에 있는 허름한 전각은 무엇이에요?" "다른 전각의 부처님은 황금색인데 팔상전 부처님만 하얗던데 무슨 까닭이 있어요?" "건물이 모두 화려하게 색칠이 되어 있는데 왜 그래요?" 등등 갖은 질문이 쏟아진다.
몸소 둘러보며 찾아낸 궁금증이다 보니 설명에 집중하는 정도가 남달랐다. 아이든 어른이든 거저 주어지는 것보다는 발품 팔아 스스로 찾아낸 것에 관심이 높은 법이니까.
우화루에서 경치를 감상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다음은 단장숲으로 유명한 용회마을이다. 2005년부터 76만5000볼트 초고압송전철탑 설치 반대 운동을 줄곧 벌여온 마을 가운데 하나다. 밀양 할매·할배들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저항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해방 이후 밀양에서 일어난 최장기 대중운동이라 할 만하다. 물론 철탑은 설치되고 말았다. 부산·울산 바닷가의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로 보내기 위한 것이다.
원자력발전(핵발전)이 위험하다는 것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발전→송전→소비 과정도 불공정하다. 위험은 바닷가 주민들에게 지우고 그 혜택은 수도권이나 대도시가 누리는 것이 핵발전이다.
발전소에서 대도시로 이어지는 초고압송전선로는 농촌 주민들 땅값을 폭락시키고 전자파와 소음 피해도 끼친다. 이전 정부는 이런 주민들의 움직임을 억압하고 고통을 외면해 왔다.
고준길·구미현 어른 부부 댁에서 주민들 활동 동영상을 보았다.
마을에 철탑이 들어서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심란한 표정도 나온다. 경찰은 주민들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당연한 믿음을 깨뜨리는 장면도 나온다. 화면에 고준길·구미현 어른 부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는 친구도 있고 쇠사슬을 목에 걸고 끌려나오는 장면에서 훌쩍거리는 친구도 있다.
지금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주민들을 존중하면서 그 요구를 나름 받아들이고 있다. 부산·울산의 신고리 5·6호기를 계속 지을까 말까 결정을 여론에 따라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하여 가동하는 공론화위원회는 예전 같으면 생각도 할 수 없던 것이다. 이렇게 바뀐 바탕에는 10년 넘게 싸워온 밀양 주민들의 노력과 희생이 깔려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정책에 작지 않은 변화가 만들어졌다.
밀양청소년희망탐방대는 이렇게 밀양의 현재진행형 역사 현장도 찾았다. 여기에 '원자력발전 도전 골든벨'을 슬쩍 곁들여 재미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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