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역차량정비고는 등록문화재 제202호로 근대문화유산이다. 일제강점기 지어진 건축물로 진주역 폐역(진주시 강남동 245-225)에 있다. 한국철도공사(이른바 코레일)가 소유하고 있는데 붉은 벽돌 건물에 화강암이 조금 더해졌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풍인 건축물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서양식 건축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꽤 높다랗고 튼튼한데다 고풍스러운 느낌까지 준다. 오른쪽 위편에는 살짝 홈이 패여 있는 자죽마다 풀이 자라고 있는데 이는 6.25전쟁 당시 총탄 자국이라 한다. 일제 강점에 더해 한국전쟁의 역사까지 함께하는 현장이다.
진주역차량정비고는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린다. 특히 가을과 겨울에는 바로 옆에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들이 한껏 멋을 더해준다. 살짝 이국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어쩐지 편안한 한편으로 어색하지 않은 현대풍이기도 하다.
또 안에 들어가면 주위가 좀 어둑어둑해지면서 실제로 철도차량을 점검하고 고치는 현장이라는 느낌이 더해진다. 운행을 마친 또는 운행을 시작할 철도차량을 여기 집어넣어 어디 고장 난 데는 없는지 살폈고 고장 난 데가 있으면 바로잡아 고쳤다.
진주역차량정비고는 바깥에서 보아도 그럴 듯하고 안쪽에서 보아도 그럴 듯하다. 그런 덕분에 무슨무슨 영화도 여기서 찍고 어떤 잘나가는 가수의 뮤비도 여기서 찍었을 정도라고 한다.
포크가수 권나무가 진주역차량정비고에서 찍은 앨범 사진.
진주 풍부한 물산에 대한 일제 수탈의 증거물
진주역차량정비고는 일제가 지었다. 삼랑진에서 시작하는 경전선을 깔면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철도 노선 구간은 경인선이다. 뒤이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선과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경의선이 만들어졌는데 경전선은 이 경부·경의선과 거의 동시에 깔렸다.
1905년 당시는 마산까지였고 1923년에 진주까지 깔렸다. 진주와 그 인근에서 나는 물산이 그만큼 풍부했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풍부한 물산을 수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는 해방될 때까지 20년 넘게 더 깔지 않았다.
자동차가 가로막고 있는 지금 모습.
자동차 따위가 없어 편하게 구경하는 옛날 모습.
일제는 왜 진주까지만 철도를 놓고 더 이상 서진(西進)하지 않았을까? 쉽게 말하면 더 이상 철도를 깔 이유가 없었다. 철도를 까는 비용보다 철도를 깔아서 싣고 수탈해 나오는 곡식·물건이 더 많아야 하는데 진주 서쪽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진주역에 차량정비고가 설치된 이유라 하겠다. 일제강점기 진주는 오랫동안 경전선 철도의 종점이었고 차량정비고는 이런 종점(또는 주요 결절점)에 주로 설치되었다. 그러니까 진주역 차량정비고는 진주와 그 인근의 풍부한 물산과 그에 대한 일제 수탈의 증거다.
경전선이 경상도(慶)와 전라도(全)를 잇게 된 것은 한참 세월이 지난 다음이다.(처음에는 ‘경전선’이라는 말조차 쓰이지 않았다. 마산선 또는 진주선이라 했고 광주 송정역에서 비롯해 여수까지 이어지던 철도 구간은 광주선이라 했다.) 경전선은 해방 이후 1968년에야 순천과 진주가 이어졌다.
한국철도공사의 학대
이와 같은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는 진주역 차량정비고가 완전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다. 소유자인 한국철도공사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거의 학대 수준이다. 없는 물건 취급이다.
바로 옆 건물에는 경남누리스타(국민행복)봉사단과 사단법인 좋은사회만들기운동본부 간판이 걸려 있다. 누리스타봉사단은 알려진대로 옛적 새누리당의 외곽단체(였)다. 좋은사회 무슨 본부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서 키우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7월 10일 찾아갔더니 개가 네 마리가 설쳐 대고 있었다. 진양고등학교 학생들과 진주역사문화탐방을 하는 나들이였는데 소리내어 짖고 있었다. 두 마리는 묶여 있었고 두 마리는 묶여 있지 않았다.
어찌나 기세가 사납던지 여자아이들이 움찔움찔할 정도였고 설명하는 목소리가 파묻힐 지경이었다. 쓰레기는 곳곳에 버려진 채 뒹굴고 있었고 거기서 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바로 앞에는 거기가 정식 주차장은 아닐 텐데도 자동차가 석 대가 세워져 있어서 풍광을 제대로 보고 누릴 수 없었다. 안에도 들어가 보았더니 그동안 청소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는 모양인지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위험한 요소도 곳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문화재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소유
문화재는 아는 대로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의 공동 소유다. 개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우리 사회가 시대를 살아내면서 공동으로 창출해낸 역사와 문화의 산물로 여겨지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옆에 줄지어 있는 은행나무에 곱게 단풍이 든다.
지금 그 은행나무 아래에는 이렇게 개들이 설쳐대고 있다.
그래서 소유자는 선량한 관리자 노릇을 제대로 하도록 되어 있다. 소유자가 사인(私人)이 아닌 공공기관이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진주역 차량정비고의 소유자인 한국철도공사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진주역차량정비고가 있는 옛 진주역이 폐역이 되어서 고정 인력을 배치하기가 어려운 줄은 나름 짐작이 된다. 하지만 이는 인력의 문제가 아니고 관심과 의지의 문제다.
자동차는 주차공간에 세우도록 하고 쓰레기는 나뒹굴지 않게 하고 건물을 빌린 사람한테는 빌린 공간만 쓰게 하고(그러니까 개들을 함부로 내놓지 못하도록 하고) 한 주일에 한 차례 정도 찾아가서 청소를 하면 일단은 해결이 되는 문제다.
그러나 진주역차량정비고는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에 걸맞은 대접은커녕 최소한으로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진주역차량정비고는 국가의 문화재를 우리 모두의 문화재를 공공기관이 앞장서 학대하는 현장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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