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우포늪 드높은 품격 좀먹는 저질 습지 복원

김훤주 2017. 6. 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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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정논 가득 채운 부들의 장관 


201512월이었다. 우포늪에 들렀다가 색다른 풍경을 보았다. 난생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부들이었다나는 보고 나서 장관이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카메라 다루는 솜씨가 좋지 않아 지금 이 사진으로는 그 때 그 느낌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창녕 유어면 세진리 우포늪생태관이 있는 주차장 근처였다. 가장 바깥 주차장 끄트머리(지금은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들어서 있다.)에 자동차를 세우고 우포늪생태관 쪽 말고 창녕우포늪따오기복원센터 쪽으로 가니까 나왔다. 거기서 따오기복원센터 방향으로 가지 말고 쪽 바로 가서 마을 앞을 지나면 나오는 야트막한 산과 산 사이에서 보았다


빈틈없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는 부들, 지는 해가 흩뿌리는 빛을 역광으로 받으며 바람 따라 흔들리는 부들, 처음에는 핫도그 모양으로 단단하게 맺혀 있던 씨앗들이 낱낱이 흩어지면서 바람에 날아가는 부들이 거기에 있었다아래는 물이 조금 흐르고 있었고 바닥 대부분은 습지답게 젖어 있었다



돌아와서 나는 여러 사람한테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풍경 본 적 있느냐 물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 부들들이 창녕 우포늪의 새로운 명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묵정논도 습지인데 웬 복원


그러던 것이 지난해 여름에 갔더니 포클레인이 들어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알 만한 사람한테 물었더니 습지 복원 작업이라고 했다. 원래 습지였다가 1930년대인가 논으로 개간하였는데 요즘 들어 농사를 짓지 않는 묵정논이 되어 나라가 사들여 습지로 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이상하고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논도 습지고 묵정논도 습지가 아니더냐? 논을 내버려두면 그게 (습지가 아닌) 마른 밭이 되겠느냐? 물론 물기가 모자라거나 흙·모래가 퇴적되면 그리 되겠지만 여기는 바탕이 그런 땅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창녕군인지 낙동강유역환경청인지는 모르지만 작업 주체도 나름 생각이 있겠거니 싶어서 나는 더 이상 알아보지 않았다. 이것 아니라도 다른 일로 바빴고 그런 쪽으로 지식·상식이 풍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우포늪 주변 세진마을과 쪽지벌 사이 습지 복원 대상 지역.


원래 모습과 다른 습지 복원 


그러나 올해 들어 526일에 거기서 본 풍경은 정말 아니었다. 이태 전 겨울 그 무성했던 부들은 한 포기도 남김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옛날 논으로 개간하려고 덮어씌웠던 부분도 덜어내었지 싶었다.(이것까지는 어거지로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가운데는 꺼져 있었고 바깥으로 갈수록 높아져 있었다. 움푹하게 꺼진 데는 바닥이 원래 습지였지 싶었고 거기는 물이 고여 있었다. 가장자리로는 진득진득한 뻘흙이 아니라 모래처럼 뽀송뽀송한 흙이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목적으로 높낮이를 주었을 것이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는 커다란 바위들도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풍경을 단조롭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여겨졌다. 장삿속인지 모르겠는데 2층짜리 정자도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었다.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어색하고 생뚱맞아 보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이것은 습지 복원이 아니다.(물론 자연생태는 대단히 힘이 세어서 이런 어설픈 풍경조차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훌륭한 경관을 갖추고 멋진 생태계를 이룰 것이다.) 이것은 수변공원 조성이다.


무엇보다도 저기 가장자리에 깔려 있는 모레흙 또는 마사토는 원래 모습과 무관하다논으로 바뀌고 나서도 오랫동안 수해를 겪어야 했던 땅이다. 1970년대 후반 들어서야 수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물빠짐이 좋지 않아 이모작은 어려웠고 벼농사밖에 짓지 못했다. 그러다 일손이 모자라게 되면서 묵정논으로 남게 되었다.(부들은 묵정논임을 알려주는 지표식물 비슷한 것이다.) 모레나 마사토였다면 물빠짐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진득진득한 뻘흙이었기에 물빠짐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생명이 살고 있었던 묵정논 


이렇게 복원이 되면서 이전에 있었던 묵정논이 주변 생태계와 형성했던 관계도 사라지거나 달라졌다. 앞에서 말한 묵정논 우거진 부들 수풀이 사람한테는 그냥 부들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습지 생물들한테는 삶터였고 보금자리였다


갖은 벌레와 곤충들이 식물에 기대어 살았고 물고기와 고동 등은 바닥을 적시거나 고여 있던 물에서 생명을 이어갔다. 부들 사이사이 덤불은 작은 포유류와 새들한테 훌륭한 둥지와 먹이터가 되었다. 고라니·노루·멧돼지··담비 들도 여기를 찾아 물을 마시거나 풀을 뜯거나 다른 먹이를 얻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일본 도요오카시에서는 묵정논을 원래 습지로 복원하지 않는다. 그대로 두고 조금씩 식물을 더하거나 빼고 조금씩 물길을 구부리거나 곧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근거는 세밀하게 진행하는 조사·관찰을 통하여 얻는다


묵정논 또한 (묵정논이 되기 전에 있었던 원래 습지와 마찬가지로) 주변 생태계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형성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것이 창녕 우포늪 세진마을 근처 쪽지벌 바로 옆 묵정논을 습지로 복원하는 과정에서는 사라지고 없다


묵정논과 함께 사라진 습지의 역사


그러다 보니 원래 습지가 겪었던 역사까지 이제는 사라져서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여기를 처음 찾는 사람들이 옛날 100년 전 개간하기 전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까? 또는 80년 전 40년 전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니면 가장 최근의 묵정논 모습이라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덕지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당연히 그런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다. 습지와 인간이 교섭하면서 만들어내는 습지의 역사가 사라지고 보니 습지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과 상상력도 덩달아 줄어들고 말았다


나는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옛날 모습을 조금이라도 남겨 놓으면 좋겠다.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습지의 운명이 좌우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상력의 크기가 미래 인간 행동의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여기 복원된 습지를 보면서 드는 느낌은 이렇다. 아쉽고 아쉬운 습지 복원이다. 원래 모습을 되찾지 못한 습지 복원이다. 묵정논 모습도 지워버린 습지 복원이다. 무슨 수변공원처럼 만들어놓은 습지 복원이다. 우포늪 드높은 품격을 좀먹는 습지 복원이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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