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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언론

김은혜 전 MBC 기자의 책을 읽는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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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후배한테서 책을 한 권 선물로 받았습니다. 김은혜가 쓴 <나는 감동을 전하는 기자이고 싶다>입니다. 김은혜가 본받을만한 기자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내용이 재미있기도 했고, 선물한 사람에 대한 예의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서, 저는 이 책을 다 읽었습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하게 하자,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등등 김은혜의 의지에 제가 반대할 까닭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대차게 취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에 대해서도 크게 할 말은 없는 편입니다.

성찰 또는 반성이 없는 김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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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니까, 어떤 갑갑함 그리고 괴로움이 밀려왔습니다. 성찰 또는 반성이 없는 데에 원인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속살이 드러나는 절실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인 셈입니다.

일선 경찰서에서 경찰관과 어울린 얘기서는 이를테면 이렇게 해서 제압했다는 식으로 쓴 글이 많습니다. 나이가 엄청 많은 이들 경찰관에 대한 말투는 대부분 반말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명백한 잘못에 대한 반성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81쪽에서 두어 줄 언급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경찰서에 어떻게 입장해야 하는지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방법이 있다. 지금은 구시대적인 특권의식의 표상이라 해서 잘 통용되지 않고 기자와 형사 모두 신사적으로 나가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당찬 입장식은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배포가 얼마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원칙과 어긋나게 취재한 데에서도, 반성은 없고 오히려 '시원하게 해치웠다.'는 자랑이 넘칩니다.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당시 일입니다. "지하에 미화 담당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10여 명이 갇혀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기자들의 출입은 금지되었다. 추가 붕괴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33-34쪽)

그런데도 김은혜는 "지하 입구를 통제하기 위해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분위기가 산만해지는 틈을 타 진입하려는 찰나, "저 기자 MBC 막아!"라는 소리와 함께 우악스런 손들이 나의 팔을 잡았다. 순간, "어딜 잡아!"라고 소리지르며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놀란 눈치다. 손의 힘도 빠졌다. 이 틈을 놓칠세라 나는 바로 입구로 뛰어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한 방송사 MBC로만 보면 생생한 현장을 단독 보도했기 때문에 좋은 일일는지 모르겠지만, 전체로 볼 때는 아무 실익도 없고 오히려 위험을 더욱 키우기만 하는 소모적이고 소영웅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책을 출판한 때는 2001년

도둑 취재도 반성이 없습니다. 박한상 부모 살해 사건입니다. "흰 서류 봉투를 가져오더니 그대로 서랍 속에 감춰놓고 퇴근하는 것이었다. …… 다음날 새벽 세 시, 서랍을 보니 자물쇠로 잠겨 있다. …… 열 번째 시도만에 자물쇠가 덜컥 열렸다. 서랍 안에 있는 하얀 종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식 결과였다. ……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보게 되긴 했지만 꼭 알려야 할 뉴스라고 판단했다."(107-108쪽)

이런 일들은 물론 자기가 현장을 취재하던 95년 96년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관행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이 나온 때가 2001년 7월이니, 그 6-7년 사이에 이런 일들은 잘못된 일로 규정되도록 바뀌었습니다.  이를 제대로 가늠해 반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생각을 저는 하고 있습니다.

수습기자를 다룬 이야기도 있습니다. 김은혜는 137-138쪽에서 "도제관계 같은 훈련은,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대를 이어가며 여러 일화를 보태 더욱 가혹해지는 것처럼, 기수가 내려갈수록 다욱 강퍅해지는 묘한 법칙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얄궂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 선배들은 나를 여자로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똑같은 기자로 간주해 험한 취재를 지시하곤 했다. 그렇게 까다롭고 무서운 선배일수록 배울 점이 많았다는 것을……. 계속 질타하고 가르치고 감독하는 그 입장이 여간 고달프지 않았을 텐데 결국 모두 후배들을 키워주는 선배의 애정이었음을 느끼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앞서서 김은혜는 수습 중인 후배들에게 퍼부은 "야, 뭐라고 임마?" "야, 이 ××야. 어디서 배운 말버릇이야!?" "늦으면 뼈도 못 추스릴 줄 알앗!" "그것도 몰라? 도대체 하루 종일 뭐 취재한 거야! 그렇게 해 놓고 밥 먹고 싶어?" 따위 말들을 곳곳에서 자랑스레 늘어놓습니다.

132쪽에서 적은, "나는 일단 밑으로 들어오는 후배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초죽음으로 만드는 공포의 조련사로 악명을 날리고 있었다. 필요하면 소리치고, 욕설도 주저함이 없었다."는 부분을 입증하기 위해서인가 봅니다.

2000년 7월 기자 남대문서 행패 사건

그러고 나서 김은혜는 138쪽에서 "후배들은 이러한 여섯달 간의 수습기간을 거치면 어엿한 기자가 된다. 어린 자식처럼 취급받는 '수습' 딱지가 떨어지는 셈이다. 무자비하고 거칠기 이를 데 없었던 지난 수습 기간을 무사히 통과한 것을 축하해 주고 그간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 주는 술자리를 마련하면서 나는 그들과 회포를 푼다."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2000년 7월 당시 MBC 수습기자가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저지른 잘못이 떠오릅니다. 김은혜의 말처럼 수습 딱지를 떼는 술을 밤새도록 마신 한 친구가, 새벽 4시께 형사계 당직실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습니다. 기물과 집기를 부수었고 근무 중인 경찰관을 때렸습니다.(보도는 거의 되지 않았습니다. 매체들의 침묵의 카르텔이죠.)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수갑을 채워 체포하자 행패는 더욱 거세어졌습니다. 나중에 수사과장 지시로 수갑을 풀어줬는데, 이 수습 딱지를 갓 뗀 기자는 형사계장 계장실 바닥과 화분에다 오줌을 누는 일까지 벌였습니다.(그러나 형사 처벌도 받지 않았고 해고도 되지 않았습니다. MBC가 용인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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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일이 기자들의 특권의식과 관련돼 있고, 나아가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강요 또는 권장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은혜는 이 책을 집필할 때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사실 자체를 적시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시스템에 대한 반성은 담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 가면서는 성찰 반성했을까

김은혜가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갔다고 합니다. 저는 제가 이 책 <나는 감동을 전하는 기자이고 싶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김은혜의 출세 지향 성향이 실현됐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보도 매체 종사자로서 바람직하거나 좋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보도를 통해 감시하고 비판하던 대상으로 하루 아침에 자리를 옮겼으니, 여태 해온 활동들까지도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옮기는 과정에서, 성찰이나 반성이 있었는지 저는 궁금해집니다. 성찰 또는 반성이 있었다면, 좋게 보이지 않는 정도가 조금은 줄어들 것 같습니다. 김은혜의 이 책에서 묻어나는 당당함 뒤 또는 안에는 특권의식이 숨겨 있는데, 이것은 또 어떻게 처리하고 청와대로 갔는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그 당당함도, 어쩌면 남성 중심 경쟁 지상 사회에서 여자로서 이기고 살아 남기 위해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전술일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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