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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1803

창녕 관룡사 용선대 불상의 비밀

이런 거 참 글쓰기 어렵다. 그래도 한 번 써 보고 싶다. 창녕 관룡사 용선대에서 보이지 않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기 어려운, 그리고 보았다 하더라도 말하기는 어려운 것을 한 번 말해 보고 싶다. 첫째는 여기 이 부처님을 감싸는 닫집이 지금은 없지만 옛날에는 있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내가 봤을 때 여기에 닫집이 있었다거나 있었으리라고 하는 얘기는 전혀 없었다. 나는 말하자면 전문가가 아니기에 조금은 겁이 난다. 그래도 얘기한다. 증거가 두 가지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뒤쪽 바위에 나 있는 구멍이다. 나무를 끼워 넣고 못을 박았을 것 같은 흔적이다. 여기에 이렇게 끼워 길게 닫집을 달아내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용선대 부처님 근처 바위에다 기둥을 세웠을 것이다. 이렇게 보지 않으면 여기에 왜 일부러 구..

쉽게 써본 창원의 역사 ⑥ 일제의 빛나는 승전지

해군기지에 어울리는 이름, 진해 지금부터는 진해로 떠납니당~~^^. 친구들!! 웅천이 진해로 바뀐 사연은 다들 기억하고 있지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지금의 삼진지역의 지명이었던 진해를 1908년 마음대로 바꿔버렸다 했지요.(복습입니당^^) 자~~ 그렇다면 러일전쟁에 대해서 좀 상세하게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일본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작은 섬나라지만 1895년에 이미 강대국(청나라)을 꺾을 만큼 힘이 쎘어요. 일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제국주의 야욕을 키워나갔어요. 10년 후 당시 무적함대로 이름을 날리던 러시아 발틱함대에 치명상을 입히면서 강대국 러시아도 이겨 먹었어요. 1906년부터 일제는 진해를 본격적으로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경계 지정과 토지 수용 같은 준비 작업을 마친 후..

사후 백 년 지나서야 공신 대접 받은 곽재우

망우당 곽재우는 임진왜랑 당시 가장 먼저 떨쳐 일어난 의병장이다. 여러 전투에서도 백전불패를 기록한 대단한 인물이다. 애초 질 만한 싸움이라면 하지 않았고 이길 만하다 싶은 전투만 나섰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길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다음에 싸웠지 무모하게 나서지 않았다는 얘기다. 인품도 대단했다. 임진왜란 이전에 일찌감치 벼슬로 출세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그렇게 의령 초야에 묻혀 살다가도 왜적 침략으로 백성들이 고단해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친가·처가·외가 모두의 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뒤집어 말하면 친가·처가·외가 모두 쫄딱 망했다.) 전란이 끝난 다음에는 언제 나섰느냐는 듯이 다시 원래대로 숨어들었다. 심지어 임금이 벼슬에 불러내었는데도 그것을 거절했다가 괘씸죄에 걸려 귀양살이를 가기도 하였..

설립년도는 잘못, 문화재 지정은 껍데기만

나는 2016년 5월 이라는 책을 내면서 의령군 지정면 성산마을 들머리에 있는 보덕각에 대하여 적은 적이 있다. 160쪽에 나온다. “안에는 ‘유명조선국홍의장군충익공곽선생보덕불망비(有明朝鮮國紅衣將軍郭先生報德不忘碑)’라고 적힌 빗돌이 있습니다. 영조 15년(1739) 왕명으로 세웠으며 비문은 당시 영의정 채재공이 손수 썼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두류문화연구원 최헌섭 원장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곧바로 짚어주었다. “당시 채제공(1720~99년)은 10대 소년이었고 영의정이 된 것은 1793년”이니까 틀린 얘기라는 것이다.(나는 이름조차 채재공으로 잘못 적었다.) 그래서 나는 2017년 1월 블로그를 통해 해당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공개적으로 알리고 독자 분들께 사과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이은상의 곽재우유적정화기념비문

이은상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으뜸가는 기회주의자라 하면 딱 맞다. 다른 기회주의자 100만 명을 갖다 놔도 이은상 하나를 당할 수 없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모두 하고 적극적·능동적으로 붙어먹었다. 이승만 시절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승만 당선을 돕는 문인 유세단 활동.지원 유세에서 "이순신 같은 분이라야 민족을 구하리라, 그 같은 분은 오직 이 대통령이시다."부정선거에 항거하는 3·15의거를 두고는'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 박정희 시절1963년 박정희 집권을 위한 민주공화당 '창당선언문' 작성1972년 박정희 영구집권을 위한 10월유신에 청년우인회 중앙본부(=극우단체. 서북청년단 등 8개 단체의 총연합으로 출범. 대한민국통일건국회의 전..

우리 집 선거공보물 인쇄 1등은 경남신문사

오늘 일 마치고 집에 왔더니 우편함에 무엇인가 잔뜩 꽂혀 있었다. 오늘 일요일인데 웬 배달?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았더니 이번 지방선거 공보물이었다. 그렇구나, 중요한 나랏일이다 보니 집배원들이 이런 고생을 하는구나 싶었다. 집어들고 집에 들어와 처음부터 끝까지 대충 훑어보았다. 집배원들 고생을 헛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꼼꼼하게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다. 워낙 많아서 그랬다. 그런데 보다 보니 색다른 것이 눈에 띄었다. '경남신문사 선고홍보물 기획단'에서 만든 공보물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디서 인쇄했는지를 죽 살펴봤더니 기획(디자인)·인쇄를 어디서 했는지 적혀 있기도 하고 적혀 있지 않기도 하였다. 먼저 어디서 만들었는지 적혀 있지 않은 공보물은 모두 12개였다. △더불어민주당 경상남..

이래 갖고는 마산 원도심 재생 어림없다

나이가 50 넘어 60 가까이 다가들다 보니까 몸이 요구하는 바가 많아졌다. 그런 가운데 하나가 패드다. 땡기고 저리고 쑤시고 아프고 늘어지는 데가 여기저기 생기다 보니 이런 패드를 사서 일삼아 버릇삼아 붙이곤 하게 됐다. 처음에는 이런 패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약국에 가서 파스를 사서 붙였더랬다. 5~6장에 2000~3000원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런 패드가 있는 줄 알게 되었다. 창동·오동동 시장·상가에 있는 가게에서 샀다. 하나에 6000원 두 개 사면 2000원 깎아서 1만원. 처음에는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약국에서 파는 파스와 견주면 최대 70%, 최소 50% 싸게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보자마자 1만원을 주고 두 개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4월 중순 열린 함안 아라문..

쉽게 써본 창원의 역사 ④일본 정벌의 거점

회원성과 합포성 지금까지는 가까운 마산의 역사를 살펴봤어요. 이제부터는 타임머신을 타고 좀 더 멀리 들어가 보도록 해요. 시작하면서 1400년 전 신라시대에는 창원이 의안이었고 마산은 합포였다고 했지요. 친구들 기억나나요? 또 800년 전 고려시대 들어서는 의안은 의창이 되었고 합포는 회원이 되었다고 했어요. 마산에는 이 두 지명이 붙은 성터가 남아 있는데 합포성과 회원현성이랍니다. 마산에도 그렇게 역사가 깊은 성이 남아 있다니~~ 신기하지요^^. 먼저 합포성으로 갑니다~!! 합포성은 평지에 지은 석성으로 마산회원구 합성동 73-4에 80m 정도 쥐꼬리만큼 남아 있어요. 이곳은 경상우도병마절도사의 병영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경상남도 육군사령관이 지휘하는 본부인 셈이지요. 1350년부터 남해 바다는 들..

쉽게 써본 창원의 역사 ③ 마산어시장

2. 마산2 조세 물품 거두던 마산창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산 이야기가 시작됩니당~ 짠~~!!! 앞에서 태종이 행정개편을 하면서 ‘창원’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기억이 나나요? 그 이후로 미미하게 남아 있던 마산이라는 지명이 다시 화려하게 부활을 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마산의 부활은 뭐니뭐니해도 조창으로부터 시작돼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친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알아두면 쓸데없는 이야기 하나~`!!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지요.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해요. 자동차의 에너지가 가스, 기름, 전기 등이라면 사람들이 필요한 에너지는 뭘까요? 이렇게 질문을 하면 우리 친구들 아주 근사한 답을 막 쏟아내요~건강, 도전정신, 근면,..

쉽게 써본 창원의 역사 ② 마산 삼진지역

2. 마산1 ‘진해’의 원래 주인은 삼진 지역 이제부터는 마산 진해 창원 순으로 구체적인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마산부터 시작합니당~!! 지명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1908년 진해라는 이름이 짠~하고 등장을 했다는 거 기억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진해라는 지명이 갑자기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인지 이런 것도 궁금하지 않나요? 지명은 갑자기 생겨나기보다는 있었던 지명이 이리저리 합쳐지거나 사라지거나 사라진 지명이 다시 나타나거나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렇다면 진해의 원래 주인이 누구였을까? 마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진해 이야기를 하는 게 좀 수상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완전 훌륭해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진북·진전면을 사람들은 ‘삼진(三鎭)’ 지역이라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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