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65<경남의 숨은 매력-역사문화 스토리텔링>이라는 책을 내면서 의령군 지정면 성산마을 들머리에 있는 보덕각에 대하여 적은 적이 있다. 160쪽에 나온다.


안에는 유명조선국홍의장군충익공곽선생보덕불망비(有明朝鮮國紅衣將軍郭先生報德不忘碑)’라고 적힌 빗돌이 있습니다. 영조 15(1739) 왕명으로 세웠으며 비문은 당시 영의정 채재공이 손수 썼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두류문화연구원 최헌섭 원장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곧바로 짚어주었다. “당시 채제공(1720~99년)은 10대 소년이었고 영의정이 된 것은 1793이니까 틀린 얘기라는 것이다.(나는 이름조차 채재공으로 잘못 적었다.)

보덕각.

그래서 나는 20171월 블로그를 통해 해당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공개적으로 알리고 독자 분들께 사과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물론 나름대로 여기저기 뒤적거려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빗돌을 세운 때가 1737년이 맞는지, 맞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등을 확인할 수 없었고 1737년이 아니라면 언제 세운 것이 맞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구러 세월은 흘러갔고 20185월이 되어 다시 보덕불망비를 찾아갈 기회가 생겼다.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지원으로 하천과 문화를 주제 삼아 의령 일대 남강 유역을 기획 취재하는 걸음이었다.


예전 같으면 안내판과 빗돌 앞면만 보았을 텐데 이번에는 옆면과 뒷면까지 살펴보았다. 연세 높은 어르신들 욕보이는 언사일지 모르지만, 나이가 50 중반을 넘으면서 언제 다시 와서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렇게 보니 양옆과 뒷면에 적혀 있는 글씨가 보였다. 위에서 아래로 빽빽하게 적힌 뒷면은 한문 실력이 딸려서 다 읽지는 못하였다. 대신 바라보면서 왼 면에 적힌 十七將(17)’ 운운은 읽어낼 수 있었다. 당시 곽재우와 함께했던 장수 열일곱 분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이었다.


오른 면 또한 다 읽어낼 수 있었다. 글자 숫자가 몇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오른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석 줄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른 면 윗 부분.왼면 윗 부분.


  五衛都摠府都摠管蔡濟恭撰

       金海後人幼學裵東鍵書

上之九年乙巳三月 日 立


사진을 찍어 집에 와서 무슨 뜻인지 알아보았다. 한글로 옮기면 이랬다.


오위도총부 도총관 채제공이 짓고

분성 배씨 집안 선비 배동건이 쓰다

임금 9년 을사년 3월 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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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는 1617년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조선 왕조에서 을사년16651725178518451905년 네 차례다. 넷 가운데 임() 9년이 되는 해는 1785년이다.(1665년은 현종 6, 1725년은 영조 원년, 1845년은 헌종 11년이고 1905년은 따질 필요조차 없다.) 


정조 임금 9년이 1785년인 것이다. 왜 태종 세종 하는 이름이 없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옛날에는 임금 생전에는 그런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생전에는 그냥 상(上)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조니 정조니 하는 이름은 세상 떠난 뒤에 붙여주는 묘호(廟號)였으니 당연히 이렇게 적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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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위도총부 도총관은 지금에 견주어 말하면 육군참모총장쯤 되지 싶다. 그러면 비문을 지은 사람이 오위도총관인 뜻도 나름 짐작이 된다. 선대의 위대한 장군을 위하여 당대의 으뜸 장수가 비문을 지어 올리는 예의를 갖추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채제공은 이 때 65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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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제대로 알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해답은 가까이에 숨어 있었다. 여러 차례 찾아갔어도 제대로 살피지 않았던 내 탓이 가장 크다.


문화재청과 의령군청에게 묻고 싶다


1739년에 세웠다고 적혀 있는 현장 안내판.


그렇지만 물어보고 싶다. 보덕각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장 안내판과 문화재청/의령군청 설명이 모두 보덕불망비 설립연도를 영조 15(1739)’로 적고 있다. 여태 이렇게 잘못 알려온 근거가 무엇인지 사뭇 궁금하다. 누가 되었든지 좀 알려주면 참 고맙겠다.


또 하나 보덕각은 빗돌 보호를 위한 건물일 따름인데도 문화재로 등록하고 정작 본체인 보덕불망비는 문화재로 등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껍데기가 문화재 취급을 받고 알맹이는 문화재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잘못인 것 같다. 

창녕 우강리 망우정 뒤편 언덕에 있는 충익공 망우 곽 선생 유허비.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낙동강변 망우정 뒤편 언덕에 가면 제대로 된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충익공 망우 곽선생 유허비(忠翼公忘優郭先生遺墟碑)’가 있는데 껍데기인 비각이 아니라 알맹이인 빗돌이 문화재 자료로 지정(23)되어 있다.


(물론 비각도 역사·문화·학문·민속적으로 고유한 가치를 띠면 당연히 문화재가 되어야겠지만)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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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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