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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1803

팩트의 힘은 강하다는 걸 보여준 영화 레드 툼

"저는 아버지란 사람이 원래 없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좀 커서 보니 다른 아이들 집에는 아버지가 있는 거에요. 그때서야 우리 아버지만 없다는 걸 알았지요." 엄마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기도 전 아버지를 잃었던 한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의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 이승만 정권의 불법적인 민간인학살로 살해됐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보통 우리는 부모를 잃고 1년 만 지나도 슬픔을 잊는다. 아버지 제사가 돌아와도 우는 경우는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영화 (감독 구자환)에서는 나이 80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65년 전 헤어진 사람을 그리며 서럽게 운다. 빗속에서 진흙탕에 막걸리를 뿌리며 운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원통하게 했을까? 영화 은 어설프게 설명하려 들지 않는..

대출해주고 못 받아도 된다는 은행 지점장

박종권. 한국나이로 올해 64세라고 하니 1952년생 용띠일 것이다. 근 10년 전 54세에 기업은행 마산지점장 자리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나왔다. 그 후 경실련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운동을 열심히 해왔고, 얼마 전까지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그를 경남블로그공동체(경남블공)가 초청해 '은퇴 후 재미있게 사는 법'이란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6월 25일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이었다. 1시간정도 강당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통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간담회를 계속했다. 박종권 씨의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그는 아주 솔직하고 소탈하고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은행 지점장으로서 대출에 대한 그의 소신이 우선 인상적이었다. 그는 '열심히 사업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

권력자들은 수평폭력 심리를 어떻게 이용할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는 속담이 있다. 강자에게 당한 설움을 엉뚱한 약자에게 푼다는 말이다. 프란츠 파농이 제시한 '수평 폭력'의 심리적 기제와 비슷하다. 자신을 억압하는 거대 권력의 수직 폭력에는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과 비슷하거나 만만한 상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심리다. 권력자는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통치술로 활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조선인과 중국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일본 내무성은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고 경찰에 지시한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 이는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

포크레인 타고 해저 42미터까지 내려간 남자

포크레인에 사람이 타고 35~40미터 해저에 들어가 바닷속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실제 가능성이 확인됐다. 지난 6월 28일 태종대가 보이는 부산 앞바다 5마일 해상에서 포크레인을 개조한 해저 유인탐사정 '해마1호'가 실험 결과 35~44미터 해저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왔던 것이다. 이 휘귀한 실험을 우연히 내가 지켜보게 됐다. 지인을 통해 이런 실험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호기심이 일어 크레인선에 동승했던 것이다. 해양개발사업 법인 Inner Space Won Jung 정도현 대표는 "이번 실험으로 몇 가지 개선해야 할 점이 있었지만, 일단 공기통 없이 대기상태와 똑같은 조건에서 해저까지 내려가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1. 포크레인 엔진 열로 인해 내부가 더웠다는 점 2..

진주성 7만의총 건립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월간 피플파워 7월호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 저는 요즘 언론비평 전문지 에 매월 고정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말 '무모한 실험, 지역에서 출판하기'라는 글에서 저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가 풍성해지려면 다양한 지역 콘텐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홈플러스와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는 전 국민의 소비 형태를 획일화·평준화시킨다. 그러나 전통시장에는 그 지역 고유의 생활양식과 문화가 살아있다." 그렇습니다. 최근 이라는 책을 펴낸 신영복 선생은 인터뷰에서 '변방'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대칭적으로 자기를 강화하고 군림하는 집단은 다 자기 이유가 있는데. 그런데 그런 중심부 집단은 그게 또 약점이 돼요. 중심부는 변방의 자유로움과 창조성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반드..

올해 진실의 힘 인권상 강기훈 씨 선정

6월 26일은 유엔이 정한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이라고 하는군요. 이날을 맞아 재단법인 진실의힘이 '진실의 날 인권상'을 시상하고 있는데, 이번 제5회 수상자로는 유서를 대필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강기훈 씨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널리 알리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블로그에 보도자료 전문을 올립니다. 강기훈씨, ‘제5회 진실의힘 인권상’ 선정!2015년 6.26 유엔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 한국의 고문생존자들이 만든 재단법인 진실의힘은 매년 6월 26일 유엔이 정한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United Nations Day in Support of Victims of Torture)'을 기념합니다. 특히 을 시상하여 고문과 국가폭력 생존자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고문의 재발방지에..

따오기 인공번식은 동물원도 할 수 있다

6월 17일 창원 주남저수지 람사르문화관에서는 ‘습지 생태계 생물 다양성 증진 및 멸종위기종 복원을 위한 서식처 관리 전략 수립 전문가 회의’가 있어서 한국과 일본의 습지·생태 전문가 스물 남짓이 모였습니다.(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주최) 이 날 저는 ‘사도시 따오기 야생 복귀를 위한 서식처 관리 방안’에 눈길이 갔습니다. 일본 니이가타대학 부설 필드(フィ―ルド·Field, 야생? 들판? 현장?)과학교육연구센터의 홈마 고스케(本間 航介)씨가 발표를 했습니다. 일본 사도시는 인공 번식지에서 자라난 따오기를 2008년부터 해마다 야생에 풀어놓아 2013년 현재 142마리가 됐습니다. 홈마씨는 이번에 사도시 사례를 통해 따오기의 움직임, 생존 환경, 먹이, 둥지 등이 어떤지 보여줬습니다. 아울러 서식지 전체에 ..

뉴스펀딩과 지역출판 중간보고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경남도민일보 이사/출판미디어국장을 맡고 있는 김주완입니다. 요즘 저희가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일을 알려드리려고 메일 올립니다. 1. 저희는 최근 '뉴스펀딩'이라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포털 다음에서 이미 뉴스펀딩을 하고 있고, 저도 '풍운아 채현국과 시대의 어른들'이라는 프로젝트를 다음의 플랫폼에서 연재했고, 나름의 성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포털에 의존한 뉴스펀딩은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고 한계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아예 자체적으로 뉴스펀딩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오마이뉴스나 민중의 소리 같은 매체도 이미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 등 이름으로 기사에 후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저희는 좀 다르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모든 기사에 적용하는 게..

삼가장 재첩으로 길어올린 옛 기억

재첩. 70년대 중반 부산 서대신동 산동네 살 때, 잠을 깨우는 새벽 소리는 "재치꾹 사이소~~ 재치꾹 사이소, 재치꾹~"이었습니다. 그 때 이미 경남에서 부산으로 편입돼 있었던, 하단에서 온 아지매들이었습니다. 하단(下端)-그러니까 낙동강 가장 아래 끄트머리라는 뜻인데 바다의 짠물과 육지의 민물이 뒤섞이는 장소(기수역汽水域이라고들 합니다만.)였습니다. 윗섶이 날리지 않도록 허리 위를 끈으로 동여맨 아지매들은, 양동이를 머리에 이었으면서도 산동네 그 가파른 골목길을 잘도 헤치고 다녔습니다. "재치꾹 사이소~~~" 소리에 선잠이 깬 우리는, 그 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대문이라 하기에는 퍽이나 초라하지만, 그래도 달리 부를 이름은 없는 곰삭은 나무문을 삐걱 열고 나가 50원 어치 100원 어치를 양..

김형률이 온몸으로 보여준 ‘핵피폭의 유전’

여태까지 기록을 보면 1945년 히로시마(8월 6일)와 나가사키(8월 9일)에 떨어진 핵폭탄 관련 통계는 대충 이렇습니다. 전체 피폭자 69만1500명에 폭사자가 23만3500명(33.77%)입니다. 이 가운데 조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처음 듣고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전체의 10%에 해당하는 7만명이 조선 사람이었습니다. 4만명이 죽고 나머지 3만명 가운데 2만3000명은 조선으로 돌아왔으며 7000명은 일본에 그대로 남았다고 합니다. 조선으로 돌아온 2만3000명은 대부분 이북이 아닌 이남에 연고가 있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수탈과 전쟁물자 강탈로 먹고 살 터전을 잃어버린 조선 사람들이, 남쪽은 주로 일본으로 가고 북쪽은 주로 만주로 갔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렇게 돌아온 2만300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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