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이은상의 곽재우유적정화기념비문

김훤주 2018. 6. 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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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상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으뜸가는 기회주의자라 하면 딱 맞다. 다른 기회주의자 100만 명을 갖다 놔도 이은상 하나를 당할 수 없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모두 하고 적극적·능동적으로 붙어먹었다.

 

이승만 시절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승만 당선을 돕는 문인 유세단 활동.

지원 유세에서 "이순신 같은 분이라야 민족을 구하리라, 그 같은 분은 오직 이 대통령이시다."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3·15의거를 두고는

'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

 

박정희 시절

1963년 박정희 집권을 위한 민주공화당 '창당선언문' 작성

1972년 박정희 영구집권을 위한 10월유신에 청년우인회 중앙본부(=극우단체서북청년단 등 8개 단체의 총연합으로 출범대한민국통일건국회의 전신) 회장 자격으로 지지 성명.

"무질서와 비능률을 배제하여 국기를 공고히 하려는 박 대통령의 영단에 적극 찬동한다."

1975년 긴급조치 9호를 옹호하는 관변단체 총력안보중앙협의회 의장.

 

전두환 시절

197912.12쿠데타 전두환 권력 장악, 1980년 월간 '정경문화'에 찬양문 기고.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 여론”.

19812월 전두환이 12대 대통령이 되고 그 해 4월 국정자문위원 맡음.

오른쪽은 곽재우와 그 아래서 함께 싸운 열일곱 장령들의 위패를 모시는 충의각.

이처럼 이은상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의로운 삶과는 한참 먼 인생을 살았다. 자기 한 몸의 영화안락을 위하여 독재자에게 빌붙고 민중을 능멸했다그래 놓고 의령 충익사 곽재우장군유적지정화기념비 비문에서는 이렇게 적었다. 정말 이보다 더 두꺼운 낯짝도 드물 것 같다. 

 

자기 한몸의 영화안락은 풀끝의 이슬 같이 잠깐 가는 것이로되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의로운 삶의 값은 거룩하고 영원한 것인데 그 영원한 삶을 사신 이가 계시니 그가 바로 곽재우 장군이시다.”

 

나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저렇게 못하겠다. 그런데 이은상은 박정희가 시키면 뭐든지 다 했던 것 같다. 이 비문도 박정희 분부로 지었다. 정말 배알도 없는 인간이다. 비문 끝머리는 이렇게 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그 같은 위대한 정신을 오늘에 계승케 하고자 의사들의 역사적 행적을 길이 기념하도록 하라는 분부를 내려 문화공보부와 경상남도 힘을 합하여 이 일을 완성한 것이다

우리 모두 여기서 나라와 겨레 위해 의롭게 사는 큰 뜻을 배우자.”

 

그런데 여기 마지막에 한 문장이 생략되어 있다. 살아 생전 이은상한테 직접 들은 얘기는 아니다. “나는 빼고, 우매한 너희 떨거지들만!” 이렇게 일신의 영화안락을 도모한 이은상도 비문을 쓴 4년 뒤에 결국 죽었다. 너도나도 천년만년 살지 않는다. 쪽팔리게 살지는 말아야겠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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