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세 가지 열쇠말로 푸는 사천 지역사 ③항일

김훤주 2018. 5. 2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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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항일


소나무와 차로 유명한 다솔사


이제 드디어 사천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을 장식할 무대는 다솔사입니다. 다솔사 이야기 들어가기 전에 한 마디~~!! 역사탐방을 하면서 절에 가면 어떤 친구들은 이렇게 말을 해요. 나는 교회 다니는데요~ 나는 불교를 믿지 않는데요~ 네네~ 다 좋아요~ 그러면서 우리가 절 공부를 하는 까닭을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요. 유럽 여행을 가면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이 성당이나 교회가 아니냐, 절은 불교건축물이기 이전에 우리 조상들이 오랜 세월 함께해온 문화의 흔적이 가장 많이 담긴 곳이란다, 등등. 이러면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지요.


절에 가면 그 속에 담긴 정신세계도 엿볼 수 있고 탑, 불상, 건물들을 통해 옛 사람들의 솜씨도 살펴볼 수 있어요. 또한 일어났던 사건을 통하여 역사를 더듬을 수도 있고 그런 거지요.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우리나라 여행을 하다 보면 가장 아름답고 멋진 곳에는 대체로 절이 자리잡고 있잖아요? 절을 제대로 알면 그만큼 풍성해질 수 있다는 얘기지요.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절이라고 해요. 왜일까요? 절간에서 한국적인 모습을 가장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그 정도면 절 공부가 왜 중요한지는 충분히 알 수 있겠지요.

 

다솔사 전경.

다솔사가 유명한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신 때문이다


, 그러면 본격적으로 다솔사 이야기를 해볼게요. 다솔사가 왜 훌륭한 절일까요? 이름으로 짐작해보면 일단 소나무와 연관이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맞아요. 다솔사 들머리는 잘 자란 소나무가 상큼한 솔향을 내뿜으며 아름드리 서 있어요. 길을 걷는 즐거움을 선사해주지요.


그렇게 오르다보면 오른편에 어금혈봉표 광서 11년 을유 9월 일(御禁穴封表 光緖 十一年 乙酉 九月 日)’이라 새겨진 바위가 나옵니다. 이것도 좀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야겠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게 죽은 사람들의 무덤을 좋은 곳에 쓰려고 하는 풍습이 있어요. 왜 그럴까요? 좋은 자리에 무덤을 써야 후손들이 잘된다고 믿지요. 사실 그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심이잖아요. 광서 11(1885) 9월 임금() 고종이 무덤()을 쓰지 못하도록 금지()했다는 것은 다솔사가 그만큼 좋은 자리라는 뜻이겠지요. 덕분에 다솔사 경내 소나무가 다치지 않고 오늘날 이렇게 멋진 숲을 이루게 되었답니다.


차도 유명하답니다. 다솔사 차는 향기가 짙고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났을 정도니까요그렇지만 다솔사가 유명한 것은 소나무와 차 때문만은 절대 아니에요. 앞에서 절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잠깐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절에는 우리 선조들의 정신이 담겨져 있다고, 다솔사가 유명한 것은 바로 절 안에 담겨 있는 정신 때문이랍니다. 그렇다면 어떤 정신이 담겨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1930년대 만해 한용운 선생 회갑 기념으로 심겨진 황금공작편백 세 그루.

때는 바야흐로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솔사는 한반도 남쪽 끝 사천에 있지만 우리나라 불교계 전체 독립운동의 중요 거점이었어요. 임진왜란 때도 사명대사처럼 승병들의 활약이 뛰어났는데 일제강점기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님의 침묵이라는 시도 썼고 191931일 기미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도 작성했던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이 다솔사에 거처하면서 활동을 벌였거든요.


한용운 선생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모른다구요? 친구들이 고학년이 되면 배우게 될 거에요. 지금 잘 들어놓으면 ~ 그 때 그 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겠지요. 다솔사의 안심료 앞마당에는 황금공작편백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1939년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만해 회갑을 기념하여 심은 것이랍니다.

다솔사에 머물렀던 또 다른 유명 인사는 소설가 김동리(1913~95)입니다. 김동리도 잘 모르겠다구요? 네네~^^ 1935년 등단하여 무녀도’ ‘황토기’ ‘역마등에 이어 1961년 대표작 등신불을 발표한 아주 유명한 소설가지요. ‘등신불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지요. 이 작품을 쓰게 된 것은 다솔사에서 만해 한용운을 만난 데서 비롯되었어요.


김동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1937년 가을인가, 이듬해 봄인가. 만해 한용운이 다솔사에 왔었다. 나는 10리 남짓 떨어진 원전마을 광명학원에서 선생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다솔사에서 차를 마실 때 만해가 무슨 얘기 끝에 우리나라 승려 중에서 분신공양한 분이 있소?’ 하고 물었다.”


김동리는 분신공양’ ‘소신공양이란 말을 이 때 처음 듣고는 아래턱이 달달 떨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유명한 소설 등신불이 다솔사와 만해 한용운과 인연에서 비롯되었다는 거지요. 지금은 잘 몰라도 이참에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접하게 되면 그 감흥이 몇 배 더 커질 거예요.

 

황금공작편백 아래에서 바라본 안심료. 만해 한용운과 소설가 김동리가 머물렀던 공간입니다.

사천의 빛나는 인물 최범술


다솔사 하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만해 한용운 선생과 소설가 김동리를 떠올립니다. 말하자면 전국구 스타들이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배경이 숨어 있답니다. 한용운과 김동리가 어떻게 해서 한반도 남쪽 골짜기 외진 다솔사에 머물며 민족운동을 벌이고 등신불을 쓸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지요. 당시 다솔사에 사천 출신 최범술(법명 효당曉堂, 1904~79)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최범술은 불교계 항일 비밀 조직인 만당(卍黨)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나아가 만당을 대표하는 당수(黨首)로 만해 한용운을 추대한 인물입니다. 또 민족교육을 위하여 사천에 광명학원(光明學院)을 설립하였는데 그 덕분에 김동리가 여기 선생님으로 와 있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듯 알토란 같이 중요한 인물인데도 효당 최범술의 존재가 자꾸만 잊혀져 간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요.


최근에는 다른 지역이긴 하지만 제대로 평가를 받고 있어 다행이에요.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만해학회가 지난 727만해와 효당 최범술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 그를 기억했다는 것이지요. 아울러 올해 6월 개봉된 영화 <박열>에 나오는대로 1923년에는 박열의 천황암살계획 실행을 위하여 중국 상해에서 일본으로 폭탄을 반입한 적도 있었고요.


살다보면 모든 것이 다 정직하게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랍니다. 어떤 것은 실제보다 크게, 어떤 것은 실제만큼, 또 어떤 것은 실제보다 작게 드러나거나 평가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적어도 사천에 이런 훌륭한 인물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혹시 친구들은 최범술이라는 이름을 만나게 되면 사천 사람 훌륭한 그 분이라고 기억을 떠올려 주면 참 좋겠어요.

 

다솔사 뒤편 언덕에 있는 차밭.

마무리하면서


사천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친구들, 이야기 잘 들었나요. 듣기 전과 후과 조금이라도 달라진 점이 있나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친구도 있겠지만 많은 욕심은 거두고 단 한 가지라도 새롭게 알게 되고 마음에 새길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외국으로 여행을 나갔다가 뚜렷하게 기억에 남게 된 한 가지를 이야기해 볼게요. 네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을 찾았을 때 일이지요. 그 작은 마을에는 조그마한 마을 박물관이 있었어요. 그 고장의 역사와 삶을 알 수 있는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전시가 되어 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관리를 하는데 모두들 박물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박물관도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고로 좋은 거라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자기가 사는 동네 역사를 알려주는 마을 박물관 같은 것은 아예 있지도 않구요.


이 책을 펴내는 이유는 그리 거창하지 않아요. 내가 나고 자란 고장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내가 사는 고장을 서울이라는 큰 도시를 향해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정거장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결코 뿌리가 튼튼한 나라가 될 수 없을 거예요


무엇이든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보이는 법이랍니다. 또 제대로 볼 수 있어야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도 싹틀 수 있을 거지요우리는 이 책 안에 친구들이 나고 자란 사천을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을 담았답니다.                               <<끝>>


김훤주


※ 2017년 사천시청 재정 지원으로 사천문화재단에서 초등학생을 위한 사천 지역 역사 책자 '나고 자란 우리 사천 이 정도는 알아야지'를 펴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원고를 썼는데요 그 내용을 이 블로그에 몇 차례로 나누어 싣습니다. 


당시 저희 경남도민일보는 아이들로 하여금 역사문화유적을 사천 지역 초등학생들과 함께 단체로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10차례 진행하여 엄청난 호응을 얻었습니다. 또 그렇게 못하고 개별로 엄마아빠랑 둘러본 경우는 사진과 글을 올리게 하여 상품권을 선물하는 식으로 피드백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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