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면서
지역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지요
“창원 마산 진해가 통합이 된 지 얼마나 됐을까요?” 이렇게 물으면 우리 친구들 거의 대부분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잘 못해요. 통합이 언제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통합에 대한 생각도 별로 없는 거지요. 그렇다고 뭐 기죽을 필요는 없어요~~^^ 2010년에 통합이 되었으니 어느새 7년의 세월이 지났군요. 그 때 친구들 나이를 헤아려보세요. 다들 유치원에서 뛰어노느라고 정신이 없었을 테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요.
당시 통합을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정말 의견이 분분했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그랬어요. 창원사람들은 대부분 반대를 했어요. 창원은 공장이 많아 세금이 풍부한데 굳이 가난한 마산이나 진해하고 통합을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반대로 마산은 통합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한일합섬이나 자유무역지역처럼 돈벌이가 되어주던 공장들이 하나둘 떠나고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창원시와 통합을 하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거지요. 그렇다고 마산사람들이 전부 찬성을 한 건 아니었어요. 마산이라는 이름을 지키면서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정말 심하게 반대를 했어요.
그렇다면 진해는 어땠을까요? 진해의 일부가 부산신항으로 편입이 되면서 진해사람들은 속으로 창원시로 통합이 되느니 차라리 부산으로 합해지고 싶은 마음이 더 많았어요. 창원과 통합이 된다고 해도 얻어지는 게 별로 없다고 판단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끝까지 가장 심하게 반대를 했던 지역이 진해였어요. 이렇듯 제각각 다른 마음으로 시작한 통합이었으니 갈등이 많았을 거라는 짐작은 친구들도 할 수가 있겠지요.
마산 315의거 발원지 표지.
시작하면서 왜 이렇게 통합에 관해 자세하게 사정 이야기를 늘어놓는지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지요.
마산 창원 진해 중학생 고등학생들과 지역 역사탐방을 하면서 느낀 점이 참 많았거든요. 그게 뭐냐면 통합이 된지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학생들에게는 통합 창원시의 같은 구성원이라는 동질감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이런 거지요. 진해 학생들과 마산 탐방을 하게 되면 마산은 같은 고장이 아니라 이웃 고장으로 여기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창원 학생들은 마산에 대해서 정서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요. 마산에 대해서 거의 알지를 못하는 거지요. 이런 것은 마산 학생들도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마산 창원 진해뿐만 아니라 행정구역은 필요에 따라 아주 오래 전부터 합해지거나 분리되거나 하는 일들을 반복해왔어요. 한 번 마산은 영원한 마산이고 한 번 진해는 영원한 진해고 그렇지는 않거든요. 우리 친구들은 이제 하나가 된 창원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고 따뜻한 애정으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마산과 창원 진해의 역사를 하나로 엮어서 친구들 시선에서 읽기 쉬운 안내서가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답니다. 지역의 동질감은 지역의 역사를 서로 공유하고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이 책 안에는 다만 창원 역사 이야기를 적은 게 아니라 그런 바람도 담았답니다.
마산이 먼저일까? 창원이 먼저일까?
자 그러면 지금부터 마산, 창원, 진해의 역사를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해요. 시작하면서 가장 쉬운 질문 먼저 들어갑니다. 마산, 창원, 진해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지명은 어디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순위는~ 1위 마산, 2위 진해, 3위 창원이 가장 많아요.
그렇다면 친구들은 어떤가요? 순위를 한 번 정해보세요. 음~ 나도 마찬가진데 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제부터 정답을 발표합니다. 1위는 창원, 2위는 마산, 3위는 진해랍니다.(다 맞춘 친구들에게 주는 선물은~ 각자 용돈에서 맛있는 거 사먹기~~^^)
창원이 가장 최근에 붙여진 지명 같다는 대답에는 아마도 이런 선입견이 숨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계획도시로 잘 다듬어진 도로며 신도시와 주변 상가의 휘황찬란한 불빛이며 왠지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주잖아요.
반대로 마산은 창원에 비해 오래된 분위기가 풀풀 나지요. 요즘 한창 도심 살리기 중심에 있는 창동 오동동 골목에 가보면 창원의 중심가와는 완전 딴판이지요. 좁은 골목길 따라 이어지는 오래된 가게며 건물들이 곰탁곰탁 들어서 있으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역사가 오래된 도시려니 싶은 거지요.
이왕 지명의 순서를 따지기 시작했으니 마산, 창원, 진해라는 명칭이 어느 시대부터 사용되었고 어떻게 변화를 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음~~사실 좀 따 분할 수도 있어요.^^::) 우선 셋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창원부터 살펴보도록 해요. 가야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원 덕천리지석묘. 지석묘=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무덤입니다.
당시 창원은 탁순국이었고 마산은 골포국이었다고 해요. 탁순국과 골포국은 신라가 세력이 커지면서 흡수되어 굴자군(나중에 의안군으로 바뀜)으로 합해지게 되지요. 이것이 고려시대에는 두 개로 나뉘어져 따로 있었어요. 초기에는 의안과 합포, 후기에는 의창과 회원으로 말입니다.
그러다 조선시대 들어 태종 임금이 행정개편을 하는데 1408년 의창현과 회원현을 합친 다음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로 승격시켜요. 의창에서 ‘창’을 따고 회원에서 ‘원’을 딴 이름 “창원”이 이 때 처음 등장했어요.
그렇다면 마산 일대가 지명으로만 남아 있다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도시화가 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250년 전인 1760년 지금의 마산 창동에 조세창고인 마산창이 들어서면서부터였어요. 다시 130년 남짓 지난 1899년 마산포가 국제 개항이 되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제대로 도시로 성장을 하게 되었지요.
이런저런 복잡한 과정을 거친 건 진해도 마찬가지랍니다. 옛날에는 웅신(熊神:웅지熊只라고도 했음)과 완포(莞浦), 둘로 나뉘어 있었어요. 웅신의 중심은 지금 웅천이고요, 완포의 중심은 지금 진해구 현동입니다. 웅천은 지금 웅천읍성이 남아 있는 자리이고 현동은 지금 해군기지사령부가 들어서 있는 지역으로 보면 맞아요. 조선시대(1452년) 이 웅신과 완포가 합해지면서 웅천이라는 지명이 태어났지요.
웅천 이름으로 그 뒤 400년 넘게 오다가 갑자기 진해라는 지명이 짠~~하고 등장을 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그 언제쯤에 생겨났으리라 짐작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요. 진해라는 지명이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면 다들 깜짝 놀라지요.
1908년 옛 완포 일대에 일제가 해군기지를 건설하면서 지명을 ‘진해’로 바꿔버렸어요. ‘바다를 제압하다’ 그런 뜻의 진해라는 이름이 당시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제국주의의 야망을 꿈꾸던 그들의 입맛에 딱 맞았던 거지요.
지금까지 마산, 창원, 진해 지명에 얽힌 역사를 대략 정리해봤어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지요? 친구들이 힘들어할까봐 최대한 줄이고 간단하게 정리하려고 무척 애썼답니다~^^ 마산 창원 진해의 역사가 대충이나마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다면 참 좋겠어요.
이야기를 쭉 읽어내려오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행정구역 개편이 이렇게 식은 죽 먹기 식으로 이루어지다니~~!!’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요~? 맞아요~ 우리는 지금까지 지명에 관한 역사 공부를 하면서 지명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사정에 따라 수없이 합쳐지고 분리되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마산, 창원, 진해의 통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절대 통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많았지만 역사를 더듬어보더라도 통합을 하지 않는 게 꼭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지요. 문제는 통합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이 지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결정이 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창원, 마산, 진해의 통합은 지역민들에게 골고루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이루어졌을까 이런 걸 살펴볼 필요도 있겠지요.
그 당시를 떠올리자면 정말 시끌시끌했어요. 창원, 마산, 진해 사람들 모두가 만족하지 못한 통합이었으니까요. 지금도 다시 분리를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정도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어른들은 바보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통합을 왜 한 거지?” 그래요 어른들은 바보 맞아요.(흑흑^^::) 통합에 대해서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어요.
진해 남원로터리 김구 선생 친필 시비. 내용은 이순신 장군의 한시이고 형식은 일본 양식 빗돌입니다.
당시 통합에 앞장섰던 사람은 일반 시민들이 아니었습니다. 중앙정부와 지역의 몇몇 정치인들이었어요. 쉽게 말하자면 시민들이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지 충분히 의견을 들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통합을 하면 이런저런 이권이 생기는 몇몇 사람들이 자기네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밀어붙인 것이지요.
친구들은 혹시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나요? 어른들이 하는 정치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람!! 그런데 과연 상관이 없을까요? 정치와 우리의 삶은 정말 아주 긴밀하게 관계가 있어요. 당근 친구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구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수학 과목이 가장 중요하다 하고 결정을 해버리면 여러분은 싫어도 수학공부에 매달려야 하거든요.
이명박 대통령 때 세계화시대를 대비해 영어가 중요하다 한 마디를 해서 나라 전체가 온통 영어 배우기 열풍에 시달렸어요. 부모님들은 비싼 영어 과외를 시키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으니까요. 그게 바로 정치와 내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증거지요.
그런데 그런 중요한 일을 하는 정치인들이 공정하지 못해서 큰일이에요. 창원시 통합 과정에서 잘 드러났지만 국민이나 시민을 위하여 정치를 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인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 친구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정말 훌륭한 정치인을 뽑아야 해요.(꼭 약속~~!!!)
이제 통합 이야기를 마무리할게요. 흘러내려간 강물이 다시 거슬러 올라가기 어려운 것처럼 한 번 결정한 것을 되돌리는 일은 쉽지 않아요. 먼 훗날 필요에 의해서 또다시 합쳐지거나 분리되거나 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통합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마산, 창원, 진해의 특징을 살려 고루 발전시키는 일이 필요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창원 시민으로서 동질감을 형성해 나가야겠지요.
김훤주
※ 2017년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재정 지원을 받아 창원 지역 역사 책자 '나고 자란 우리 창원 이 정도는 알아야지'를 펴냈습니다. 창원에서도 마산합포구에 있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에게 나누어 줬는데요, 블로그에 몇 차례로 나누어 싣습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주어진 원고 분량을 채워야 하다 보니 허술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다시 보니 부끄러울 정도로 구성이 산만합니다. 모두 제 잘못이고 한계입니다. 앞으로 대폭 고칠 기회가 온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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