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1월 25일치 34면 '권석천의 시시각각'에서 '부러진 화살을 찾아라'라는 글로 영화 부러진 화살의 '리얼리티'에 문제가 있다고 한 데 이어 한국일보도 1월 27일치 10면에서 영화 부러진 화살에 문제가 많은 것처럼 그리고 나왔습니다.

이 날 중앙일보 '권석천의 시시각각'은 석궁 사건의 당사자인 김명호 교수를 미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적은 다음 곧바로 그것을 근거로 삼아 영화 부러진 화살의 리얼리티에 문제가 있다고 읽히도록 만드는 잘못을 했습니다.

'권석천의 시시각각'을 쓴 권석천 정치부문 부장은 이 글 가운데 즈음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부장판사의 집 부근을 일곱 차례나 답사한 뒤 석궁을 들고 나타났다. 그의 가방 안엔 회칼이 있었다. 현실 속의 석궁 교수를 미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 다음에 곧바로 단락을 바꾸고는 시작을 이렇게 합니다. "이렇듯 영화의 리얼리티에 문제가 있지만 법원의 재판 과정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자기가 말한 부분(미화해서는 안 되는 까닭에 해당되는)을 영화가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는 취지인 듯한데요, 하지만 이처럼 모든 부분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면 100분짜리로 영화를 만들기는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는 권석천 부장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영화의 리얼리티에 문제가 있지만"이라는 권석천 부장의 표현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석궁을 들고 나타난 장면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 특히 법정 안 재판 과정에 '리얼리티에 문제가 있다'고 받아들이기 십상인 것입니다.


이런 축약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법정 바깥 줄거리는 재미 등등을 위해 충분히 꾸며질 수 있는 영역이라고 인정한다면, 법정에서 벌어지는 영화 속 재판 과정은 '리얼리티에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화 부러진 화살이 제기하는 주제는 허구가 아니라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일보가 1월 27일치 10면에 "영화 '부러진 화살' 실제 재판 기록 보니…"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러고는 '김명호 전 교수 사법부 불신 여실히 드러나', '법정 박차고 나가고 무리한 증인 신청도 반복', "법원 '영화 일부만 부각… 재판부 잘못처럼 묘사'"라고 부제목을 달았습니다.


첫 눈에 김명호 교수에게 잘못이 무지하게 많은 것처럼 읽힙니다. 그리고 원래 영화라는 물건이 일부만 보여주는 것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마치 커다란 문제인 양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효과까지 부제목이 내고 있습니다.


기사를 읽어보면 더욱 이상합니다. 기사를 쓴 남상욱 기자는, 기사 내용을 따르면 "법원 내부에서도 영화가 불러온 파문이 확산되는 듯한 분위기를 보이자 '사건과 재판과정의 실체적 진실을 정확하게 알리자'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서 재판 기록을 살펴본 듯합니다.


그런데 기사에는 사건의 줄기나 몸통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곁가지만 다루고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김명호 교수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적었고 재판 절차를 무시하는 언행을 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이른바 석궁 사건의 실체=진실을 밝히는 데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입니다. 문제가 된 재판의 핵심은, 그러니까 석궁 사건 재판의 '실체적 진실'은, 증거라고 제시되는 여러 부분을 재판부가 제대로 다뤘느냐 여부인 것이고요.


이보다 더 문제가 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사건의 실체를 밝혀 무죄 인정을 받겠다는 피고인과 변호인의 노력을 아무 생각없이 깎아내립니다. 기사를 썼다는 남상욱 기자가 법원을 취재해본 경험이 있는지조차 미심쩍을 지경인데요, 재판은 검찰이나 피고인 어느 한 쪽에서 의문이 제기됐을 경우 그것이 풀릴 때까지 진행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영화 속 박준 변호사와 김경호 교수.


남상욱 기자는 반복되는 증거 제출 부동의, 무리한 증인 싱청과 재신청을 김명호 교수가 했다면서 이렇게 보기를 들었습니다.

① 범행 이후 새로 범행 현장에 CCTV가 설치됐다는 아파트 관리소 측의 설명에 그는 CCTV 설치 업자를 법정에 불러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
② 박홍우 부장판사의 진료기록을 작성한 의사는 김 전 교수가 진료기록을 증거로 동의하지 않아 법정에 두 번이나 나와 증언
③항소심에서는 1심에서 끝낸 박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 신청을 다시 요구.


먼저 드릴 말씀은 여기에 적혀 있는 보기들은 죄다 피고인의 당연한 권리 행사의 결과일 따름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실제 재판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저는 남상욱 기자가 기사를 쓰면서 판사 말만 듣지 말고 변호사들한테만이라도 조금 물어봤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잘못은 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관련돼 있는, 이른바 굉장히 민감한 사건의 경우는 이른바 '크로스 체크'가 기본입니다. 어느 한 쪽이 아니라 양 쪽 말을 다 들어보고 일치해야지 사실로 인정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① CCTV와 같은 아파트 관리소에서는 범행 이후 설치됐다(=범행 당시에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실과 다를 수 있으니까 설치 업체 쪽을 증인으로 불러서 '크로스 체크'를 하자고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설치 업체 쪽 물품 출납 대장과 영수증만 확인해도 됩니다. 그런데도 이런 간단한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요구한 피고인이 문제가 아니라 증거 채택을 취소한 재판부가 문제인 것입니다.


② 진료 기록 작성 의사 부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따져볼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화살을 맞았다는 박홍우 판사는 119 구급대의 확인을 거친 다음 서울의료원으로 갔고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옮길 때마다 상처 길이가 119구급대 0.5cm에서 서울의료원 1cm 서울대병원 2cm로 달라집니다.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진료 기록을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료했던 의사를 증인으로 신청하는 것입니다.


③ 피해자인 박홍우 부장판사를 1심에서 증인 신문을 해놓고 다시 항소심에서 증인 신청한 데에도 다 까닭이 있습니다. 박 판사는 1심에서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화살을 맞았다"고 했다가 "자기 몸에 화살을 맞은 방향을 잘 모르겠다"고 번복했습니다.


그러고는 번복한 까닭을 "(당시 수사했던) 송파경찰서 홍성훈 경찰관이 "의사한테 확인해 봤더니 화살을 어떤 방향에서 뽑느냐에 따라 상처가 더 날 수도 있기 때문에 현재 상처만으로는 화살의 방향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홍성훈 경찰관은 항소심 증인 신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렇게 진술이 어긋나는데 어떻게 증인 신청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1심에서 불렀던 증인을 항소심에서 다시 증인으로 채택하는 일이 전혀 드물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데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증인 신청을 한 김명호 교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증인 신청을 받아주지 않은 재판부가 문제인 셈입니다.

항소심에서 유죄 선고를 하는 신태길 부장 판사 연기를 하고 있는 문성근.


남상욱 기자 기사에는 이런 문제도 있습니다. 남상욱 기자는 '번복'이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모르나 봅니다. 번복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진술이나 주장 따위를 이리저리 뒤집음"이라 나옵니다. 남상욱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김 전 교수의 법정 진술도 번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1심 초반부에 "(석궁을) 고의로 쏘지 않았다"고 주장하다 후반부와 항소심에서는 "박 부장판사가 자해를 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박 부장판사가 화살에 맞았지만 자신이 쏜 것은 아니라는 소극적인 부인에서, 아예 화살에 맞은 것조차 사실이 아니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번복'이 아니라 '추가'일 따름입니다. 김명호 교수는 "고의로 쏘지는 않았다"는 진술을 한 번도 바꾼 적이 없습니다. 자기가 들고 간 석궁에서 어쨌거나 화살이 발사된 사실은 인정을 했습니다.(말하자면 몸싸움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사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른 정황이 제시됐고 그에 따라 박홍우 부장판사가 화살에 맞지 않았을 수 있으며 그렇다면 상처는 자해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린 '다른 정황'이란 이렇습니다. 박홍우 부장판사가 사건 당시 입었던 내복과 양복 조끼에서는 화살에 맞아 구멍난 부분이 핏자국이 있는데 가운데 끼여 있던 와이셔츠 구멍에는 핏자국이 없었던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요?

그럼에도 남상욱 기자는 법원의 주장만을 그대로 옮기고 있습니다. 기사의 마지막 결론 부분은 법원 쪽 이야기뿐입니다. "법원은 이 같은 공판 기록을 보더라도 김 전 교수에 대한 판결에 문제의 여지는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공판 절차 과정에서 혈흔 대조를 하지 않는 등 일부 증거 확인에 소홀히 한 점 등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1심과 2심은 물론 대법원도 일관되게 ▦사전 답사와 연습 등의 범행 전 정황과 범행 후 빈 시위를 당기고 '죽이겠다'고 말한 정황 ▦석궁, 흉기, 노끈 등의 증거 ▦목격자 진술 ▦석궁의 구조와 위력에 대한 실험 결과 ▦박 부장판사의 와이셔츠 등 옷에 묻은 동일한 남성 혈흔의 유전자 분석 ▦박 부장의 손에 상처가 없는 등 석궁에 외력을 가하지 않았다는 정황 등의 근거를 통해 '결정적 증거인 부러진 화살이 없다'는 등의 김 전 교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유죄를 입증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항소심 공판기록과 달리 영화는 사법부에 문제가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 부분만을 부각시켜 만든 허구임에도 이를 사실로 몰고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저라면 이런 식으로는 기사를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쪽팔릴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영화에서 법정 안 장면은 100% 사실에 근거했다고 하는 정지영 감독과 박훈 변호사.


그리고 여기서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석궁의 구조와 위력에 대한 실험 결과'가 어떻게 김명호 교수 유죄 증거가 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먼저 법정에서는 이런 실험이 있지 않았습니다. 김명호 교수가 신청했지만 재판장은 기각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석궁 관련 전문가들 증언입니다. 석궁 완전 장착 상태에서 발사된 화살은 위력이 세어서 사람 몸을 관통하는 반면, 불완전 장착 상태에서는 그냥 흘러내릴 뿐 아예 발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증언은 박홍우 판사 몸에 난 상처가 화살 때문이 아님을 일러주며, 따라서 김명호 교수가 이 부분에 대해 무죄임을 입증하는 것이지 어떻게 해서 유죄 증거가 될 수 있겠습니까?


김훤주

부러진화살
카테고리 정치/사회 > 법학
지은이 서형 (후마니타스, 2009년)
상세보기

카카오톡으로 친구맺기

글쓴이 : 김훤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yeogangyeoho.tistory.com 여강여호 2012.01.27 14: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bc 보도국 기자들의 제작거부가
    생각만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도
    그동안 한국언론이 보여준 실망스런 작태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2. 김상원 2012.01.28 14: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