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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자지만 기자협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첫째 투명하지 못하고, 둘째 기자윤리 문제에 대한 자정(自淨) 능력이나 의지가 없을뿐 아니라, 셋째 오히려 기자들의 특권(特權) 의식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기자협회는 1964년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의 언론 통제에 저항하기 위한 투쟁의 구심체로 창립된 단체입니다. 실제 기자협회는 노동조합이 없던 시절 노동조합도 하기 힘든 대정부 투쟁을 이끌며 많은 간부들이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88년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정권의 언론 통제에 맞선 투쟁은 노동조합의 몫이 되었고, 상대적으로 기자협회는 많은 짐을 덜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기자협회는 광고와 '촌지', 해외연수 등 온갖 특혜로 기자를 통제하려는 자본권력에 맞서 내부 자정운동에 나섰어야 했습니다. 87년 6월항쟁 이후 새로운 언론매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가운데 수많은 '사이비(似而非) 언론', '사이비 기자'도 양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협회는 자정운동을 통해 기자 사회의 직업적 건강성과 자존심을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여야 했습니다.
제43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한국기자협회
하지만 기자협회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촌지'와 성접대를 받은 사실이 들통나 세상이 발칵 뒤집어져도 기자협회는 기자에 대한 징계는커녕 그들이 회원인지 아닌지조차 따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법률에 의해 명백한 유죄 판결을 받은 기자에 대해서도 기자협회는 입장 표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변호사협회나 의사협회와 같은 직능단체가 아주 드물게나마 사회적 물의를 빚은 회원에 대해 '제명' 조치를 하는 것은 자기 직업의 권위와 신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입니다. 도마뱀이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꼬리를 자르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래서 제 눈에는 기자협회가 기자라는 직업의 이익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기자협회가 자정 기능을 하려면 스스로 투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20여년 동안 회원이었던 저는 단 한 번도 기자협회가 회계를 공개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회비를 내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은 규모가 크든 작든 모든 수입과 지출을 세부내역까지 공개합니다. 그러나 기자협회가 기업과 기관에서 협찬이나 광고를 얼마나 받았는지, 그걸 어디에 썼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기자 3년차이던 1992년 기자협회가 주최하는 '산업시찰'에 처음 따라 가본 적이 있습니다. 현대그룹 계열사의 '협찬'으로 경주의 특급호텔에서 공짜로 먹고 잔 후, 현대중공업을 견학하는 행사였습니다. 제가 보는 기준에선 분명 '기자 윤리'에 어긋나는 행사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07년 기자협회의 속리산 등반대회에 가봤더니 여전히 기업체의 협찬을 받은 온갖 선물이 푸짐하더군요.
이런 기자협회가 곧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는 모양입니다. 이번엔 7000여 회원들의 모바일 직선 투표로 뽑는다는군요. 그래서인지 우리 편집국에도 선거홍보물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한 후보의 홍보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학과 협약하여 등록금을 깎아주고 병원과 협약하여 진료비를 깎아준다는 것입니다. 명백한 특혜입니다. 압권은 '여기자를 위한 성형외과와 MOU'였습니다. 그의 블로그에는 "예뻐지고 싶은 여기자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구요. 병원MOU이후 가장 많은 문의전화를 받았습니다"라는 자랑까지 올라 있었습니다.
여기자들이 예뻐지고 싶어 안달난 사람입니까? 과연 이걸 보는 여기자들은 기자협회 회원이라는 게 뿌듯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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