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시민 기자는 회사 기자 따라 하면 안 된다

김훤주 2012. 2. 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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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6일 오전 합천군에 있는 지역 주간지인 합천신문에 가서 이른바 '시민기자 교육'을 하고 왔습니다. 가서 보니 어르신들이 많았습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럭저럭 말씀드릴 수는 있었습니다.

이 날 얘기 가운데 강의를 들은 이들이 가장 좋아한 대목은 "문법이나 띄어쓰기에 휘둘리거나 얽매이면 안 된다"는 대목이었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이 조금 풀어진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1. 시민 기자란?

2000년 2월 22일 <오마이뉴스>가 창간하면서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습니다. 여태까지는 특정 매체에 소속된 기자의 기사와 사진만 신문방송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서 일상에서 생활을 하는 시민들도 기사를 쓰고 사진을 찍어 매체들에 보낼 수 있는 길이 생겼습니다.(시민기자들에게 이런 매체에 기사를 싣는 권한까지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시민 기자는 무엇일까요?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시민기자는 전문 기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회사 기자(여러 다른 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뭉뚱그려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문 기자는 기사를 쓰는 훈련을 받았지만 시민 기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문 기자는 기사를 쓰는 자격을 나름대로 갖췄지만 시민 기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문 기자는 기사를 쓰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지만 시민 기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 기자는 특정 매체의 조직 체계 속에서 움직이지만 시민 기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 기자는 특정 매체의 사시(社是)라든지 방침에 따라 움직이지만 시민 기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 기자는 소속된 매체의 조건을 벗어나면 안 되지만 시민 기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민 기자는 자유로운 기자입니다. 시민 기자는 자기 자신에게말고는 얽매이는 데가 없는 기자입니다. 시민 기자는 자기 이해 관계와 자기 관점에 따라 기사를 쓰는 기자입니다.


2. 제대로 시민 기자 노릇을 하려면


자기가 소속된 매체로부터 아무것도 누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어떤 시민기자는 자기가 소속된 매체의 명함을 만들어 갖고 다니기도 합니다. 어떤 시민기자는 자기가 소속된 매체에 보도된 자기 기사를 들고 다니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자랑이나 자부가 모두 나쁘다는 취지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매체가 아닌 단체에서도 시민기자를 모집하네요.


다만, 이런 것을 내보임으로써 자기가 소속된 매체의 영향력을 자기가 행사하려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를테면 합천신문 사장이랑 잘 안다거나 편집국장이랑 잘 지낸다거나 영향력 있는 간부들이랑 친하다거나 하다고 뻐기고 다니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사이비'로 낙인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이비는 언제나 자기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존재입니다. 자기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무엇의 빛남을 등에 업고 행사하려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시민 기자로 제대로 활동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소속된 매체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면 안 되는 까닭이 또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자기가 소속된 매체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다가 매체로부터 눈밖에 나게 되면 자기가 목적한 바 '매체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소속) 자체가 박탈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자유로운 시민 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시민 기자가 기사를 쓰는 것은 자유지만 그 기사가 보도되는 것은 자유가 아닌 현실'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기자로 남으려면 자기로 하여금 시민기자로 활동하게 해 주는 매체를 통해 이득(원고료는 제외)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 시민 기자로 제대로 활동하는 데 필요한 으뜸가는 자세입니다.


3. 시민 기자 구실을 잘하려면


첫째 회사 기자를 따라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글쓰는 투가 그래야 합니다. 회사 기자의 글투는 이미 상투가 돼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앞에 내세우는 역삼각형 구조로 씁니다. 그러면서 가장 앞에 내세우는 한 문장에 앞으로 얘기할 모든 것을 요점 정리해서 담으려고 합니다.

시민 기자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런 글투를 이미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쓰는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 기자는 보편타당한 내용을 다루려는 성향이 짙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관심을 가질 그런 내용을 자기 기사에 담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사는 세상 모든 매체가 다 다룹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회사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은 그런 보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시민 기자에게 사람들이 바라는 바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4. 동네에 뿌리 내리는 시민 기자

대신 자기가 종사하는 일에 관한 부분을 주로 많이 다루면 좋겠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글을 꾸미고 사실 관계를 왜곡하시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쌀농사를 짓는 시민 기자라면 쌀농사에 대해서, 어린 아이를 키우는 시민 기자라면 아이 키우는 일에 대해서, 관광 안내를 하는 시민 기자라면 관광 안내에 대해서, 밥집을 하는 시민 기자라면 밥집 운영에 대해서 기사를 쓰는 것입니다. 아울러 자기가 잘 알고 있거나 잘하는 분야에 중점으로 다루는 것도 썩 좋은 일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기사거리를 찾아내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늘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신기하고 새로운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기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며칠 전 쌍책면사무소를 들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둘레에 밥집이 없었습니다. 밥집 간판을 달고 있는 데는 몇 군데 있었지만 실제로 영업을 하는 데는 없었습니다.

대신 외곽에 합천박물관 가까운 데에 밥집이 두 곳 있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소개하면서 왜 이렇게 됐는지까지 차분하게 풀어쓰면 훌륭한 기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밥집은 이렇게 지리멸렬한데 다방은 다섯 군데나 됐습니다. 이름도 다양했습니다. 왕다방, 꼬치다방, 정자다방, 성산다방, 옥다방. 저마다 이름에 담긴 뜻을 알아내어 적고 이렇게 조그만 면소재지에 다방 수요가 왜 많은지를 따져 보면 이 또한 괜찮은 기사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회사 기자가 아니라 해당 지역에 뿌리내리고 사는 시민 기자일 것입니다.(나중에 알아봤더니 이 가운데 두 곳만 실제로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합천을 보기로 들자면, 합천에 있는 여러 산들만 다뤄도 좋습니다. 합천댐 둘레 명소만 다뤄도 좋습니다. 팔만대장경에 대해 파고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물론 여태 다른 사람들이 했던 내용을 되풀이하는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마지막 하나는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시민 기자한테 바라는 것은 아주 빼어난 명문이 아닙니다.(그리고 회사 기자 가운데서도 그렇게 빼어난 명문을 쓰는 사람은 드뭅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나 문법 따위는 틀려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틀려도 괜찮다고 여길 때 오히려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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