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182

이런 따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따뜻한' 사람들,이라 말할 때 하고 '뜨거운' 사람들, 이라 말할 때 하고는 느낌이 다릅니다. 뜨거운 사람은 우리 일상에서 많이 보는데, 뜻밖에도 따뜻한 사람은 쉬 만나지지 않습니다. 희귀종, 멸종위기종이랄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멸종 위기에 빠진 '따뜻한' 사람을 몇몇 알고 있습니다. 저는 뜨겁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습니다만 말입니다. 오히려, 차갑다는 평을 저는 많이 받습니다만. 한 사람이 있습니다. 58년 개 띠입니다.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농부가 돼 있습니다. 이름을 대면 많은 이들이 아는, 꽤 이름난 시인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옛날 시내버스 승차권이 있던 시절입니다. 이 사람은 반드시, 꼭, 어떤 일이 있어도, 현금을 내고는 절대 시내버스를 타지 않았습니다. 버스표 파는 데가 길 건너..

수학여행 가더니 딸이 달라졌다

중학교 2학년 올라간 우리 딸 현지가 오늘 새벽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에부터 몸이 달아서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쁘던 애가 어제는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서 그렇답니다. 사실 따져 보니 현지가 어제말고 그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했습니다. 친구랑 둘이서, 걸어서 30분쯤 되는 이마트에 가서 커다란 봉지 가득 먹을거리랑 마실거리를 사 오더니 장딴지까지 오는 스타킹이 빠졌다고 다시 사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사귄지는 한 달밖에 안 된 것 같지만, 어쨌든 친구들이랑 '나는 머리말리개 가져갈게 너는 머리 마는 기계 가져와.' 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도 하고, 아이 선생님은 왜 귀고리를 못하게 하는지 몰라 투덜거리..

만우절 날 떠오른 어머니의 거짓말

만우절 하면 거짓말이 떠오릅니다. 제가 겪은 거짓말 가운데 가장 생생한 기억인데 아마 어머니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만우절에 겪은 일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저만 이런 일을 겪지는 않았을 텝니다만. 어린 시절 ‘국민’학교 다닐 때 저희들은 창녕 옥만동 집에서 말흘리 창녕국민학교까지 걸어서 다녔습니다. 2킬로미터 남짓 되는 거리였는데 동네 형들이랑 동기들이랑 동생들이랑 무리지어 가면 때로는 1시간 가량 걸리기도 했습니다. 등굣길은 보통 예닐곱이 한데 몰려 다녔습니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논밭이 이어지는 시골길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장난을 치고 길 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이것저것들을 건드리면서 가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지 싶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깨웠습니다. 날이 샌 지 오래 됐으니 빨리..

꽃잎에 눈길 빼앗기지 않기를

오늘 아침과 점심 창원을 가로지르는 창원대로를 자동차를 몰고 오갔습니다. 길 가 양쪽으로 벌어선 벚나무들이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꽃눈만 야무지게 물고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둘 꽃망울로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벌써 화들짝 피어난 목련은 이미 허드러져 버려서 철모르는 아이들 웃음만치나 커져 있고요, 어금니 앙다문 듯한 개나리도 저만치서 노랗게 종종걸음을 치고 있습니다. 발 밑 어딘가에는 제비꽃이 피었을 테고, 그 옆에는 보송보송 솜털을 머금은 새 쑥이랑 피나마나 하얗게만 보이는 냉이꽃까지 어우러지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따라 화사한 햇살이 아주 좋은데, 어울리지 않게시리 꽃잎의 떨어짐이 '퍽' 뒤통수를 때리며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떨어지고 나서도 아름다운, 그런 꽃잎 말입니다. 그러는 다른 한편으로는, '꽃잎..

붓글씨로 점잖게..."이 놈들아!?"

오늘 볼일 보러 부산에 갔다가 양정동 주택가에서 이렇게 사진처럼 "이 놈들아!/ 쓰레기 버리지 마라/ 확인되면/ 요절을 낼 것이다"고 적은 종이쪽을 봤습니다. 표현이 고풍스럽기도 하거니와 아주 단정하게 내려 쓴 붓글씨여서 어째 좀 어울리지 않는다 싶으면서도 눈길이 확 끌렸습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당신 집 앞을 오가는 어린 학생들이 껌껍질이나 얼음과자 봉지 따위를 버리니까 붙였겠지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학교 드나드는 길목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발짝 걸으면서 생각해 보니, 조금 안 맞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남학교뿐 아니라 여학교도 있고 남녀 공학 학교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스개입니다만, "이 놈들아!"보다는, "이 년놈(또는 놈년)들아!"가 더 맞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를 만만하게 낮춰 이르..

왜 나이를 묻지 않고 학번을 묻나?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제게 나이를 물어오는 경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부분 “나이가 몇 살이오?” 했지만 요즘은 대부분 “학번이 어떻게 됩니까?” 묻습니다. ‘간접화’가 원인입니다. 그대로 드러내면 불편하다 싶을 때, 이를테면 똥 대신 대변, 대변 대신 ‘큰 거’, 개장국 대신 보신탕, 보신탕 대신 사철탕…. 나이를 바로 물으면 다들 좀 민망하다 여기지 않습니까? ‘학번’은 대학의 그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학번을 묻는 배경에는 대학 진학이 일반화된 현실이 있다고도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대학 못 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저는 “칠공(70) 학번입니다.” 그럽니다. 상대방은 ‘나이가 도대체 얼마야? 쉰을 훨씬 넘었다는 말이야?’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면 재빨리, “국민학교 학..

인연(因緣)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 나의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 나의 어머니의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 나의 아버지의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의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의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의 어머니의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의 아버지의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 이런 식으로 지금 '나'와 '아내'를 있게 만든 인연의 뿌리를 따라 거슬러 오르면, 30대까지만 쳐도 10억7374만4824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와 아내가 지금 여기서 만나기까지 개..

동지(同志)

동지(同志)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쓰지 않습니다. 기자 동지는 물론 당원 동지도 물론이고 조합원 동지 여러분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저하고 뜻(志)이 같은(同) 사람이 그리 많으리라고 생각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그리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민주노동당이 분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더욱 그리 여기게 됐습니다. 민주노동당 당원 '동지'들은, 토론이나 논쟁을 하면서, 평등파는 상대를 '자주파 동지들'이라 하고 자주파 또한 상대를 일러 '평등파 동지들'이라고들 종종 일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입에 발린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갈라섰습니다. 동지가 맞다면 갈라서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이들은 서로를 동지라고 할 때부터(사실은 그 전부터!) 상대방을 동지로 여기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마다 말글..

2MB의 별명은 명돈이?

아들 친구 녀석 가운데 별명이 인 아이가 있습니다. 본래 이름이 인데, "아침에도 갈비를 먹고 학교 온다." 해서 붙은 별명이랍니다. 경택의 아버지 어머니께서 갈비집을 하신답니다. 그러니 아들 녀석 아침밥을 미리 챙겨놓지 못했을 때에는, 전날 팔던 갈비를 구워 먹이기도 했겠지요. 우리나라 대통령의 인생에 이를 대입해 보면 그이는 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명돈은, 어버이가 챙겨주신 경갈이와는 달리 자기가 스스로 나서서 그리도 밝혔지 싶습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입학식서 민사고·특목고 강조하는 학교?

1.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어른들은 '친구 목소리가 어떠냐!' '무슨 놀이를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를 수집하느냐?' 이렇게 말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아버지는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바로 어른들이 묻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저도 좋아하는 에 나오는 말입니다. 를 쓴 쌩떽쥐뻬리가 살았던 프랑스에서는 이쯤에서 어른들 물음이 끝났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른들은 친구 아버지 한 달 소득을 알고 나면 곧바로 "학교 성적은 몇 등이나 하냐?"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2. 며칠 전 우리 딸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입학식을 했나 봅니다. 우리 딸 현지와 어제 밤 이런저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