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서울 수탈 문화재 반환 안 되는 까닭

김훤주 2009. 6. 16. 08:02
반응형

1. 경남에 없는 경남 문화재

창원 봉림사터 진경대사 보월능공탑비(보물 363호)와 산청 범학리 3층석탑(국보 105호)처럼, '경남 출신' 문화재들이 꽤 많이 서울 등지로 '반출'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등에 박힌 채 '반환'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은 한 번 드린 적이 있습니다.

경남의 경우 창원 다호리 고분군과 창녕 교동 고분군 ·함안 도항리 고분군 ·합천 반계제 가야고분 출토 유물이 대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습니다. 창녕 술정리 동3층석탑(국보 34호) 사리장엄구, 의령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 등도 아직까지 '반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한편 반환운동의 경우 경남에서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약탈당한 진주 연지사 동종을 되찾자는 운동을 빼면 양산에서 유일하게 2007년 한 때 민간 차원으로 일본과 국립중앙박물관을 대상으로 유물 환수 운동을 벌였으나 지금은 잠잠하다고 합니다.

산청 벅학리 삼층석탑. 수장고에 들어가기 전 경복궁에 있을 때 모습. 문화재청 사진.

2. 반환 성공 사례 전주 경기전 태조 어진(御眞)

경남뿐 아니라 다른 지역은 행여나 어떤지 싶어 이번에 좀 살펴봤더니 이처럼 반출된 문화재는 적지 않은 반면 반환돼 돌아온 문화재는 전라도 광주와 전주에 각각 하나씩 두 개밖에 없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제대로 된 수장·전시 시설과 연구 인력을 갖추면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는 국유재산이므로) 대여 형식으로 반환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여태까지 대여 형식으로 원래 자리로 반환된 유물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전북도가 조직적인 유물반환 운동으로 성공한 모범 사례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보물 931호)이 훼손된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드러나면서 복원을 위해 2005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당시 보관을 잘못했기 때문에 태조 어진이 전주로 돌아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태조 어진은 전주 시민을 비롯한 전북의 자긍이 걸린 문제였고 허술한 유물 관리를 바로잡는 등 지역 주민들이 3년가량 반환운동을 이어왔다고 합니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12일 문화재청은 태조 어진의 봉안 장소를 원래 있었던 전주 경기전으로 정하고 10월 환안 행사를 치렀습니다.

성공 사례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해당 지역으로 돌아온 보기는 하나 더 있습니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는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국보 103)입니다. 원래 전남 광양 중흥산성에 있었으나 일제는 약탈을 목적으로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갔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이 석등은 이후 1959년 경무대(景武臺), 1960년 덕수궁, 1972년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원래 자리는 아니지만 국립광주박물관이 들어서면서 1990년 여기로 옮겨졌습니다. 국립광주박물관 관계자는 이를 두고 '반환' 개념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져가겠다고 요구하면 언제든지 줘야 하는 '임시 이관'이라 했습니다. 나아가 국립광주박물관에 오게 된 까닭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대체할 석등이 있었고 광주 지역이 경주나 부여와 달리 석등이 적고 대표할만한 석등 또한 없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3.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은 '비용'·'법률' 타령

이밖에는 성공한 보기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강원도 원주가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장 큰 치욕을 겪은 것 같았습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국보와 보물 등 9개에 대해 10년 넘게 반환운동을 벌였으나 메아리 없는 아우성으로 그치고 말았거든요.

법천사 터 지광국사 현묘탑. 아주 화려해서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옮겨갔습니다.

원주문화원·상공회의소·예총 등이 나서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101호)과 전(傳) 흥법사 염거화상탑(국보 104호) 등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국립중앙박물관은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고 돌려 줄 법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습니다. 지광국사 현묘탑의 경우 경술국치 직후인 1912년 일본 오사카로까지 약탈당해 나갔다가 돌아와 조선총독부 앞에 세워져 있다가 그 뒤 해방이 되면서 국유로 됐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서 용산에 새로 건물을 지어 옮긴 2005년에는 어쨌든 해체를 해야 하니 비용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얘기가 있었으나 결국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옮기는 과정에서 망가질 개연성이 있다는 말도 나왔고 경위야 어찌 됐든 국유 재산이라 법률 근거 없이 처리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원주시는 '반환'을 포기했습니다. 현묘탑이 있던 법천사 터 등지에 복제 모조품을 만들어 세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지광국사 현묘탑 말고 현묘탑비는 지금도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있는데, 원래 짝은 서울에 빼앗기고 새로 짝을 맞아들여야 하게 생겼습니다.

4. 국립박물관 주장도 일리는 있다

문화재청과 국립박물관들이 꼽는 가장 큰 문제는 문화재를 바라보는 자치단체의 시각이랍니다. 지역 '출신' 문화재를 전시·보유할 권리는 주장하면서도, 정작 문화재를 보존·관리·연구하는 인력이나 시설에 대한 투자는 거의 없다는 말입지요.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한 학예사는 "학예연구 인력을 둬야 하고 또 시설과 문화재 보존·유지·관리에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박물관을 짓는 데는 뒤로 빼는 자치단체한테 과연 유물과 문화재 반환을 주장할 명분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는 말을 던졌습니다.

국립광주박물관 관계자도 "자치단체 박물관의 경우 여건이 안 갖춰진 곳이 대부분이라 위탁으로 돌려주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유물 관리와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돌려받으려는 쪽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5. 문제 푸는 첫 단추는 제대로 된 지역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청은 보관·안전만 담보되면 돌려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기는 하지만, 지역에 대한 불신이 커서 그리 쉽게 돌려줄 생각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라 전체를 대표할만한 유물이면 서울에 있어야 한다든지(대표성), 어지간하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기 좋은 서울에 있어야 한다든지(대중성) 하는 논리도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이다 보니, 문화재청이나 국립중앙박물관으로서는 학술 연구를 하더라도 대상 유물이나 문화재가 비수도권으로 멀리 있는 것보다는 같은 서울 울타리 안에 있으면 훨씬 편리하겠지요. 그러나 이런 점은 까닭으로 크게 내세우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자치단체로서는 박물관(유물전시관 포함) 같은 시설을 먼저 갖춰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것이 지역 사회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하겠지요. 양산이나 창원은 돋보이는 축입니다. 유물전시관을 지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김해박물관에 나가 있는 복천동 고분군(양산)과 다호리 고분군(창원) 유적을 돌려받는 '베이스캠프'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을 관광 거점으로 삼으면 산업 측면에서도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지산동 고분군을 끼고 고분 박물관을 지은 경북 고령과 대성동 고분 박물관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있는 김해를 모범으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지역 주민들의 역사 의식을 드높이는 데도 보탬이 될 것입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