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바라본 세상]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진보·개혁세력 동반 몰락 책임…사이비와 결별해야
진보·개혁세력의 대선 참패를 둘러싼 책임 논란이 해를 넘기며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진보의 구체적인 상을 내놓지 못하고 흘러간 옛 노래만 불러대던 민주노동당에 매질이 집중되고 있다. 나 또한 '진보정당이니까 찍어달라고 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주장해왔던 사람으로서 이번 매질이 오히려 만시지탄이라는 느낌이다.
늦은 만큼 민주노동당은 더 철저히 깨져야 한다. 그래서 "왜 지금 갑자기 '종북주의'인가"라며 '진보세력의 대동단결'을 외치는 손석춘씨의 주장은 허망하다. 그의 '대동단결론'은 민주노동당마저 대통합민주신당이나 그 이전의 열린우리당처럼 '잡탕 정당'’으로 만들자는 말처럼 들린다.
나는 오늘날 민주노동당의 문제가 우파 민족주의자와 좌파 사회주의 및 사민주의자, 그리고 그 틈에서 눈치 보던 정치 기회주의자들의 불안한 동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재창당이든, 분당이든 진보정당으로서 제갈길을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역사의 진보는 몇 년 단위가 아니라 좀 더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만 문제인가?
민주노동당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이른바 '시민단체'에 대한 답답함이다. 민주노동당에게 진보정당으로서의 실패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만, 진보·개혁세력 전체의 동반몰락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나는 그 책임이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시민단체와 시민운동가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권은 재창출에 실패하고, 정당은 해체되거나 선택받지 못하는 걸로 일단 책임을 진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시민운동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물론 책임 질 의무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들이 시민단체와 진보·개혁세력을 한 묶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단체의 문제는 곧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따라서 그들 중 누군가 책임을 지지는 않더라도 진보·개혁의 위기를 논할 때 시민단체에 대한 평가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본다.
주지하듯 시민운동은 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의 대안운동처럼 시작됐다. 이 덕분에 그동안 '정권타도'에만 집중돼 있던 과제를 각 지역과 분야별로 구체화시켰고, 풀뿌리 현장에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시민단체의 그런 노력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탄생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잡탕'이 돼버린 진보·개혁세력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양날의 칼이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개혁연(然), 진보연하던 한 무리의 시민단체 사람들이 우르르 정권의 품이나 외곽기구에 들어가더니,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그보다 더 많은 무리가 또 우르르 들어갔다.(엄밀히 말하자면 김영삼 정권 때부터 그랬다.)
원래 꼴통 보수주의자였던 사람들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품에 들어가 짐짓 개혁주의자 행세를 했다. 김대중 정권이 만든 '제2건국위원회'는 지역토호세력의 잔치판이었다. 거기에 시민운동가들도 들어가 어울렸다. 그러나 정권 말기가 되자 토호들은 모두 뛰쳐나와 앞다퉈 한나라당에 들어갔다.
노무현 정권이 만든 '지역혁신협의회'도 다르지 않았다.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 시민운동가와 토호들이 또 한번 '잡탕'이 됐다. 역시 정권 말기가 되자 노무현 대통령이 끌어들인 김혁규(전 경남도지사)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회창 신당에 줄을 섰고, 그들 따라 열린우리당에 갔던 장인태(전 경남도 행정부지사) 전 행자부 차관은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신(新)관변단체의 출현
시민단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그에 앞선 김영삼 정권 때부터 사상 유례없는 '대접'과 '특수'를 누렸다. 노태우 정권 이전까지만 해도 '민주투사'였던 시민단체의 실무간사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입맛에 맞는 프로젝트 기획자로 변신했다. 새로운 민간단체 지원예산이 편성됐다는 소문이 나돌면 설탕을 본 개미떼처럼 맞춤형 프로젝트가 생산됐다. 예산지원을 노리고 급조된 단체도 줄줄이 생겨났다.
예산을 받아 진행된 사업 중 상당수는 '부실' 혐의가 짙었지만 관리와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프로젝트 사업에서 가짜 영수증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됐다. 언론도 건물이나 교량, 도로의 '부실공사'는 곧잘 지적했지만, 시민단체의 '부실프로젝트'와 '예산 떼먹기'는 제대로 짚지 못했다. 취재접근 자체가 어려웠던 탓이다. 시민단체 역시 스스로 불리한 정보에 대해서는 관료조직 이상으로 철벽이었다.
이렇게 많은 시민단체들은 '신(新)관변단체화'했고, 시민운동가들은 지원금을 따내기 위한 프로젝트 장사꾼이 됐다. 시민단체가 장사가 된다 싶으니 사이비 시민운동가들도 줄을 이어 생겨났다. 과거 민주화운동이나 이후 시민운동에서 검증된 바 없는 교수나 의사, 약사, 변호사들이 시민운동에 줄을 댔다. 시민단체는 그들의 명망이나 재력에 눈이 어두워 각종 위원장이나 본부장, 이사, 위원 직함을 붙여줬다. 심지어 요즘은 지역개발을 위해 한시적으로 만든 이익단체도 시민단체라는 이름을 쓴다.
그들은 이렇게 뒤섞였다. 국민은 진보와 보수, 진보와 개혁을 구분할 수 없었다. 모두가 한통속이었다.
이제는 갈라설 때가 되었다
한나라당의 정권 탈환은 이렇게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피아(彼我)를 식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대선 이후 피아 식별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곳은 민주노동당 뿐이다. 시민단체 안에는 그런 목소리를 낼 사람도 없고, 기풍도 사라져버렸나 싶어 답답하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원론으로 돌아가 '시민단체'라는 이름부터 정리하자. 정부나 자치단체로부터 사업비는 물론 경상비까지 지원받는 단체를 일컬어 '관변단체'라고 한다. 경상비까진 아니더라도 예산을 받아 사업을 수행하는 단체는 '준관변단체' 쯤으로 부르는 게 마땅하다. '관변'이라는 말이 기분 나쁘다면 '정부보조단체'로 정리해도 좋다. 정부가 해야 할 공익사업을 보조적으로 수행하는 단체라는 뜻이다.
시민단체는 그야말로 시민의 자발적인 회비와 참여로 움직이는 단체여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전국 각지에 구성돼 있는 '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대부분 '정부보조단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단체들은 스스로 '시민단체'라는 이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이건 정말 어렵게 활동하고 있는 '진짜 시민단체'들까지 죽이는 일이다.
둘째, '정부보조단체'가 국민의 세금으로 수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의 팸플릿이나 자료집에는 반드시 지원받은 예산의 액수와 명목, 지원기관을 명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행사는 행정자치부의 ○○○지원사업에 따라 ○○○항목의 사업비 ○○○만 원을 ×××단체가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는 내용을 밝히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지원된 금액에 비해 터무니없는 부실프로젝트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또한 국민은 내 세금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최소한의 자정과 피아 식별이 안 된다면 아래와 같이 '시민단체'의 정의를 아예 바꿀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市民單體) : [명사] 한국의 기회주의적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정부 및 다국적 기업들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사적·공적기금들을 써먹으려는 의도에 따라 만든 단체.(제임스 페트라스, ‘NGO는 없다, 운동귀족이 있을 뿐’, <월간 말> 2000년 5월호에서 응용)
김주완 : 1991년 진주에서 일어난 한 시국사건이 전국 언론에 의해 완벽하게 왜곡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것을 계기로 지역신문 기자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진주신문>과 <경남매일>을 거쳐 6200명의 시민주주가 만든 <경남도민일보>에서 자치행정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역현대사와 언론개혁에 관심이 많아 <토호세력의 뿌리>(2005, 도서출판 불휘)와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2007, 커뮤니케이션북스)라는 책을 썼다. 지금의 꿈은 당장 데스크 자리를 벗고 현장기자로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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