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김태익이라는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경우

김훤주 2011. 4. 25.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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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이란 말과 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사람)이고 분명하지 않거나 혼동 또는 혼돈돼 있는 사실을 뚜렷하게 나누고 가지런하게 질서를 잡는 일(사람)입니다. 물론 그런 일(사람)을 조선일보에서 기대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차치하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김태익이라는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4월 12일치 조선일보에 쓴 글 '보훈처 서훈심사위가 궁금하다'는 장지연(1864~1921)에 대한 건국훈장 서훈 취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이는 정부의 서훈 취소를 두고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내세운 '장지연은 친일파'란 주장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셈"이라고 했습니다.

또 김태익이라는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같은 글에서 "장지연은 말년에 일제의 식민통치를 두둔하는 글을 몇 편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그의 인생의 흠은 될지언정 애국계몽운동가로, 언론인으로, 국학자로 그가 한국근대사에 끼친 공(功)을 부정할 정도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 훈장을 줄 당시(1962년) 사람들의 판단이었다"고 했습니다.


장지연 서훈 당시는 과오에 대한 검토 없었다

그러나 이는 아무 증거도 없는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1962년 당시에는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1905년 '시일야방성대곡'을 썼고 매천 황현의 '절명시'를 1910년 경남일보에 실었다는 공만 다뤄졌습니다. 장지연의 친일 글을 서훈 당시 다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김태익이라는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이렇게도 적었습니다. "장지연 친일 문제는 2005년 출범한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위원회는 '당대 지도자로서 기대에 미치지 못해 유감이지만 (친일 혐의를) 엄격히 적용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며 장지연 경우를 친일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여기까지는 맞습니다.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장지연을 친일 인사로 규정했습니다만, 정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친일 인사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 위원회 요청에 따라 자기가 연구한 결과를 관련 자료로 제출했던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는 그와 같은 결정을 두고 제게 "좀 이상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충분히 친일 인사로 간주할 정도가 되는데 그리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는 이런 것들이 모두 줄기가 아니고 곁가지일 따름입니다. 2005년 당시 진상규명위원회 결정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여기서 말고 따로 따져야 할 성질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친일 인사 규정 안 됐어도 '서훈 취소'는 될 수 있다

그런데 이어지는 글이 꼬여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것을 다르게 나누지 않고 한 데 뒤섞어서 옥석(玉石)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궁금한 것은 같은 정부 기관에서도 논외로 하기로 한 장지연 문제를 보훈처 서훈심사위원회가 민간단체 주장에 따라 '친일'로 밀어붙인 배경이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친일 인사'로 보지 않았는데 서훈심사위원회는 '친일 인사'로 봤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진상규명위와 서훈심사위의 기능과 성격이 서로 다름을 모르거나 애써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잘못입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친일 인사'냐 아니냐를 결정합니다. 2005년 열린 진상규명위원회는 장지연이 '친일을 하기는 했지만 친일 인사로 분류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결정한 것입니다.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 인사로 규정한 이는 모두 1005명입니다. 이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 인명 사전>에 들어 있는 친일 인사 4389명에 견주면 아주 적은 편입니다.

박정희도 친일 행적 있지만 친일 인사로 분류되지 않았다

진상규명위에서, 친일 행적이 있기는 하지만 '친일 인사'로 분류되지 않은 사람은 장지연 말고도 독재자 박정희와 작곡가 홍난파와 작곡가 안익태 같은 사람이 더 있습니다. 물론 조선일보의 방응모와 동아일보의 김성수는 친일 인사로 분류됐습니다만.

이는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제2조에서 '정황이나 1차 자료가 아니라 입증 가능한 구체적인 행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상규명위에서 선정된 친일 인사들은 더욱 적극적이고 명백한 행위와 결과가 있는 친일을 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런 진상규명위와 달리 서훈심사위원회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유지)할만한 사람이냐 아니냐를 결정합니다. 2010년 열렸던 서훈심사위는 장지연이 진상규명위에서 규정된 친일 인사는 아니지만 그이의 친일 행적이 독립유공자 지위를 그대로 두면 안 될 정도라고 결정한 것일 뿐입니다.

낙제 안 됐으니 우등상 빼앗지 말라는 꼴

이는 낙제생과 우등생으로 비유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낙제 벗어난 것을 갖고 우등상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우기는 셈입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낙제생을 가리는 기구인 반면 서훈심사위원회는 우등생을 골라내는 기구입니다. 장지연은 옛날 우등생으로 선정이 됐었는데 나중에 부정 행위를 했음이 드러난 경우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 때문에 낙제생으로 꼽아야 마땅한지 진상규명위에서 검토해 봤더니 그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다음으로 서훈심사위에서는 우등생 지위를 그대로 유지해도 되겠는지 따져봤더니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이 나온 것입니다.

독재자 박정희의 경우는, 우등생으로 꼽힌 적이 없으니까 서훈심사위를 거칠 필요는 없었고요, 다만 낙제생 여부를 가리는 진상규명위 검토를 거쳐 그래도 낙제점은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것일 따름입니다. 물론 이런 결정에 서운해 하거나 말거나는 자유입니다만.

이렇게 성격이 다른데도 조선일보 김태익이라는 논설위원은 이 둘을 하나로 뒤섞어 놓고 "같은 정부 기관에서도" 운운하며 마치 서로 배치되는 결정이 잘못 나온 것처럼 사태를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네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조선일보에서 언론(인)을 찾기란 뜨거운 열대 바다에서 북극의 빙산을 보기보다 더 어려운 일인 모양입니다.

김훤주
※장지연이 했던 친일의 세부 내용은 <친일 인명 사전>에 잘 나와 있는데요, 제가 '김대중이라는 조선일보 고문의 경우(http://100in.tistory.com/1895)'에서 간단하게 정리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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