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3년치 잡지가 한꺼번에 배달돼온 까닭

김훤주 2010. 12. 2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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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로 기억이 되는데, 실천문학사에서 택배로 책이 잔뜩 왔습니다. 몰랐는데 가서 받아보니 작은 종이 상자 하나에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계간지 <실천문학>이 88호(2007년 겨울호)부터 100호(2010년 겨울호)까지-91호는 빠져 있었습니다만-와 <제국익문사> 1·2권,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까지 열일곱 권이 한꺼번에 왔습니다.

<실천문학> 5년 정기 구독을 신청한 까닭

제가 주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좀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습니다만 짚이는 바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2007년 가을 즈음인 것 같은데, 제가 계간 <실천문학>을 5년치를 정기 구독 신청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1년 정기 구독은 드물지 않으나 5년 정기 구독은 아주 드문 편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때 정기 구독을 결심한 배경에는 실천문학사 대표인 소설가 김영현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아시는대로 지금 문학판은 거의 죽었습니다. 거의 죽은 문학판에 줄세우기를 하는 권력이 있습니다. 자진·자청해서 줄을 서고 싶어하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문학은 활기를 잃었고, 문인들은 패거리가 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잡지에선가 김영현 대표가 "이렇게 된 데는 창비도 책임이 크다"고 한 말을 읽었고 그러자 저는 바로 <창작과 비평> 구독을 그만두고 20만원을 보내어 <실천문학> 5년 정기 구독을 신청했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창비도 책임이 크지요. 당사자들은 아니라 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문학권력을 형성하고 문인들을 줄세우고 그러면서도 상업성을 알맞추 활용하고 그랬습니다.

김영현 대표의 문제의식은 얄팍한 저보다는 훨씬 두께가 있고 또 깊이도 더 있겠지만, 당대의 문학권력 창비한테 거침없이 대드는 모습에서 한 가닥 희망이랄까 아니면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입니다.

<실천문학>을 읽으면서 든 느낌

<실천문학>을 정기 구독하면서 소설들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지금 작가들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시도 어쩌다 제 마음에 드는 몇 편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론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앞부분에 '편집위원 일동'으로 실리는 글은 아주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문학적인 글일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천적인 글은 전혀 아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관찰하는 글이고 계몽하는 글이고  어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식으로 조바심이 일어서 쓴 글이었습니다. 또 읽는 이가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대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글이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물론 이것도 제 취향이겠습니다만, 글에 힘이 없었습니다. 직설·직언하지 않고 군더더기가 붙어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여깁니다만. 그것은 먹물이 쓰는 글이지 민중이 쓰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보기를 들어보겠습니다. 88호 2007년 겨울호 13쪽 '책머리에'에 나오는 문장들입니다. 이런 정도 문장은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여기서 '미래의 철학'이라는 표현이 성립되는지도 미심쩍고 현실 상황의 복잡한 데도 첫 문장에서 이런 식으로 잘라 말할 수 있는지도 미심쩍습니다.

"12월 대선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어떤 '미래의 철학'을 갖게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 그것은 내가 속한 사회의 정체성이기에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공동체에 속한 사람에게는 '외면의 윤리'가 가능하지 않다. 워릭 모리스 대사는 관전자이기에 '쿨한 태도로 논평'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것이 운명이기에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귀중한 윤리적 실천을 감행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속한 사회의 정체성이기에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다"는 대목은 쓸데없는 손찌검으로 보이고 '외면의 윤리'에서 '윤리' 또한 '멋내기'일 뿐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것이 운명이기에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귀중한 윤리적 실천을 감행해야 한다'는,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제발, 꼭 좀 투표하자.' 

'적극적인 개입'이니 뭐니, '귀중한 윤리적 실천'이니 뭐니, '감행'이니 뭐니 따위 겉보기에는 그럴 듯한 언사들을 전혀 어질러 놓지 않아도 오히려 더 힘있게 뜻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들하게 느끼고 있을 즈음에 <실천문학>이 배달돼 오지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1년은 지나고 2년은 안 된 어느 시점이지 싶습니다. 저는 조금 실망을 했습니다. 독자 관리를 이토록 허술하게 하나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일들이 겹치면서 저는 그냥 나머지 12만원은 어디 좋은 일 하는 데에다 기부한 셈 치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는 툴툴 털었습니다.

한꺼번에 왕창 온 감당 안 되는 책들

그러다가 이번에 한꺼번에 왔습니다. 계간지가 3년치가 왕창 왔습니다. 때맞춰 나오는 잡지도 다 읽기가 쉽지 않은데 철 지난 잡지 3년치를 읽으라고 보냈는지 보관하라고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왜 보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5년 정기 구독을 한 사람인 줄 뒤늦게 알고 보냈는지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어서 보냈는지가요. 또, 종이로든 말로든 책을 보내게 된 사연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까닭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12월 16일 전화를 했습니다. 어떻게 된 까닭인지 물었습니다. 정기 구독자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겨 2008년에 배달이 중단됐고 이번에 새로 알게 돼 책을 보냈다는 답이 왔습니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이렇게 3년치를 한꺼번에 보내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일간 신문 3년치를 안기는 것과 근본에서 무엇이 다르냐? 도대체 읽어보라고 보낸 것이냐? 그리고, 왜 사전에 설명하고 양해를 얻으려 하지 않았느냐?

그랬더니 전화를 받으신 분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5년치를 새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모질게 굴지 못하고, 그럴 것 없이 2년치는 받아봤으니 3년치만 더 보내달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우리집에 오랫동안 있었던 <실천문학> 4호

우리집에는 <실천문학> 4호가 오랫동안 꽂혀 있었습니다. 2010년 겨울호 -통권 100호 발간 기념호에도 나오지만 30년 전인 1980년 3월 창간됐다가 전두환 탓에 다시 발행되지 못했으니 4호는 80년대 중반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오래오래 제 책꽂이에 있었던 까닭은 바로 <실천문학>에 대한 제 생각과 느낌이 각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험난한 시절을 함께 겪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버렸습니다. 각별한 생각과 느낌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버렸습니다. 험난한 시절을 함께 겪었다는 기억도 지워지지 않았지만 책은 버렸습니다. 다만 그런 책 한 권에 제가 매일 까닭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천문학>에 이런 기대를 해도 좋을까?

<실천문학>은, 창간호에서 '민중문학론'과 '실천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실천문학>은 민중의 문학이 아니고 또 실천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저는, 그것이 아닌 상태지만 그것을 지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로울 수 있고 존재 가치가 있다고도 여깁니다.

다만 김영현 대표가 앞으로도 여전히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창비 책임도 크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 권력이 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르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도 시를 쓰고 있는 창원공단의 한 노동자를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이는 시를 퍽 잘 쓰는 편입니다. 적어도 아류(亞流)는 아닙니다. 생각도 삶도 어그러지거나 한 구석이 없습니다.

그이는 자기가 쓴 시가 시집 한 권 분량이 되면 실천문학사에 보내곤 합니다. 그이의 시가 <실천문학>에 실린 적도 있기는 합니다만 여지껏 <실천문학> 시집으로 묶여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창작과 비평>이 아닌 <실천문학>의 가치관과 미학이라면 그이를 더 오래 내버려두지는 않을 듯합니다만. 물론 오래 내버려둬도, <실천문학>의 가치관과 미학이 변질됐다고는 생각지 않겠습니다.

다만, 금전 형편이 어려워 그러리라 짐작하겠습니다.

김훤주

기찬날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표성배 (애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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