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운동 출신 강기갑 국회의원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수염 한복 고무신 정도가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공중 부양이라든지 옆차기 같은 이른바 과격한 이미지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2008년 겨울 한 촛불집회에서 고무신을 신고 춤추는 강기갑. 뉴시스 사진. 오른쪽 가운데 즈음에 강기갑 의원이 벗어놓은 신발이 있습니다. 고무신처럼 생겼습니다. 그런데 가서 봤더니 고무신이 아니었습니다. 뒷굽도 있었습니다.
이런 강기갑의 트레이드 마크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든지 시골스럽다든지 아니면 고집스럽다든지 하는 부정적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직하다든지 일관성이 있다든지 하는 긍정 이미지도 작지 않습니다.
저는 그이가 수염을 기르는 까닭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사람 몸에 나는 것 가운데 원래 필요가 없는 것은 없다,로 요약되는데요 수염도 처음부터 사람 몸에 나름대로 이바지하는 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수염을 기르고 있으면 겨울철 추위가 한결 덜하거나 여름에 땀이 덜 나는 효과가 있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저는 그다지 수염을 기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강기갑 의원이 고무신을 즐겨 신는 까닭이 궁금했는데, 아직 그 궁금증을 풀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고무신은 불편할 때가 많거든요. 농사 지을 때 말고는요.
그러던 가운데 지난 여름 강기갑 의원이 고무신을 신지 않고 있는 장면을 봤습니다. 8월 8일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4대강 사업 강행에 맞서 5월 31일 소신공양으로 세상을 떠난 문수 스님 입적 70일째를 맞아 치러진 낙동강 산골재(散骨齋) 자리였습니다.
그 날 산골재는 창원시 의창구 동읍 본포마을 낙동강 본포다리와 본포 모래톱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낙동강선원에서 열렸습니다.
이 날 강 의원의 신발은, 얼핏 보면 고무신처럼 보이도록 생겼지만, 실제는 가죽신(또는 모조 가죽신)이었습니다. 저는 어설프지만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여름에 고무신을 신으면 발에 땀이 많이 나고 흡수조차 제대로 안돼 힘드니 바꿔 신었나보구나.
그래도 정치인으로서 이미지가 있으니 함부로 모양이 다른 신발은 못 신고 고민이 나름대로 있겠구나.
그래서 저렇게 색깔이 하얘 고무신처럼 보이는 신발을 더운 여름에는 신고 다니나 보구나.
그러면서 농민 강기갑을 생각해 보고 국회의원 강기갑을 생각해 봤습니다.
농민 강기갑은 이렇게 신발을 가려 신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신발을 가려 신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입니다.
국회의원 강기갑은 신발을 가려 신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신발을 가려 신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입니다.
생활 전반이 그럴 것입니다. 농민 강기갑은 남의 눈치 볼 필요도 까닭도 없으니 생각과 말과 행동에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국회의원 강기갑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소속된 민주노동당을 생각해야 하고 유권자들 반응도 고려해야 하니까 생각과 말과 행동에 거리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사천 주민들이 광포만 매립을 요구했던 2008년 7월 7일 강 의원은 이에 찬성한다고 밝혔던 적이 있습니다.
강 의원은 줄곧 매립을 반대해 왔으나 당시 지역 주민들 '절박한 바람'을 외면할 수 없다며 찬성으로 태도를 바꿨습니다.
곧바로 환경단체로부터 욕을 얻어먹었고, '진보정치 전체의 정체성과 민주노동당의 민주적 질서와 관련된 문제임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며 사과를 했습니다.
한편 이해가 됩니다만, 한편 블랙코미디 같습니다. 강 의원이야 그야말로 심사숙고와 좌고우면을 했겠지만, 결과가 우스꽝스럽게 됐습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평소대로 고무신을 끌고 나왔다가 동네 사람들이 그게 뭐냐면서 체신 좀 지키라고 나대는 통에 가죽신으로 갈아 신은 꼴입니다.
그랬다가 다시 집안 식구한테서 바깥 사람 잔소리에 휘둘린다고 야단을 맞고서는 손 들고 벌을 선 데 더해 강 의원이 반성문까지 쓴 모양샙니다.
이처럼 새로운 가치를 내걸고 나서는 진보정당의 정치인조차 거리낌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대한민국 정치판 일반이 바로 블랙 코미디랍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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