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지역방송·지역신문의 우울한 미래

기록하는 사람 2009. 8. 1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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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법과 방송법, IPTV법의 날치기 처리를 놓고 정권과 자본, 그리고 조중동의 여론시장 장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투표·대리투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 있지만, 어떻게 결정되든 한나라당은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이미 신문시장은 조선·동아·중앙이 확실히 잡고 있으며, 경제지 중에서도 노골적인 친자본·반노동 매체인 매일경제(매경)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언론악법이 날치기 처리되자마자 매일경제는 자기 지면을 통해 종합편성채널을 따내겠다고 공언했다. 조중동 중에서도 최소한 2개사는 방송 겸영에 나설 것이다. 정부도 올해 안에 2개의 종합편성채널과 1~2개의 보도전문채널을 허가하겠다고 하니, 결국은 조중동과 매일경제가 나눠 먹게 될 것이다.

밀착보도 허울뿐·지방권력 감시도 사라져

물론 그들 신문이 방송을 하나씩 꿰찬다고 해도 단기간 내에 KBS·MBC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긴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엄청난 투자금에 비해 수익전망도 불투명하다. 기존 방송시장도 이미 포화상태인데다 방송 자체도 신규 시장을 창출하는 뉴미디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방송도(신문만큼은 아니지만) 이미 인터넷과 모바일 등 새로운 영역에 점점 시장을 빼앗기고 있는 올드미디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방송 진입은 방송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한정된 시장 속에서 생존 전쟁을 촉발할 것이다.

그림=경남도민일보 서동진.


이런 상황에서 조중동과 매경의 방송 진출은 쪼그라드는 신문을 살리기는커녕 어쩌면 신문과 동반자살을 앞당기는 악수가 될 수도 있다. 조선일보 방상훈이 "방송을 안 하면 (신문사가) 천천히 죽고, 하면 빨리 죽는다"고 말했다는 것은 바로 그런 고민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알다시피 조중동은 불법 경품과 무가지 없이 더 이상 기존독자마저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독자의 감소 속도보다 더 빠른 건 신문광고 시장의 축소다. 이런 상황에서 종이신문만 붙들고 있는 건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나 다름없음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으로 최소한의 인력·비용만 남아

그러면, 같은 올드미디어끼리의 결합이 아니라 뉴미디어 영역을 개척하면 될텐데, 왜 굳이 방송을 겸영하겠다는 걸까? 그건 아직 종이신문을 대체할 매체수단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모바일뉴스가 될 지, 킨들(전자종이)이나 인터넷이 될 지, IPTV가 될 지, 그 모두가 결합된 무언가가 될 지, 또다른 매체수단이 등장할 지 도무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어디에 투자해야 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로선 시장규모가 가장 큰 방송에 숟가락을 얹고자 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조중동과 매경 등 친정권·친자본 신문이 방송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면, 한국의 여론시장은 오로지 가진자의 입장만 대변하는 매체에 장악당할 것이다.

게다가 기존 KBS나 MBC, SBS도 '공정방송'을 지향해 왔을지언정 '진보'나 '개혁언론'은 아니다. 특히 이들 지상파 방송은 '조중동 방송'이 빼앗아간 방송광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덩달아 보수화하거나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MBC의 경우 민영화(엄밀하게는 사영화)의 기로에 놓일 것이고, 특히 지역MBC의 경우 아예 이리저리 쪼개어 매각된 후 권역별로 통폐합되는 수순으로 갈 수도 있다. 그렇게 통폐합된 방송은 부산·울산·경남은 물론 대구·경북까지 함께 관할하는 '영남권 방송'이 될 것이다.

그러면 지역신문들은 어떻게 될까? 우선 바뀐 신문법에서 신문간 복수소유가 허용됨에 따라 지역광고 시장까지 먹으려는 서울지(소위 '중앙지')들의 지역신문 인수·합병 시도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당장은 자생력 없이 근근이 버텨온 지역신문들이 대상이 될 것이다. 아니 서울지가 그냥 지역체인점 식으로 현지에서 지역신문을 창간할 가능성이 더 높다.

광고 독식·지자체 홍보 난무…여론형성도 획일화

서울지에 흡수된 지역신문들은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을 통해 10~20여 명의 소수인력으로 일부 4~6개 지면만 지역뉴스로 채우고, 나머지는 서울 본사에서 공급하는 획일화된 뉴스로 제작될 것이다. 그렇게 최소한의 인력과 비용으로 지역신문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각 자치단체와 지역 기업체 광고를 장악하려 할 것이다.

그런 '무늬만 지역신문'의 지면에서 지역밀착보도나 지방권력 감시는 사라지고, 도지사나 시장·군수, 행정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이나 홍보가 난무할 것이다. 그러면 자치단체 광고를 따내기가 쉽기 때문이다. '경남조선일보'나 '경남문화일보', '경남한국일보'가 자치단체와 지역업체의 광고를 가져가기 시작하면, 100~200명의 큰 덩치를 가진 기존 지역신문들은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을 것이다.

결국 지역의 신문시장도 이미 대형마트나 대기업의 편의점이 장악해버린 유통시장처럼 서울에 본사를 둔 '지점'이 장악하게 될 것이고, 지역민이 낸 세금이 그들 신문의 광고료로 지불돼 소수 인력의 인건비를 뺀 나머지 이익금은 모두 서울 본사로 납입될 것이다. 한나라당의 신문법·방송법이 '지역을 죽이는 법'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경남도민일보에 썼던 글입니다. 앞으로 계속 보완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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