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15년전 잘못도 순순히 인정하는 조선일보

김훤주 2009. 8. 1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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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가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다니

조선일보가 15년 전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습니다 아무리 잘못됐다 해도, 또 나중에 그것이 틀렸음을 알고 난 다음에도 끝까지 우겨왔던 조선일보 여태 행태에 비추면 아주 이례적이라 할만합니다.<관련 글 : 조선일보가 15년 전에 저지른 잘못(http://2kim.idomin.com/1056)>

이런 행태는, 지율 스님에 대한 악의에 찬 보도에서도 잘 나타났습니다. 지율 스님 걸음 하나 움직일 때마다 조선일보는 "비구나 하나 때문에 국책사업을 못하고 있다"고 악을 써대면서 '손실액이 무려 2조5000억원'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참지 못한 지율스님이 법원을 통해 확인해 봤더니 '145억원'정도밖에 안 됐습니다.(이는 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관통 공사 현장에서 새어 나오는 지하수 물값에도 못 미치는 금액입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바로잡지 못한다고 딱 버팅겼습니다.

2. 샛강이라는 낱말을 망쳐버린 조선일보

각설하고, 1994년 조선일보는 환경 캠페인을 한답시고 '샛강을 살립시다(Save Our Streams)'라는 구호를 걸었습니다. 개천, 또는 지류를 살리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샛강은 국어사전에 '큰 강에서 갈라져 나가 중간에 섬을 이뤘다가 다시 합쳐지는 강'이라 나옵니다.

그러니까 조선일보가 틀렸습니다. 샛강은 개천 개울 시내 지천 지류 따위를 이르는 낱말이 아닌데, 무식한 조선일보는 이렇게 무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전단이나 리플렛을 자치단체 등과 합작으로 엄청나게 뿌려댄 탓에, 지금도 많은 이들이 샛강의 뜻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을 8월 6일치에서 조선일보가 간접 인정을 했습니다. 여태껏 개울이나 지류 정도로 샛강을 써왔던 조선일보판 사전을 버리고, 샛강을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이뤄진 일입니다. 직접이 아닌 간접 인정이라는 점에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3. 15년만에 샛강의 뜻을 바꾼 조선일보

8월 6일 국제부 김시현 기자 이름으로 돼 있는 "태평양 한가운데 '쓰레기의 무덤' 있다" 기사가 주인공입니다. 기사 요지는 "하와이 근처 바다에 한반도 7배 되는 '북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구역(Great Pacific Garbage Patch·GPGP)'이 있고 여기 조사를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대 스크립스 해양연구소 탐사팀이 나섰다."입니다.


샛강이 나오는 대목은 그 아래입니다. "탐사팀 라이언 여키(Yerkey) 팀장은 영국 BBC방송에 '해변이나 강, 샛강 등 모든 물가에 남은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 결국 이곳에 모인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을 잇는 거대한 육교가 생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변이나 강, 샛강 등 모든 물가에 남은 쓰레기'라는 구절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강은 바다로 바로 이어지지만, 샛강은 개념상 그렇게 바다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샛강이 원래 뜻대로 쓰이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3. 민물 짠물 뒤섞이는 기수역이 샛강이라고?

호기심이 일어 영국 BBC 누리집을 찾아 팀장 이름 Yerkey로 검색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Page last updated at 17:22 GMT, Tuesday, 4 August 2009 18:22 UK", "Voyage to study plastic 'island'", "By Judith Burns", "Science and Environment Reporter"라는 기사가 떴습니다.

영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대충 옮기면 주디스 번스라는 과학·환경 담당 기자가 2009년 8월 4일 오후 5시 22분(그리니치 표준시), 오후 6시 22분(영국 표준시)에 올린 "플라스틱 '섬' 연구 여행" 기사입니다.


조선일보 김시현 기자 기사의  "영국 BBC 방송에 '해변이나 강, 샛강 등 모든 물가에 남은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 결국 이곳에 모인 것'"에 해당되는 영문 기사는 이렇습니다. [told BBC News: "Every piece of trash that is left on a beach or ends up in our rivers or estuaries and washes out to the sea is an addition to the problem, so we need people to be the solution."]

여기서 다시 '해변이나 강, 샛강 등 모든 물가에 남은 쓰레기'에 대응하는 영문 기사는 [Every piece of trash that is left on a beach or ends up in our rivers or estuaries]입니다. 그러니까 해변은 beach, 강은 rivers, 샛강은 estuaries가 되는 셈이지요. 저는 estuaries가 무엇인지 다시 찾아봤습니다.

조선일보 김시현 기자의 번역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이랬습니다. 기수역(汽水域) 또는 하구역(河口域)이었습니다. 환경·생태 연구가나 운동가에게는 아주 익숙한 개념인,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지역입니다. 조선일보 김시현은 아무 합당한 까닭도 없이 이를 샛강이라 옮겼습니다. 제가 상상하는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 아주 수준 높은 창조적 번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똥칠 자국을 똥물로 지우는 조선일보

조선일보의 샛강에 대한 규정은 이로써 수정이 됐습니다. 어쨌든 15년 전 잘못을 인정은 한 셈이지요. 예전 조선일보판 사전에서는 샛강이 강 상류에 있는 시내, 개울, 개천, 하천, 지류, 지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조선일보는 샛강이 강 하류에 있는 기수역(=하구역)이라 밝혔습니다. 지난날 자기가 내린 규정이 부정이 됐습니다.

물론 이것은, 바람벽에 해놓은 똥칠을 지운답시고 새로 뒷간에 똥물을 퍼와서 다시 끼얹은 격일 따름입니다만. 하하. 이렇게 거듭 똥칠갑이 된 조선일보를, 우리는 이제 어떻게 처분해야 할까요? 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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