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아기 버린 20대 미혼모가 비정하다고?

김훤주 2009. 8. 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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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경남 지역 한 신문에 '비정한 20대 미혼모'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한 꼭지 실렸습니다. 부제는 '출산 후 질식사시켜 마산 도로변 버려'이고, 내용은 이렇습니다.

"마산동부경찰서는 4일 자신이 낳은 아기를 살해한 뒤 버린 혐의로 A(25·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지난 3일 새벽 3시께 자신의 집에서 아기를 출산 후, 속옷으로 아이를 질식사시켜 플라스틱 세제통에 넣어 도로변에 버리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가 미혼으로 아이를 낳은 수치심에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A씨를 상대로 영아 유기 및 살해에 대한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갓 태어난 아기 숨통을 막아 숨지게 한 일을 두고 '비정'이라는 낱말을 썼습니다. 물론 비정하다는 말이 완전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정한 주체가 '20대 미혼모'라는 데 대해서는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기사는 전에도 신문 방송에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심지어 공중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아 그대로 두고 가버려 숨지게 한 10대 학생을 다룬 기사도 있었습니다.


20대 미혼모에게로 가 보겠습니다.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어보시지요. 첫째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다는 답이 돌아 올 것입니다. 둘째로는 무서워서 그렇게 했다는 얘기를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밖에 다른 얘기도 있을 수 있겠지만 주로는 무지와 공포가 원인입니다.

왜 무지하고 왜 공포스러워 할까요?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사회 일반이 손가락질만 해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근본을 따져 말하자면, 사회가 비정하고, 사회를 운영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 지배집단은 비정한 정도를 넘어 잔인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억지 같다고요? 그렇다면 이런 보기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 2001년 4월 번역된 미국 소설 <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창작은 1997년 이뤄졌습니다. 여기를 보면, 클리블랜드에 사는 10대 미혼모 '마리셀라' 얘기가 나옵니다.

띄엄띄엄 옮겨보겠습니다. "나는 멕시코 출신에 열여섯 살 짜리 10대로, 멍청하게도 임신까지 했답니다." "우리 학교에는 나 말고도 바보가 두 명 더 있답니다. 우린 시에서 운영하는 10대 미혼모를 위한 프로그램을 같이 듣고 있어요. 병원에 가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차편을 운행해 주고,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게 공부를 도와줍니다."

"아줌마는 자기가 길렀다며 내게 노란꽃을 주셨어요. 기린차라는 건데 그걸로 차를 끓여 마시면 출산에 도움이 된다나요. 아줌마는 내가 원하지 않는 출산을 코 앞에 두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봐요. 하긴 누가 10대 때 기쁜 마음으로 출산 예정일을 손꼽아 기다리겠어요! 어쨌든 고마운 일이었지요."

물론, 미혼모에 대한 곱지 않은 눈길과 미혼모의 절망은 미국이라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마리셀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하자면 지금 당장 총에 맞아 죽어도 싼 족속인 거예요. 난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걸요. 당연히 아빠 엄마는 펄펄 뛰고 난리가 났어요. 고등학교 졸업은 해야 인생이 덜 고달프다고 누누이 잔소리를 쏟아 붓던 양반들이었으니 그거야 당연한 반응이겠죠."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나이가 스물다섯씩이나 되는 아가씨가 이렇게 자기 방에서 혼자서 아기를 낳고 그렇게 낳은 아기를 숨막혀 죽게 하고 버릴 수 있었을까요? 아이를 배고 있던 지난 열 달 동안 얼마나 불안하고 괴로웠을지도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전혀 관심도 두지 않고 돌보지도 않는 그런 구석에 쳐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미혼모가 비정하다는 신문 보도는 그러니까, 이처럼 진짜 비정한 우리 사회는 당연한 그대로 두고 거기서 앞으로 닥쳐올 공포와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못할 짓을 저지른 미혼모를 손가락질해대는 꼴입니다. 신문에게 요구되는 걸맞은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기사입니다. 기성 사회의 잘못된 또는 모자라는 구석을 짚어 좀더 살만한 사회로 만들어 나간다는 취지를 생각도 못한 것입니다.

미혼모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갓난아기를 죽인 이런 사건은, 우리 사회의 비정함, 우리 사회의 무관심함, 우리 사회 공공 시스템이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음을 짚고 고쳐 나가도록 만드는 계기가 돼야 마땅합니다. 미국에서는 벌써 이뤄지고 있는 그런 제도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덜 떨어진 관점으로 엉터리 보도를 해대는 신문과 기자가 못마땅한 까닭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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