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서울일간지의 공습, 지역신문의 운명은?

기록하는 사람 2009. 8. 1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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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 바쁘다. 같은 부서의 보조데스크 한 명이 한 달간 유급휴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용히 생각하고 고민해볼 여유나 시간이 없다.

그럼에도 요즘 내 머리 속에 부채의식처럼 남아 있는 복잡하고 골치아픈 화두가 하나 있다. 한나라당의 신문법 처리 이후, 과연 지역신문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사실 거의 모든 언론은 언론관련법 날치기 처리와 관련, 방송에만 초점을 맞춘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신문-방송 겸영 허용에 따른 방송시장의 문제에 대한 기사만 넘쳐난다. 신문, 특히 지역신문의 운명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이지 않다.

언론악법 반대투쟁을 주도해온 전국언론노조조차 지역신문에 대해선 '불법 경품과 무가지 문제', 그리고 '민영미디어랩으로 인한 지역방송과 지역신문의 무한 광고경쟁' 정도만 이야기하고 있다. 신문사를 무제한 복수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한 부분에 대해서도 "조중동이 지역신문까지 집어삼키면 완전히 장악된다"는 정도로만 표현하고 있다. 구체성이 없다.

신문의 무제한 복수소유 허용 이후, 지역신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일까? 우리 신문사에 일하는 신문기자들도 '미디어랩'이니 '종합편성PP'니 하는 온갖 어려운 말들은 쉽게 입에 올리면서도, 정작 내가 속한 신문사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선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엊그제 후배 기자들과 술을 마시면서도 짐짓 신문법 개정이 우리 지역신문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 질문을 해봤다. 제대로 답변하는 이가 없었다. 답답했다.

이런 차에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 대표 김성균)에서 일하고 있는 '승주나무'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역시 날치기 이후 지역신문의 운명에 대한 자료가 없느냐는 문의였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지역신문에서 직접 밥벌어먹고 있는 종사자들도 남의 일인양 무관심한 판국에, 시민단체에서 지역신문 걱정을 해주니 말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우선 신문의 복수소유 허용에 따른 서울지(소위 '중앙지'라는 것들)들의 지역 신문시장 진출이 본격화할 것이다.

기존 신문법에는 '신문·뉴스통신 또는 방송사업을 경영하는 법인이 발행한 주식 또는 지분의 2분의 1이상을 소유하는 자는 다른 일간신문 또는 뉴스통신을 경영하는 법인이 발행한 주식 또는 지분의 2분의 1이상을 취득 또는 소유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 조항을 전면 삭제함으로써, 한 신문사가 여러 개, 아니 수십~수백 개의 별도 법인 형태로 계열신문사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경향신문이 올 초부터 발행하고 있는 '인천경향신문'의 모집공고.

서울지들은 지역의 독자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기 보다는, 지역의 단가 1000만 원 이하 광고시장을 노리고 시장진출을 꾀할 것이다.

서울지들이 굳이 지역신문을 창간(또는 인수)하려는 이유는 기존의 개별 지역신문과 달리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도 체인점식 신문발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개 지역신문의 인력은 100~150명이다. 그런데 서울지가 지역신문을 함께 발행하면 10~20명, 많아도 30명이면 가능하다. 1면부터 4, 5면 정도만 지역기사로 채우고 나머지는 전국공통의 본지 기사로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편집이나 인쇄, 배포는 기존 조직을 활용하면 된다.


20여 명의 인력으로 지역신문을 제작, 운영할 수 있다면 100% 흑자를 낼 수밖에 없다.

각 신문사당 차이는 있지만 연간 20~30억, 많게는 40~50억 규모에 이르는 자치단체 광고만 잡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알아봤더니, 이미 복수소유가 허용되기 전인 올해 초부터 약간 편법적인 방법으로 지역신문(또는 지역판)을 내고 있는 서울지가 있었다. '인천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천안·아산'이 그랬다. '인천경향신문'은 모기업인 경향신문이 2분의 1 이하인 40%의 지분만 갖고 토착 자본가를 끌어들여 만든 지역신문인데, '중앙일보 천안·아산'은 아직 회사 형태를 잘 모르겠다.

여하튼 둘 다 10여 명 안팍의 인력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사는 경남에선 두 신문을 볼 수가 없어 충청투데이 홍미애 국장에게 부탁을 했더니 '중앙일보 천안·아산' 최근호를 촬영해 보내주었다. 기록 차원에서 사진이 좀 많지만 올려둔다.

충청투데이 홍미애 국장이 찍어 보내준 것이다. 감사드린다.


중앙일보에 삽지형태로 배포하는 섹션이었는데, 총 12면이었다. 시니어 기자 2명, 인턴기자 2명의 이름이 보였다. 총 4명이다. 그 중 로컬기사는 총 8면 정도 됐다. 광고는 모두 상업광고였다. 지역의 병원과 식당, 미장원 광고였다. 아직 자치단체 광고는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이들 두 신문의 지역 진출은 아직 실험적이다. 그러나 복수소유가 전면 허용되면 실험단계를 넘어 조중동이나 한겨레, 경향, 한국일보, 문화일보, 국민일보 같은 서울지들도 앞다퉈 현지 법인 형태의 지역신문을 창간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핵심은 그들이 현지 법인에서 채용할 인력의 숫자이며, 로컬 기사로 채우는 지면이 과연 몇 개 면이냐는 게 될 것이다. 전국의 지역신문에서 일하고 계신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하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분석해보면 좋겠다. 조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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