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학살의 현장에 피어난 화려한 매화

기록하는 사람 2009. 3. 9. 10:57
반응형

매화를 구경하기 전에 먼저 아래 이름과 나이부터 한 번 살펴보시죠.

◇현장 사망자(65명)
△이석순(남·35) △이석기(남·55) △이봉순(여·19) △이복희(여·14) △이원순(남·26) △이봉연(여·16) △이기갑(남·77) △이갑이(남·46) △이상정(남·14) △이상연(여·9) △이상말(여·6) △이상팔(남·3) △이위이(여·39) △이상열(남·3) △이시운(여·67) △이상철(남·20) △이상철의 동생(남·2·출생신고 안됨) △이은갑의 처 △이은갑의 아들(10) △이기석(남·63) △이기수(남·72) △이남이(여·71) △이일순의 처 △이정두(여·13) △이상응(남·4) △이기필(남·60) △김직래(여·61) △이생현(남·71) △하병이(여·51) △이상섭(남·2) △이성현(남·59) △황수남(여·43) △이기정(남·12) △오서리 박증근의 처 △이수화의 처 △이규현의 처 △이교영(남·72) △변담래(여·74) △이우(于)순(남·10) △이일하의 누나(6·출생신고 않음) △이종성(남·36) △이귀득(여·31·임산부) △이계숙(여·3) △이진구의 형(8·출생신고 않음) △이진구의 동생(1·출생과 함께 사망) △이작조(여·24) △김육갑의 처 △김육갑의 아들 △월안리 권씨의 처 △한양순(여·54) △이태기(남·64) △이기출(남·60) △이순분(여·13) △오추래(여·70) △김죽림(여·79) △이하순(남·16) △이우(佑)순(남·14) △이갑석(남·16) △이상연(여·3) △이만순씨 댁 머슴 △머슴의 처 △머슴의 아들 △이덕이(여·55) △이갑순(여·28) △정명순(여·3)

◇부상후 사망(3명)
△이수현(남·70) △이상업(남·9) △이주영의 조모(여·70)

◇부상자(6명)
△이만순(남·16) △황점순(여·24) △이일하(남·4) △이민(敏)순(남·29) △정복수(여·23) △이민(旼)순(남·10)

민간인 83명이 희생된 곡안리 재실입니다. 앞쪽에 보이는 대나무 숲에 미군들이 기관총을 설치해놓고 쐈습니다.


이 명단은 1950년 8월 11일 마산시 진전면 곡안리 성주 이씨 재실에 피란해 있던 민간인 100여 명 가운데, 미군의 무차별한 총격으로 숨진 희생자와 부상자들입니다.

보셨듯이 △10세 이하 어린이가 17명(23%) △부녀자 36명(48%) △50세 이상 노인 20명(27%)이었습니다. 그러나 20~40대 청·장년 남자는 6명으로 8%에 불과했습니다. 미군은 재실에 있는 피란민이 곡안리 주민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30~40m 거리에서 기관총으로 조준사격을 했습니다.

마당의 우물에는 아직도 당시의 총탄 자국이 선연합니다.


이 사건은 충북 영동군 노근리사건과 거의 흡사합니다. 곡안리 학살사건이 발생하기 13일전인 7월 26일 킨 소장은 다음과 같은 통신문을 예하부대에 내려 보냈습니다.

"전투지역에서 움직이는 모든 민간인은 적으로 간주하라."

다음날인 27일에도 이런 공문을 보냅니다.

"(남한 양민들은 한국 경찰에 의해 전투지역에서 소개됐기 때문에) 전투지역에서 눈에 띄는 모든 민간인은 적으로 간주될 것이며 그에 따른 조처를 취할 것."

재실 한켠에 피어난 매화입니다.


지난 7일 83명의 민간인 희생사건이 있었던 곡안리 성주 이씨 재실을 찾았습니다. 아직도 재실 곳곳에는 당시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만, 이곳에도 어김없이 봄은 다가와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총탄을 피하다 빠져죽었던 우물 옆에는 난초 새잎이 올라오고 있었고, 그 옆에는 매화가 탐스럽게 꽃봉우리를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매화의 처연한 아름다움이 59년 전의 참극을 위로하며 영령들을 달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건 무슨 풀과 꽃인지 모르겠네요.

목단도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건 아마 냉이인가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