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경향신문 보도에 문제를 제기한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3. 6. 3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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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를 다룸에 있어서 언론인들은 '가장 먼저 이야기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니라 '팩트를 확인할 기회를 놓친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확인해주는 것'이야말로 저널리스트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특별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가 <시사인>에 쓴 칼럼 중 한 구절이다.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인용하는 것은 실제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라온 '미확인 정보'를 언론이 확대재생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6월 19일 경남 사천시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국어 수업시간에 "역사적으로 전라도는 배반의 땅"이라며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편향적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발언이 이어지자 부모가 광주 출신인 한 여학생의 눈에 눈물이 맺혔으며,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이 모여 울음을 터뜨린 여학생을 위로하며 이유를 묻자 "선생님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답이 나왔다고 신문은 전했다.



보도의 파장은 컸다. 많은 매체가 <경향신문>의 이 기사를 인용 또는 베껴쓰는 방식으로 다시 보도했다. '다음 아고라'와 '오늘의 유머', '루리웹' 등 수많은 커뮤니티 사이트는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도 수없이 반복 유통됐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와 민주당 최민희·김현미 의원, 강운태 광주광역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 공인들도 이 기사를 리트윗(재배포)하며 교사를 비난했다. 이들 중 강운태 시장은 "교사로서 기본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사실을 확인하여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고, 최민희 의원은 "경남교육청에 정식으로 징계심의해야죠"라는 말을 남겼다.


이들은 <경향신문> 보도를 그대로 믿었을 것이다. 언론이라면 당연히 '팩트 확인'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좀 이상하다. 맨 끝에 교사의 해명이 짤막하게 달려 있는데, "전라도의 인재를 등용하지말라고 한 것이 잘못됐다는 취지였지 전라도를 비하할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게 핵심이다. 교사가 지역감정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그런 발언을 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교사가 어떤 '취지'와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전체 맥락을 파악한 후 보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것은 그날 수업 전체를 녹음한 파일을 들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녹음파일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적어도 수업을 직접 들은 다수의 학생에게 교차확인을 해야 한다. 직접 들은 학생도 제각각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울음을 터뜨렸다는 그 학생도 확인 대상에 포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보도 이후 해당 교사는 취지가 왜곡됐다며 강력히 반발했고, 울었다고 지목된 학생도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으며, 기자의 확인 전화를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물론 아직도 완벽한 진실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녹음파일도 없고, 기자가 누굴 통해 취재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인이나 단체를 일순간에 매장시켜버릴 수도 있는 이런 기사일수록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법의 원칙은 언론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나는 <경향신문>이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좋은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경남도민일보>가 이번 <경향신문>의 보도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반대의 입장을 기사화한 것은 자칫 확실하지 않은 팩트를 근거로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언론은 '사회적 공기'가 아니라 '흉기'가 된다.


같은 언론사끼리 미디어 비평을 하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반대로 우리가 비슷한 잘못을 할 경우,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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