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독자가 좋아할 신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록하는 사람 2010. 10. 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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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면에 쓴 기획기사 한 건으로 독자들에게 욕을 퇴배기(‘됫박’의 경상도 표준말)로 얻어먹은 적이 있다. ‘도내 기관장들은 어떤 음식 좋아할까’라는 기사였다. 도지사를 비롯, 교육감과 도의회 의장, 법원장, 검사장 등의 단골식당과 즐겨먹는 음식을 조사해 그들의 얼굴사진과 함께 실었는데, ‘지면 낭비’라는 비난에서부터 ‘그들의 입맛까지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느냐’는 항의까지 빗발쳤다.

사실 그 기사는 ‘충청투데이’ 8월 20일자 1면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 신문 1면에는 무조건 심각하고 무거운 기사만 실린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가벼운 읽을거리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충청투데이’ 기사를 보고 ‘아, 이거다’ 하며 취재를 시켰던 것이다. 그걸 우리 독자들은 ‘권력자들 띄워주기 기사’로 받아들인 것 같다.

원래 계획은 그런 기관장들에 이어 시민사회단체장, 기업인과 경제단체장, 문화예술인 등도 연속으로 취재해볼 참이었다. 지역신문에서 ‘맛집 소개’ 기사는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다. 그래서 유명인사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라면 재미있고도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역풍에 부딪힌 것이었다. 결국 다음 기획은 깨끗이 포기하고 말았다.

취재원보다 독자 친화적 신문을 고민하며

어쩌면 사소한 에피소드일 수도 있지만, 편집국장을 맡은 후부터 뭔가를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고 있다.

내부에서도 그렇다. 내·외근을 막론하고 아침당직을 서는 기자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하나 줬다. 매일 1명의 독자를 전화로 인터뷰하라는 거였다. 나름대로 여러 의미가 있었다. 기자가 출입처 취재원이 아닌 일반 독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의외의 제보를 건질 수도 있으며, 지면에도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취재원 친화적’인 신문이 아니라 ‘독자 친화적’ 신문을 만들자는 목적이 강했다. 그러나 이 또한 ‘아침 시간에 전화하면 좋아할 독자가 있겠느냐’, ‘매일 비슷비슷한 말만 반복되지 않겠느냐’는 반대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냥 강행했고, 매일 원고지 5매 분량으로 ‘독자와 톡톡’ 인터뷰가 지면에 나가고 있다. 신문에 대한 칭찬보다는 쓴소리가 더 많지만 보약이 될 거라 믿는다.

또 하나의 실험은 ‘동네이야기’와 ‘동네사람’이라는 코너다. 흔히 지역신문이 가야할 길로 ‘지역밀착보도’를 이야기하지만, 예를 들어 어떤 기사가 지역밀착기사인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언론학자는 없었다. 결국은 우리가 스스로 실험하고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

신세계백화점 앞 인도에서 10년째 푸성귀를 팔고 있는 할머니, 창원에 하나뿐인 새 파는 가게 주인, 우산과 재봉틀 고치는 할아버지, 헌책방 운영하는 노총각, 고물상 사장 등의 사연이 1면을 장식했다. 다행히 이건 반응이 좋았다. ‘독자와 톡톡’ 인터뷰에서도 많은 독자들이 인상 깊게 읽은 기사로 ‘동네사람’을 꼽았고, 지면평가위원회에서도 호평이 나왔다.


‘동네이야기’는 긍·부정이 엇갈린다. 양산의 유지들이 즐겨 찾던 한 일식집이 갑자기 문을 닫은 까닭,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교회의 굴뚝 이야기, 한 아파트단지의 아줌마 합창단 소식, 배우 강동원 가족이 운영한다는 카페, 천장이 열리는 희한한 모텔, 성인용품 파는 가게 등 기존의 관념에선 ‘기사’가 되기 어려웠던 것들이 지면에 나갔다. 재미있고 유용하다는 반응도 있고, 특정 교회나 카페, 모텔, 식당, 가게를 대놓고 홍보해주는 기사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출입처를 벗어난 새로운 취재영역을 개척한다는 차원에서 계속 밀고 나가볼 참이다.

욕을 먹어도 나는 까칠한 독자가 좋다

다음으로는 1면에 무조건 한 명 이상의 사람 얼굴을 싣도록 하고, 그것도 가급적 세로 2단 또는 가로 3단으로 크게 편집하도록 하고 있다. 지방선거 직후에는 우리지역의 살림꾼을 알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경남도지사와 18명의 시장·군수 얼굴을 1면에 차례로 실었다. 이 또한 긍·부정이 있었다. 마치 경남도민일보가 단체장들에게 아부하기 위해 그들의 얼굴을 그토록 크게 내 주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신문을 위해 계속하려 한다.


독자들에게도 1면을 할애했다. ‘독자투고’란에만 실렸던 독자의 글 중 좋은 글을 뽑아 아예 1면 톱 기사로 실어봤다. 얼마 전 한 독자가 보내온 ‘창원에 자전거 고속도로를 만들자’는 제안을 그렇게 실었더니 역시 찬반논란이 붙었다. 심지어 도로건설업자와 짜고 쓴 글이며, 그걸 의도적으로 1면 톱으로 얹어 의제로 만든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그래도 나는 이런 까칠한 독자들이 많은 경남도민일보가 너무 좋다.

※미디어오늘 10월 6일자 '미디어현장' 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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