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만난 돈봉투
8월 말에 사람을 만났다가 돈봉투를 받았습니다.(문화체육부 데스크 할 때와 달리 시민사회부 데스크 노릇을 하니 이런 일이 생기네요.)
신문 보도 관련으로 만나 점심을 같이 먹고 일어서려는데 봉투가 건네왔습니다. "직원들이랑 식사라도 한 끼 하시라고……"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저는 봉투를 잡고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습니다. "이러시면 저희를 해고시키는 일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는 어떤 명목으로든 1만원짜리 이상 금품을 받으면 징계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랑 만난 사람은 다행히도 두 번 권하지 않고 바로 돈봉투를 거둬주셨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밥집에서 이런 일로 실랑이를 벌이면 서로가 민망해지거든요.
돌아오는데, 옛날 저에게 주어졌던 봉투들 기억이 났습니다. 옛날 출입처를 정해놓고 취재하러 돌아다닐 때는, 많지는 않지만, 제게도 이런 일이 통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거든요.
2. 처음에는 무안 주면서 돌려보냈고
올 추석 경남도민일보에 들어온 선물을 처리한 영수증들. 선물도 촌지의 일종입지요.
가만 생각해 보니, 그동안 이렇게 주어지는 돈봉투를 돌려주는 방법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저도 달라지고 둘레 환경도 달라졌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처음에는 돈봉투가 주어지는 현장에서 상대에게 무안을 주면서 거절을 했습니다. "제가 이런 돈을 받아먹으려고 기자 노릇을 하는 줄 아십니까! 사람을 뭘로 보시는 겁니까!"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니까 상대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저 스스로도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제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어떤 선배 하나가 "돈봉투를 줬다는 것까지 기사로 쓰겠다"고 될 것이라고 일러줬습니다.
3. 두 번째는 촌지까지 기사로 쓰겠다 했으며
저는 그대로 했습니다. 제가 좀 순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03년 1월 고등학교 교장들이 아무 하는 일 없이 '관리 수당'이라는 것을 조성해 가지는 사실을 취재할 당시 경남도교육청 담당 부서에서 돈봉투를 건넬 때 써먹었습니다.
처음 한 번은 거절했습지요만 다시 주시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이러시면, 제가 선생님께서 돈봉투를 주시더라고까지 기사를 쓰겠습니다." 아무 표정 없이 이렇게 말했더니 상대방은 "이야, 무섭네" 이러면서 봉투를 거뒀습니다.
이런 일은 한 번 더 있었습니다. 2006년 봄철로 기억합니다만, 한 업체 사장이 학교 급식 비리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는데 그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창원지방법원 출입을 하고 있었고 창원지법에서 업체 사장 재판이 있을 때마다 중계방송하듯이 기사를 썼습니다. 당시로서는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업체 임원한테서 연락이 와서 창원지법 맞은편 밥집에서 만나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밥을 먹다가 볼일을 보러 변소에 다녀왔습니다. 이런저런 하소연을 듣고 저도 몇 마디 하다보니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헤어지려고 일어나 겉옷을 걸치는데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옷이 묵직했습니다. 보니 겉옷 안주머니에 봉투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꺼내보니 꽤 두툼했습니다. 반으로 접히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촉감이 적어도 100만원은 넘는 것 같았습니다.
저랑 만난 사람은 "제발 좀 그만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이러시면 '재판 보도와 관련해 돈을 주더라'고 기사를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그이는 "정말 독한 사람이다" 하며 돈봉투를 챙겨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니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간 관계의 형성 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손사래를 쳐서 억지로억지로 돌려보내거나 한 경우는 인간 관계가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지기도 하고 아니면 전화라도 한 번씩 주고받습니다만.
4. 세 번째는 저 해고시키려고 이러십니까 했는데
어떤 이는 그런 인간 관계라면 하지 않아도 그만이라 여기실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많은 사람을 두루 알아두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텐데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앞에 말씀드린, "이거 받으면 저희들 해고됩니다"였습니다.
해고를 빌미삼은 손사래는 꽤나 효력이 셌습니다. 여태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적이 이번에 나타났습니다. 9월 1일 만난, 연세 높으신 기업체 대표였습니다.
돈봉투를 들이밀 것 같은 기미를 보이기에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1만 원 넘는 돈봉투를 받았다가 걸리면 저희는 바로 해고입니다." 그랬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도 말 안하고 기자님도 말 안하고 무덤까지 갈 텐데 무슨 말씀이시냐?"
이어 "세상 사는 거 별 거 있습니까! 이리저리 울퉁불퉁 사는 거지요. 서로 도우면서 살자는 거지요. 아쉬운 거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그러면서 꽤 두툼한 봉투를 건넸습니다.
속으로 '졌다' 싶었습니다. 두 말도 않고 돈봉투를 집어들었습니다. 웃으면서 "알았습니다" 하는 것은 기본이지요. 돌아와서 헤아려보니 1만원짜리 지폐로 5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5. 이조차 통하지 않아 남의 손을 빌리고 메일을 썼다
50만원이 든 돈봉투. 이승환 기자가 고생을 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편집국장한테 보고하고 돈봉투를 넘겼습니다. 국장석 기자로 있는 후배 이승환에게 일이 맡겨졌습니다. 바로 찾아가 돌려주겠다는 것을 하루만 말미를 달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렇게요.
선생님, 경남도민일보 김훤줍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쓴 기사로 말미암아 작지 않게 타격을 입으셨을 텐데도, '덕분에 전국에 잘 홍보가 됐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를 나쁘게 여기지 않으시고 좋게 봐 주신 것입니다.
어쨌거나 저도 나름대로 사는 방식이 있습니다.
제가 낫다거나 선생님께서 못하다거나 이런 말씀은 전혀 아닙니다.
선생님 사는 방식도 나름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제가 세상 사는 방식도 무시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저희 신문사 기자 한 명이 선생님 회사로 찾아갈 것입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신 돈 이상으로 선생님 마음쓰심을 고맙게 여깁니다.
그리고 주신 자료는 잘 검토해서 언제든 기사로 나갈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나날이 즐거우시기를 빕니다.
정오 조금 지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이렇게요.
이승환 기자님 만났습니다.
그리고 어제 자료는 멜로 보냈습니다.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시간 되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나서, 만약 그 돈봉투를 들고 돌아와 만약 공개하지 않고 어떻게 돌려줄까 속으로 끙끙 앓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이런 문자는 도저히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까닭은 이렇습니다. 50만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돈입니다. 그렇지만 돈이란 참 오묘한 존재여서, 주머니에 넣고 있으면 조금씩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없어지고 나서는, 다음에 자기 돈을 다시 채워넣으려면 자꾸 아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면 돈봉투는 원래 보내진 자리로 절대 돌아가지 못합니다.
후배 기자에게 일을 떠안긴 측면은 있습니다만, 일단 서로가 그다지 좋은 일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 일로 인간 관계를 망가뜨리지는 않았습니다. 서로에게 나쁜 생각을 품지도 않았습니다.
돈봉투도 손상없이 제대로 돌아갔습니다.
어떤 이는 제가 스스로 뻐기려고 이런 글을 쓴다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말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뻐기려 하는 것이든 아니든 세상에서 볼 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다만 기자든 아니든 공무원이든 아니든 학교 선생님이든 아니든, 받고 싶지 않은 돈봉투를 두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난감해하는 또다른 어떤 이에게는 이런 얘기조차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한 말씀 올려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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