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초년 시절, 경남도청에 2진으로 출입할 때의 이야기다. 이 사진은 연출한 것임. 경남도민일보는 명절 선물을 받으면 사회복지시설에 기탁한 후 영수증을 보낸다.
도청의 한 사무실에 취재차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그 사무실에서 나오는 타 신문사의 한 선배기자와 마주쳤다. 그는 오른손에 쥔 흰 봉투를 양복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었다. 문 앞에서 선배에게 인사를 한 후 다시 문을 열고 그 사무실에 들어갔다.
경력이 짧은 기자여서인지 그 사무실의 공무원들은 내가 기자인줄 몰랐던 것 같다. 계장 자리에 앉아있던 공무원이 자기 앞에 앉은 공무원에게 말하는 걸 듣고 말았다.
"젊은 놈이 돈은 되게 밝히네."
그 때 비로소 깨달았다. 공무원이나 기업체 홍보담당자들이 기자에게 촌지를 주고 난 뒤, 돌아서서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자 촌지에 얽힌 아찔한 추억
촌지에 얽힌 아찔한 경험도 있다. 90년대 중반쯤 한 대기업 지방공장의 비리를 취재했다. 당시 그 기업의 본부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정말 집요한 로비를 받았다. 얼만지는 모르겠지만 두툼한 촌지봉투도 주려 했지만 끝내 거절했다. 물론 기사도 나갔다.
몇 년 뒤, 그 대기업을 퇴직한 본부장이 놀랍게도 우리 신문사의 상무로 왔다. 그 때 나는 노동조합 간부를 맡고 있었다. 만일 몇 년 전 대기업 본부장이었던 그로부터 촌지봉투를 받아 챙겼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 때 그 촌지를 받았더라면…
그 후 교육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부교재 채택료 비리를 취재해 보도한 바 있다. 기사가 나간 뒤 우리 지역 부교재 공급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서적도매상 사장과 전무가 찾아왔다. 그들은 무려 현금 10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그 때도 설득 끝에 거절할 수 있었다.
2년 후 정권이 바뀌자 지방검찰청에서 토착비리 사정을 시작하면서 내가 보도했던 기사를 토대로 그 서적도매상을 압수수색했다. 채택료를 건넨 교사들 명단은 물론 촌지를 준 기자 명단까지 적혀 있는 빗장(비밀장부)이 검찰에 넘어갔다. 수백 명의 교사들이 줄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 때도 아찔했다. 만일 내가 그 때 그 촌지를 받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위 기자로 낙인찍혀 영원히 언론계를 떠나야 했을 것이다. "깨끗한 척 하더니 꼴 좋다"는 기자들의 비아냥도 감수했어야 할 것이다.
이후 우연히 한 중소기업의 '빗장'을 볼 기회가 있었다. 거기엔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을 건넨 사람들의 명단과 액수가 적혀 있었는데, 내가 아는 이름 두 개를 발견했다. 한 명은 노동부 근로감독관이었고, 또 한 명은 우리회사 경제부 기자의 이름이었다. 근로감독관은 20만 원, 우리 기자는 10만 원이었다. 신문을 찾아보니 그 기자는 '유망 중소기업 탐방'이라는 기사를 통해 그 회사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걸 보며 혼자 씁스레한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이 블로그 공동운영자인 김훤주 기자가 50만 원이 든 돈봉투를 들고와 보고를 했다. 작년에 한 기업체가 제조한 상품 관련 보도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기업체 사장이 주고 갔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바로 돌려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했다.
돈봉투는 즉시 노동조합 사무국장에게 인계되어 그 회사에 반환됐다.
올해도 추석을 지내면서 촌지와 선물를 처리하느라 한 차례 일을 치렀다. 그러면서 문득 떠오른 촌지에 얽힌 기억을 한 번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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