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우수학술도서 펴낸 자격미달(?) 교수

김훤주 2009. 12. 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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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또는 교수로서 자질이 모자란다는 평가를 받고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써낸 책이 대한민국 학술원으로부터 '기초학문 육성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습니다.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소속된 학교가 마산 창신대학이라면 한편으로 이해가 됩니다. 창신대학이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일을 많이 저질러 왔기 때문입니다. 여러 보기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학교 개교 기념일을 들 수 있겠습니다.

창신대학 개교 기념일은 1991년 문을 열 때부터 9월 24일이었는데, 2006년 교무회의 의결로 4월 1일로 바꿨습니다. 지금껏 대학 당국이 바꾼 까닭을 밝힌 적은 없습니다. 다만 학장 생일이 4월 1일이라는 데서 숨겨진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랍니다.

이런 학교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개교 기념일을 학장 생일로 바꾸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운 대학이니, 뛰어난 학자를 두고도 자질이 안 된다는 억지를 부리고도 남겠다 싶은 것입니다.

게다가 2008년 1월부터 6월까지 치러진 재임용 심사에서 떨어진 사람은 모두 대학 민주화를 요구하는 교수협의회(노동조합)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니 교수협의회 대표인 마산대학 문예창작과 김강호(56) 교수도 당연히 재임용 탈락 명단에 들어 있었습니다.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자기 책을 앞에 둔 채 웃고 있는 김강호 교수.


김 교수는 2008년 6월 26일 인사 규정에 따른 평가 결과 100점 만점에 60점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재임용이 거부됐습니다. 그해 가을학기부터 강의를 못 했습니다. 대학 당국은 올 5월 4일에는 연구실마저 빼앗았습니다.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어 법원이 받아들이자마자 사회관 5층 김 교수 연구실 자물쇠와 열쇠를 바꿔 버렸습니다. 김 교수는 연구실에서 쫓겨났고, 그이가 20년 가까이 벗삼았던 이론서적과 컴퓨터는 단번에 자유를 잃고 구속됐습니다.

김 교수는 그 해 2월 15일 <한국 근대 대중소설의 미학적 연구>를 펴냈습니다. 그리고 올 9월 한국학 분야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습니다. 개별 단위 학회의 우수학술도서 선정도 나름대로 권위가 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학술원에는 비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선정되자 <한국 근대 대중소설의 미학적 연구>는 대한민국 학문의 '대표 선수' 자격으로 세계 여러 나라 이름난 대학 도서관에 보내졌습니다.

김 교수를, 교수협의회 총무를 맡고 있지만 아직은 잘리지 않은 조형래 건축과 교수 연구실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재임용 탈락 실질 사유는 무엇일까요?

△교수협의회(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교수협의회를 만든 까닭은요?
△학장이 굉장히 권위적·제왕적이었습니다. 얘기가 전혀 통하지 않았어요. 발언 자체가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할 수가 없었기에 몇몇 교수들이 교수협의회를 만들어 진언을 하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주종 관계에서나 쓰일 법한, 봉건 냄새가 물씬 나는 '진언'이라는 낱말을 김 교수는 나중에 '건의'로 바꿨습니다. '요청'이나 '요구'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 교수는 인터뷰 끄트머리에서 자신을 일러 '성격이 보수적인 집안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대학 당국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으면 이런 사람까지 나섰을까 싶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나서지 않는 체질입니다. 그런데 학교 당국이 잘못하고 있는데 시정해 달라 해도 말이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됐습니다. 그냥 제대로 설명만 해 줘도 됩니다. 시정할 수 있으면 시정하고, 아니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하니 이해해 달라고만 해도 됩니다.

그런데 그리 하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해 이렇게 만들었어요. 용통성 있게 대화를 해야 마땅합니다. 열린 자세를 보여줄 때 사태가 풀립니다.


-언제부터 창신대학에 몸담았는지요.
△개교할 때부터입니다. 학보사 주간도 10년 넘게 했습니다. 전공은 현대 소설 이론입니다. 이번에 펴낸 책은 1996년 제출한 박사 학위 논문이 바탕이 됐습니다. 문예창작과에 있었는데 특징은 학생 대다수가 중년 여성들이라는 점이랍니다.


-대중소설이라는 말도 있고 통속소설이라는 말도 있던데요.

△예전에는 대중소설을 통속소설이라고들 일러왔습니다. 여기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었습니다. 대중소설은 가치중립적 표현이지만, 통속적인 것은 나쁜 것이라는. 그러면서 중심 문학은 순수 문학이고 주변 문학은 통속소설 또는 대중소설이라고 구분했습니다.

-대중소설의 미덕은 무엇입니까.
△많이 읽혔지요. 영향을 많이 미쳤다는 얘기랍니다. 둘째 당대 사회 분위기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성풍속이라든지 사회 표면 현상을 대중소설만큼 잘 보여주는 예술은 없습니다.

대중성뿐 아니라 예술성까지 아우르는 대중소설도 있습니다. 미국으로 치자면,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런 대중소설은 다른 장르에서도 성공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 근대 대중소설의 미학적 연구>의 의의는 무엇인지.
△연구를 시작한 1996년 당시는 학문 풍토가 이른바 순수소설에 집중돼 있었고 대중소설은 무시되고 있었습니다. 대중소설은 당대 베스트셀러였는데도 통속적이고 문학성과 예술성은 떨어진다는 까닭으로 무시됐습니다.

여기에 사회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제 값어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대중소설을 본격 다룬 것입니다. 이를테면 연구 아이템으로서 약자인 셈인 대중소설에 대한 연구의 효시라는 면에서 연구사적(硏究史的)으로 의미가 있는데 이를 대한민국 학술원이 적극 인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소감은 어떻습니까.
△대중소설에 대한 주목은 '새로운 가치'의 발견 그 자체랍니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 경계 짓기가 아니라 경계 허물기,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이분법이 아니라 여러 중심을 그대로 인정하기. 그러니까, 너(순수소설)도 중심이고 나(대중소설)도 중심이다, 또는 주변도 없고 중심도 없다는 발견이다.

대중소설이 여태 놓여 있던 처지는 지금 우리 상황과 같습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우리와 우리 활동은 학교쪽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 여러 단체들과 연대해 스스로 위상을 지키고 바닥에 떨어진 우리 자리를 끌어올리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학교와 대립 관계에 있습니다. 예전 중심은 학교 당국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 당국 말고 다른 가치들(민주성·다양성 등)을 발견하고 또 만들어냈습니다.


-11월 5일 법원이 재임용 탈락에 대해 무효 판결을 했는데요.
△재임용 거부 평가 기준이 객관적·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법원이 판단했습니다. 의미가 충분히 있지만 그래도 1심 판결입니다. 2심 3심이 남아 있지요. 게다가 재임용 거부가 무효라는 것일 뿐이지 당장 복직시키라든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켜봐야 합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요.
△화·수·목요일은 학교 앞에서 학교 당국의 부당한 처사를 알리는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론서적이 연구실에 갇혀 있어서 읽지 못하고 대신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서당'에 다니면서 동양 고전 공부를 새로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낚시도 한답니다. 중국 강태공 고사에 보듯이 수양하는 의미가 큽니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준비를 차리고 있겠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요. 지금 이 질식할 것 같은 현실에서 통풍구 구실도 된답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연구실을 빌려준 조형래 교수가 불쑥 한 마디 던졌습니다. "학교가 들어서 훌륭한 학자를 이렇게 투사로 만들어 버렸어요. 무슨 어려운 요구를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 학자에게 연구실과 강단을 빼앗긴 아픔은 어느 정도일까, 속으로 가늠해 봤지만 짐작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김훤주
한국 근대 대중소설의 미학적 연구 - 10점
김강호 지음/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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