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조선일보가 15년 전에 저지른 잘못

김훤주 2009. 7. 3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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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써서 밥 벌어 먹는 사람으로서 저는 조선일보를 곱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네가 캠페인을 한답시고 엉뚱하게 낱말 하나를 완전히 버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1994년 여름 이른바 '환경 캠페인'을 벌입니다. '샛강을 살립시다'입니다. 방우영이 쓴 자서전이랄까 회고록이랄까인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도 나옵니다. 233쪽에서 "'쓰레기를 줄입시다' '샛강을 살립시다' '산업화는 늦었어도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캠페인과…… 를 그(안병훈)가 주도했다."고 적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여기서 샛강을 지류(支流) 아니면 지천(支川)이라는 뜻 정도로 썼습니다. 그리고 자치단체나 새마을운동단체 등을 끼고 관련 리플렛을 만들어 수백만 수천만 장 뿌려댔습니다. 모든 국민이 중독이 됐을 정도였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조선일보는 샛강을 버려 놓았습니다. 조선일보가 2000년에는 '영어가 경쟁력이다' 하는 캠페인을 벌였으니 그냥 비웃어주자는 취지에서 영어로 한 번 해보겠습니다. 조선일보는 당시 '샛강을 살립시다'라 하면서 영어로 'Save Our Streams'라 적고 첫 글자를 따서 SOS라 했습니다.

아시는 그대로, stream은 흐름, 입니다. 그러니까 물줄기, 시내 정도가 되겠지요. 그러나 실제 샛강은 뜻이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일보가 오용(誤用)한 것입니다. 샛강은 영어로 'a large river which divides to pass around an islet', 입니다. 해석을 하자면, '조그만 섬을 둘러싸고 흘러 지나가느라고 갈라지게 된 큰 강'입니다.

샛강은 그러니까 '큰 강', large river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경남에서 보기를 찾자면, 김해공항이 있는 부산 대저동 일대 섬 때문에 낙동강이 서쪽(지도에서 왼쪽)으로 찢어져 흐르는 서낙동강이 바로 샛강이 되겠습니다.

한강에서 치자면, 중지도에서 노들섬으로 이름을 바꾼 일대 찢어진 강이 될 것이고 압록강에서는 이성계가 원나라를 치러 가다가 군사를 돌린 역사 사실로 이름난 위화도 언저리가 될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당시 샛강을 이런 식으로 오용했습니다. "극락천 물이 목포 시민의 상수원이자 서부전남의 젖줄인 영산강으로 스며든다. 낙동강의 금호강처럼 영산강 본류를 썩게 만드는 최대의 오염 샛강이다." "올들어 세 번이나 취수 중단 파동을 일으킨 낙동강은 금호강이란 샛강 때문에 망가진 경우다."

금호강은 낙동강 본류로 흘러드는 지류일 뿐이지 샛강이 아닙니다. 영산강의 극락천도 마찬가지, 샛강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샛강'이라 썼습니다. 사전만 한 번 찾아보면 틀리지 않았을 텐데, 엉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2.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조선일보가 '샛강을 살립시다'라는 캠페인을 벌인 지가 15년이 됐는데도 이런 틀린 표현이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며칠 전 창원종합버스 터미널에서 생수를 뽑아마시다가 저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생수 먹을 때 쓰는 종이 봉지. 창원터미널에 있었습니다.


거기 생수기에 따라 나오는 종이 물봉지에 '샛강을 살립시다'와 'Save Our Streams'가 그대로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가 한 번 잘못 쓴 탓에 지금도 '샛강'이 이처럼 엉터리로 쓰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못 쓰는 경우가 이런 정도뿐이겠거니 여겼지만, 컴퓨터로 검색을 해 보니 아니올시다였습니다. 전남도는 '샛강 프로젝트'를 올해 역점사업으로 추진한다 하고, 전남 화순에서는 지난해 8월 동북천 일대를 두고 '지역민과 함께 하는 샛강 살리기' 행사를 치렀습니다.

임진강 샛강을 살립시다도 있고(파주), 대구서도 샛강을 살리자는 난리가 벌어지고 있고 전북 익산서도 마찬가지 블루스를 누군가가 바짝 땡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파주 대구 익산에는 샛강이 없습니다. stream은 있어도 말입니다. 이처럼 샛강이라는 낱말이 오염돼 있는데도 장본인 조선일보는 가만 있기만 합니다.

잘못했다든지 앞으로 고치겠다든지 하는 얘기는 일절 않고 있습니다. 이를 짚은 책 <우리말에 대한 예의>가 나오기까지 했는데도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사소하지만 용서가 안 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먼저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도 이뤄질 텐데, 장본인이 저토록 뻔뻔하니 어떻게 달리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3.
조선일보는 94년 당시 이런 캠페인을 벌인 대가로 국제연합 환경계획(UNEP)에게서 UN 환경상이랄 수 있는 '글로벌 500'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꼬락서니가 가당치도 않아서 1997년 8월에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습니다. '샛강'을 엉터리로 썼다고 짚은 다음 이어지는 끄트머리입니다. 길지 않으니까 옮겨와 보겠습니다.


"지난 해 말 조선일보가 기왕의 신문 잉크 말고 '콩기름 잉크'로 인쇄한다면서 제 자랑하듯 기획기사를 잇달아 내보낸 못난이 행세도, 좀 역겹지만 참고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발행 부수의 20%가량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고물상으로 바로 넘긴다는 사실은 정말 참기 어렵다.

95년에 이미 10개 중앙 일간지의 발행 부수가 하루에 모두 1500만 부에 다다르고, 그 가운데 300만 부는 곧장 폐기 처분되었다고 한다. 이는 한 해 동안에 쓰인 전체 신문용지 98만5000톤 가운데 19만7000톤정도를 그냥 버렸다는 뜻이다.

신문용지 1톤을 만드는 데 30년 자란 나무 17그루가 있어야 한다니까, 한 해만도 아까운 나무 335만 그루가 그냥 나자빠진 셈이다. …… 엄창나게 과소비를 하고 외화를 낭비하고 남의 나라 삼림을 절단내고 결국에는 생태계의 균형을 때려부수면서도 겉으로는 환경이네, 보호네, 시상이네, 수상이네 하는 꼴이 참으로 밉상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오로지 자기 세력 과시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하니 말이다."

이를테면, 딱 필요한 부수 이상으로 찍어내 20% 30% 외형을 부풀리는 데에다가 종이=펄프=나무를 마구 쓰는 이상, 조선일보 같은 신문사가 무슨 환경운동을 한다고 씨부렁거릴 자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여태껏 제대로 잘 써 오던 낱말의 뜻까지 망치면서 하는 짓거리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느냐는 말씀입지요.

김훤주

우리말에 대한 예의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이진원 (서해문집,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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