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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132

민간인학살, 상반된 판결 왜 나왔나?

판사는 법률에 의해 판단하고, 기자는 인류의 보편적 상식으로 판단한다. 이 글은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내린 두 건의 상반된 판결에 대한 기자의 판단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울산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판결만 짧게 보도했을뿐, 다음날 나온 상반된 판결은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두 판결을 비교해 그 모순을 지적한 언론도 물론 없었다. 왜 그런 상반된 판결이 나왔을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두 재판의 판결문을 입수했다. 그 결과 법률 해석의 문제를 떠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모순이 숨어 있음을 발견했다. ◇두 판결의 개요 =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은 1950년 울산보도연맹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국민들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제19민사부(재..

민간인학살 국가상대 손배소 줄잇는다

한국전쟁 전후 국군과 경찰 등 아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이 최근 사법부에 의해 명백한 '불법행위'로 인정되면서, 이에 따른 유족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경남에서도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은 1950년 울산보도연맹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국민들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본질적으로 국가는 그 성립 요소인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를 누릴 수는 없다"면서 "여태까지 생사 확인을 구하는 유족들에게 그 처형자 명부 등을 은폐한데다가 이 사건에서 그 사망이 적법하다며 다투는 피고(국가)가, 이제 와서 뒤늦게 원고들이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면서 소멸시효..

국가가 입 막아놓고 이제와서 시효소멸?

민간인학살 시효소멸 주장은 2차 부관참시 "우리는 용서하고 싶다. 그러나 누구를 용서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아공에서 자신의 딸을 학살당한 한 아버지가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증언석상에서 했다는 말이다. 아마도 한국 역사상, 아니 한민족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비인간적이고 반인권, 반문명적인 국가범죄라면 아마도 한국전쟁 당시와 전후의 '민간인학살' 사건일 것이다. 여기서 민간인학살이란 '합법적인 재판절차 없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비무장 민간인이 대량으로 불법 처형된 사건'을 말한다. 어제(10일)와 오늘(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민간인학살과 관련한 두 건의 판결이 있었다. 하나는 울산보도연맹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었고, 또 하나는 경북 문경 석달동 민간인학살 유족들이 낸 소송이..

국가배상 판결 보도연맹, 어떤 조직인가

어제(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울산 보도연맹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피해유족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국가는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생사 확인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국가가 이제 와서 유족들이 진작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면서 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극히 당연한 판결입니다. 한국전쟁 전후 수많은 유형의 민간인학살이 있었지만, 특히 보도연맹원 학살은 독일의 유태인 학살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보다 더 조직적이고, 고의적이며 명백한 국가범죄입니다. 보도연맹은 1949년 이승만 정부의 내무부와 법무부가 함께 나서서 조직한 사실상의 국가기구였습니..

테러를 무용담으로 기록한 우익청년운동사

시절이 너무 엄혹하다. 마치 박정희 시대나 이승만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실제 현 정권은 이승만을 다시 국부(國父)로 추앙하고 그의 분단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칭하며 반대세력을 싹쓸이하고픈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승만의 친위조직이었던 국민회와 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 땃벌떼와 백골단, 민중자결단과 같은 반공우익집단들이 '뉴라이트'로 이름만 바꿔 다시 발호하고 있는 것도 그 때를 연상케 한다. 이럴 때일수록 현대사를 되돌아보면서 역사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한국 우익집단과 토호세력의 뿌리' 를 약 50회에 걸쳐 추적해보려 한다. 실패한 민중항쟁 10월봉기, 그 후 앞서도 수차 언급했지만 해방후 경남지역의 현대사에..

63년 전 '실패한 민중항쟁'을 아시나요?

시절이 너무 엄혹하다. 마치 박정희 시대나 이승만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실제 현 정권은 이승만을 다시 국부(國父)로 추앙하고 그의 분단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칭하며 반대세력을 싹쓸이하고픈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승만의 친위조직이었던 국민회와 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 땃벌떼와 백골단, 민중자결단과 같은 반공우익집단들이 '뉴라이트'로 이름만 바꿔 다시 발호하고 있는 것도 그 때를 연상케 한다. 이럴 때일수록 현대사를 되돌아보면서 역사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한국 우익집단과 토호세력의 뿌리' 를 약 50회에 걸쳐 추적해보려 한다. 3.15와 4.19 이전에 마산에도 대규모 민중항쟁이 있었다 1946년 10월 7일 ..

63년 전 왜곡된 신문보도가 낳은 비극

해방 직후 찬탁-반탁 운동의 진실은?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 1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톱으로 실렸다. 중요한 내용이므로 제목과 본문 일부를 소개한다. 외상회담에 논의된 조선독립 문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 [워싱턴 25일발 합동 지급보(至急報)]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3국 회상회담을 계기로 조선독립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이 농후해 가고 있다. 즉 번즈 미국무장관은 출발당시에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3국간에 어떤 협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분명하나…(후략)" 이 기사는 즉각 한반도를 반탁운동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이는 또한 첨예한 좌우대결을 일으켜 단독정부 수립과 분단을 고착..

"왜놈 순사보다 경찰이 더 무서웠어요"

일제 강점기의 징병과 징용, 그리고 해방 직후의 미 군정과 좌-우익 대립, 한국전쟁과 빨치산 토벌 등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인 말씀이 하나 있다. 인민군보다 더 무서운 게 빨치산이었고, 빨치산보다 더 무서운 건 지방좌익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빨치산이나 지방좌익보다 훨씬 무서운 건 대한민국 경찰이었다고 한다. 특히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대한민국 경찰은 일제 강점이의 왜놈 순사보다도 더 악독했다는 게 어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였다. "가히 경찰이 빨갱이를 만든 거라!" 그 때문에 선량한 양민들이 경찰의 각종 악행에 견디다 못해 스스로 빨치산에 입산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지리산 기슭의 어른들은 증언한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의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구술 증언 한 ..

우익단체의 기본이념은 '기회주의'였다

시절이 너무 엄혹하다. 마치 박정희 시대나 이승만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실제 현 정권은 이승만을 다시 국부(國父)로 추앙하고 그의 분단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칭하며 반대세력을 싹쓸이하고픈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승만의 친위조직이었던 국민회와 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 땃벌떼와 백골단, 민중자결단과 같은 반공우익집단들이 '뉴라이트'로 이름만 바꿔 다시 발호하고 있는 것도 그 때를 연상케 한다. 이럴 때일수록 현대사를 되돌아보면서 역사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한국 우익집단과 토호세력의 뿌리' 를 약 50회에 걸쳐 추적해보려 한다. 이 글은 그 네 번째로 우익세력의 본질을 알아 본다. 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4)해방..

동요 산토끼 작가는 미군첩보대 통역관이었다

시절이 너무 엄혹하다. 마치 박정희 시대나 이승만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실제 현 정권은 이승만을 다시 국부(國父)로 추앙하고 그의 분단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칭하며 반대세력을 싹쓸이하고픈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승만의 친위조직이었던 국민회와 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 땃벌떼와 백골단, 민중자결단과 같은 반공우익집단들이 '뉴라이트'로 이름만 바꿔 다시 발호하고 있는 것도 그 때를 연상케 한다. 이럴 때일수록 현대사를 되돌아보면서 역사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한국 우익집단과 토호세력의 뿌리' 를 약 50회에 걸쳐 추적해보려 한다. 이 글은 그 세 번째로 해방직후 최초로 결성된 우익단체의 뿌리를 알아 본다.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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