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촛불 탄압' 원흉들을 기억해둬야 할 이유

김훤주 2009. 4. 2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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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은 우리 현대사에 대한 주체의 관점이 진보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특강>에는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한홍구는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개입하기"를 기본 취지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감은 죄다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특강>은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들을 동떨어진 개별 사건이 아니게 만듭니다. 역사 맥락 속에 어떤 특정 사건을 자리잡게 만들어 준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게도 해 준답니다.

보기를 들겠습니다. 한홍구는 이런 물음을 던집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문이 왜 없어졌을까요? 경찰이 개과천선하고 인권의식이 높아져서 그랬나요?" 그러고 나서 스스로 하는 대답은 이렇지요.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자 (권력기관이) 다들 안면 몰수했습니다. 경찰로서는 고문은 조직적인 차원에서 정권 유지를 위해 한 건데 막상 터지니까 네가 책임져라! 이러니 적극 나서 고문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죠. 또 세상이 바뀌고 나서는 김근태를 고문했던 이들이 잡혀 실형을 살고, 그러면서 아 이거 우리가 이렇게 충성할 필요가 없구나."

정리하자면, "경찰 인권의식보다는 물불 안 가리고 충성하다가는 나만 개 피 본다는 현실적인 자각이 고문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물론, 고문한 인간을 처벌할 수 있게(=개 피 보게) 만드는 힘은, 익히 알다시피 '민중의 투쟁'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홍구는 다시 촛불을 들고 나옵니다.

"반드시 기억하고 기록할 게 있습니다. 유모차 끌고 나온 젊은 엄마 붙잡아 조사한 놈들, 유모차 엄마부터 쳐야 한다고 꾀를 낸 놈들, 이자들 이름을 길이 지워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권력에 붙으면 나중에라도 책임을 지게 돼 있구나, 아, 감옥에 갈 수도 있구나, 보여줘야죠!"

고문을 사라지게 만든 민중의 기억과 투쟁을, 촛불에 대한 몰상식한 탄압에도 적용해야 합당하다는 주장입니다. 글을 '듣고' 있노라면, 간담이 제법 서늘하게 만드는 그런 결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이런 관점은 <특강> 전체를 꿰뚫습니다.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 '추억에서 현실로 돌아온 남한산(産) 간첩' '토건족이 지배하는 욕망의 나라' '공공 부문 민영화와 제헌 헌법' '여고괴담과 광우병 괴담의 사회사' '한국은 어떻게 사교육 천하가 됐나' '촛불, 몸에 밴 민주주의' 같은 모든 꼭지에서 변용되고 관철되고 있습니다.

<특강>은 역사에 대한 낙관도 읽는 이들에게 던져 줍니다. '53년 전쟁 끝나고 7년만에 4·19 혁명' '72년 유신 폭압체제 7년만에 부마항쟁과 10·26사태', '80년 광주학살 이후 7년만에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 이 같은 '장엄'한 역사의 7년 주기를 보면서 민중의 역동성을 믿고 다음 대선이 치러지는 4년 뒤를 준비하자는 얘기가 마지막을 수놓습니다.

<특강>을 정신 차리고 읽고 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풀어내는 틀이 바뀌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하하.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 22일치 13면 책 소개에 실은 글을 좀 많이 고쳤습니다.

특강 - 10점
한홍구 지음/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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