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유럽중심주의를 벗어야 세계가 보인다

김훤주 2009. 4. 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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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는 우리나라 서양사학계의 새로운 관점 정립을 위한 애씀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특강>과 마찬가지로 '관점의 변화 또는 진화'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는 단일한 또는 유일한 세계사를 뛰어넘자는 시도입니다. 제게는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 1982년 대학 1학년 때 교양 철학을 배우는데, 교재가 <세계철학사>였습니다.

어느 출판사가 펴낸 책인지는 알지 못하는데, 내용은 죄다 서양(=유럽) 일색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인도나 중국 같은 큰 덩어리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때 우리는 그런 것이 문제인지 아닌지도 몰랐는데, 우리를 가르치던 김용옥 선생(빡빡 깎은 머리에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죠.)이 그것을 짚어줬습니다. 지금 대학에서 가르치는 철학의 역사는, 동양을 빠뜨린 '반쪽짜리'일 뿐만 아니라 그래서 '잘못된' 세계 철학 역사라고 말입니다.

이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이번에 이 책을 아무 망설임 없이 단번에 골라잡았답니다. "유럽중심주의 극복이라는 문제의식을 입장 천명 수준에서 구체적인 역사 서술에 대한 검토 단계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이 책은 책머리에서 밝혔습니다.

유럽중심주의는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뼈 속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개신교 신자를 중심으로, 우리나라를 '극동(極東)'이라 이르는 이들도 없지 않은데 이는 유럽 가운데서도 서(西)유럽을 중심으로 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지요. 서양이 표준이 되고 유럽이 선진이 되는 그런 생각과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과 현실에는 물론 근거가 있습니다. "19세기 중엽에서 약 1세기에 걸쳐 유럽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패권을 행사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유럽중심주의=유럽이 스스로를 '문명'으로 인식하고 자신만이 '근대성'을 성취하는 '진보'를 이뤘으며 따라서 보편적 인류 지도권이 있다는 생각은 이미 18세기 후반에 체계를 갖췄"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 하는 데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의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유럽의 세계 제패를 가능하게 한 영국 산업혁명을 보기로 들자면 이렇습니다. 여태 대부분은 영국 산업혁명을 놓고 "외부 개입 없이 영국 사회의 내적 역량을 바탕삼아 이룩된 것"이라는 긍정 평가가 대다수였습니다만.

이 책은 프랑크나 홉슨 같은 제3세계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가져와 '11세기 중국의 철 생산 수준은 18세기 영국보다 높았으며 영국은 19세기가 다 돼서야 중국의 11세기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얘기해 줍니다.

산업혁명의 대들보 면포 방적도 마찬가지. '중국 직조 기술자들이 13세기에 이미 발명해 놓은 산업용 방적기 주요 부분의 전파가 영국 면직물 발전의 기초'가 됐다지요.

물론 이런 얘기가 '영국 산업화가 오로지 중국적 기초에 근거해 이뤄졌다'는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유럽이 인종, 민족, 제도, 그리고 자본주의 정신 등에서 아시아 지역보다 우월했기 때문에 근대 산업화에 성공했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오히려, "유럽이 세계 경제의 (반)주변부에 머물러 있었고 그 '후발성'의 비교우위를 이용해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동아시아가 '후발성'의 비교우위를 이용해 급속도로 산업화에 성공한 사례와 비슷하다"고도 합니다.

이 같은 비판적 검토와 도발적 서술은 책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당연하다 여기는 고대 그리스를 두고도 "그게 과연 '유럽적인' 문명인가?" 물을 정도입니다. 이러니까, "중세 유럽 십자군 전쟁이 원정인가 침략인가?"는 물음이나, 로마제국 정통성을 유럽으로 돌리고 비잔티움제국을 구석으로 처박는 편향된 인식에 대한 비판이 여기서는  당연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 여러 나라의 침략과 지배를 몸소, 그리고 오랫동안 겪어야 했던 라틴 아메리카에 일어난, '유럽에 대한 인식과 자기 정체성 탐색'도 이 책은 제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훤주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 - 10점
한국서양사학회 엮음/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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