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내가 <토호세력의 뿌리>를 절판한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09. 3. 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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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한민연)가 '마산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국가중심화 과정과 로컬인의 반응'이라는 주제로 연구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제가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간단히 말해 '국가가 지역(로컬)을 지배하는 방식과 이에 대응한 지역민의 반응을 마산의 경우에 맞춰 분석해보겠다'는 것쯤으로 이해된다.

그들의 연구 계획 1번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국가중심성에 의한 지역의 포섭과 저항 : 지역 언표주체의 형성과 변화를 중심으로'.

역시 말이 좀 어렵다. '언표 주체'라는 걸 뭘로 풀어볼 수 있을까. 아마도 '여론주도층'쯤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마산의 여론주도층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어 왔는가'라는 게 연구 주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회의실.


각설하고, 10여 명의 각기 다른 전공분야 교수들로 구성된 이 연구프로젝트 팀에서 지난 27일 나를 초청했다. 그동안 내가 기자생활을 해오면서 마산에 대해 연구 또는 취재해온 내용에 대한 브리핑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뭘 이야기할까 생각하다가, 결국 내가 2005년에 썼던 책 <토호세력의 뿌리>(도서출판 불휘)의 내용을 중심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그 자리에 모인 10여 명의 교수들 중 몇몇은 <토호세력의 뿌리>를 통째로 '불법복제'한 책을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해방 직후 마산 우익세력의 형성과정, 그들이 한국전쟁을 거쳐 정치권력과 행정권력, 경제권력, 문화권력, 언론권력, 교육권력 등을 장악해나가는 과정, 그들에 대응한 저항세력이 몰락, 제거 또는 포섭되는 과정을 주요인물들의 사례와 함께 설명했다.


이야기의 끝은 대충 이렇게 했던 것 같다.

"지역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민주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의 권한과 재정이 지방으로 이양되는 것은, 그렇잖아도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단체장과 토호들의 권한만 강화시켜주는 꼴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지역민주화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지역주민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제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이런 지역민주화에 전혀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지방자치를 해당지역 국회의원 개인에게 복속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진보정당의 지방자치에 대한 태도다. 진보신당은 그야말로 신생정당이어서 잘 모르겠지만, 민주노동당이 보여온 지방자치에 대한 태도는 오히려 예전의 열린우리당보다 못하다. 그들은 지방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중앙권력 진출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한 교수가 내 이야기에 호응해주었다.

"맞다. 오히려 지역운동을 망치는 사람들이 진보정당이다. 지역에서 어렵게 사람들을 꾸려 놓으면 그들이 나서 중앙의 이슈로 몰고 가 버린다."

사실 <토호세력의 뿌리>를 출판했을 때도 그랬다. 나는 그 책을 지역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 책은 주로 '토호'들이나 그 자제로 짐작되는 사람들에게 팔렸다. 또한 우리 지역보다 다른 지역에서 더 주문이 많았다.

불법복제된 내 책 '토호세력의 뿌리'.


2007년말, 책이 절판된 후에도 간간이 들어오는 주문 때문에 2008년 상반기 중 재판을 내겠다고 답해놓고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출판사에 누가 되지 않을만큼 팔릴지 자신도 없었지만, 바뀔 희망이 없는 지역의 현실이 암담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부산대 한민연의 연구과제 중 이번 부분이 있다.

"마산을 움직였던 엘리트와 그들이 조직한 단체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이 국가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따라 관변단체와 '대항엘리트'로 나누고, 각각의 존재양식을 분석함으로써, 국가의 로컬지배방식과 로컬 내부의 대응양상을 분석하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대항엘리트'들이 과연 지금 우리지역에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자꾸 힘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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