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문필활동을 하는 이라면 꼭 읽어야 할 '번역의 탄생'

김훤주 2009. 2. 2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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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우리 문화의 두께가 절대 만만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책이 하나 나와 있습니다. ‘번역의 탄생’은, ‘종살이하는’ 번역이 아니라 ‘주인다운’ 번역이 이뤄지고 있음을 일러줍니다.(그러나 이 말이 ‘종살이하는’ 번역이 없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른 나라 말로 된 작품들을 한국어로 잘 번역하는 방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밥벌이 삼아 애벌 번역을 해대는 대학(원)생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한국어로 글 쓰는 이들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쓸 수 있는지 막힌 벽을 허무는 그런 구실을 합니다.

번역에도 한국어 글쓰기에도 크게 보탬이 되겠지 싶은 것입니다. “시간은 많이 들었지만 원문에 가장 가까운 표현을 이리저리 궁리하다 보니 한국어의 구석구석을 보통 사람들보다는 자세히 들여다본 것도 같다.”는 글쓴이 이희재 씨 얘기에서도 이런 사정이 짐작됩니다.

얘기는 이어집니다. “번역을 하면서 나는 한국어에 눈떴다. 영어, 일본어, 독일어 같은 외국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다보니 한국어의 남다른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연하기만 했던 한국어답다는 개념이 차츰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1. 직역주의를 존중은 하지만……
글쓴이는 직역주의를 존중합니다. 직역이 “한국어를 살찌우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그이 보기에 한국의 직역주의는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보다는 그저 원문을 무작정 우러러보는 종살이에 가깝다”. 봉건 전통을 허물기 위해 외국 문물과 사상을 직역으로 소개한 중국 루쉰 같은 정신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직역보다는 의역을 더 많이 하려고 애쓴답니다. “‘조리법’이나 ‘요리법’이라는 좋은 한국어가 있는데 영어 recipe를 그대로 읽은 ‘레시피’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고 ‘좋아하는’ 또는 ‘아끼는’이라는 쉬운 한국어가 있는데 영어 favorite을 그대로 읽은 ‘페이보릿’이라는 말까지 널리 쓰일 만큼 한국어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우리 한국 현실에서 ‘번역체’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지양해야 할 대상이 아닌 그저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좋다거나 나쁘다는 평가는, 경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동사의 명사화, 부사의 형용사화, -했었던- 같은 새로운 시제의 수용”, 그리고 “‘의’의 비중이 커졌다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2. 한국어 특징은 능동태에서 비롯된다?
이 씨는 책에서 한국어는 ‘명사보다 동사’가, ‘형용사보다 부사’가 발달했고 대명사를 잘 쓰지 않으며 주어가 자주 생략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영어나 불어 따위는 수동태를 많이 쓰지만 한국어는 능동태를 많이 쓴다는 특징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글쓰기나 한국어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읊조리고 있고 또 읊조릴 수 있는 내용이랍니다. 그러므로 <번역의 탄생>이 지닌 미덕은, 이런 특징들이 자기네들끼리 안팎으로 촘촘하게 엮여 있는 관련성을 제대로 똑바로 알려주고 있다는 데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동태와 능동태 얘기에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영어는 타동사를 많이 쓰기에 수동태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어에서는 자동사 ‘놀란다’를 쓰면 아무 문제 없이 되지만 영어는 수동태 ‘be surprised at’밖에 쓸 수가 없습니다. 영어 surprise가 ‘놀라게 한다’는 타동사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영어든 한국어든, 주체를 뚜렷하게 밝히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랍니다. 나쁜 내용을 얘기할 때는 더욱 그렇겠지요. 그런데 영어는 주어를 생략하면 문장이 성립이 안 된다는 약점(이럴 때는)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는 별 뜻 없는 주어를 쓸 수 있는 수동태를 상대적으로 많이 쓰게 됐답니다.

그러나 한국어는 (다행스럽게도) 주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말글입니다. 그러니까 능동태를 쓰면서도 주어를 생략함으로써, 주체를 밝히는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셈입니다.(그러면서도 국어가 주어를 밝히는 측면도 있다고 합니다. “‘덥수룩한 구레나룻’은 구이고 ‘구레나룻이 덥수룩하다’는 절입니다. 한국어는 절을 좋아합니다.”)

이런 보기도 들었습니다. 영어로는 능동태 ‘우리가 주문한 카세트(the cassettes we ordered)’ 또는 수동태 ‘주문된 카세트(the cassettes, which were ordered, by us는 생략)’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 써야 하는데 ‘주체가 드러나 있기 때문에’ 뒤쪽이 온건해 보인답니다. 그러나 한국어는 그런 고민 없이 ‘주문한 카세트’라 하면 그만이지요.

‘당신이’ 또는 ‘우리가’가 같은 주어를 내세우지 않아도 되며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까칠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게 됩니다. ‘한국어는 영어 등과 달리 자동사가 많고 그래서 능동태를 많이 쓰니까 영어보다 한국어가 동적이 되고 동적이다 보니까 명사보다 동사를 많이 쓰게 된다. 게다가 주어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특징이 이를 거든다.’

그러면 형용사보다 부사가 더 발달한 까닭은요? 간단하지요. 형용사(또는 형용어)는 명사를 주로 꾸밉니다. 그러나 부사는 형용사-형용어나 관형사-관형어도 꾸미지만, 주로는 동사 또는 동사어를 많이 꾸밉니다. 명사-형용사/동사-부사 이리 짝이 됩니다. 명사를 많이 쓰는 영어는 형용사가 더 발달했고, 한국어는 동사를 많이 쓰니까 부사가 더 발달했습니다.

그렇다고 글쓴이가 명사형 문장을 침뱉어 버리는 것은 아니랍니다. “추상 명사가 주어 자리에 들어간 영문은 직역해도 별로 귀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 번역체는 한국어 문체의 일부로 뿌리내렸”습니다. 그래서 현실이 된 번역체도 이이는 안고 가는 것 같습니다. ‘번역의 탄생’은 이밖에도 다른 미덕이 많습니다.

3. 글쓰기에 나도 몰래 번역투가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만드는
말글이야 어떻게 쓰든 관계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번역의 탄생’은 필요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표현을 고민하고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기록을 남기려고 애쓰는 이들, 자기 글쓰기에 번역투가 끼여 있는지 어떤지 반성할 줄 아는 이라면 이런 책 한 권 옆에 두는 것은 아마 필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작은 제목들입니다. ‘한국어 말꼬리를 잡아라-실감나는 어미 활용’ ‘간결한 문장의 비밀, 덧말-접두사와 접미사 활용하기’ ‘느낌이 사는 토박이말-입말 활용법’ ‘만들어 쓰기-개념의 핵심을 찌르는 조어법’. ‘살빼기-군살은 뺄수록 아름답다’ ‘덧붙이기-풀어주면 쉬워진다’ ‘짝짓기-짝을 지으면 안 되는 가짜 친구들’ 등등.

어떻습니까? 관심 또는 호기심이 조금이나마 생길 법도 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으신가요? 어쨌거나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 많이 했습니다. 전에는 제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못된 번역이 우리 말글을 망쳤다면서, 번역하는 이들을 두고 ‘우리말에 대한 고민이 없거나 적은 천격 일색’,이라고만 짐작을 했었거든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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