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왜놈 순사보다 경찰이 더 무서웠어요"

기록하는 사람 2009. 2. 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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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징병과 징용, 그리고 해방 직후의 미 군정과 좌-우익 대립, 한국전쟁과 빨치산 토벌 등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인 말씀이 하나 있다.

인민군보다 더 무서운 게 빨치산이었고, 빨치산보다 더 무서운 건 지방좌익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빨치산이나 지방좌익보다 훨씬 무서운 건 대한민국 경찰이었다고 한다.

특히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대한민국 경찰은 일제 강점이의 왜놈 순사보다도 더 악독했다는 게 어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였다.

"가히 경찰이 빨갱이를 만든 거라!"

그 때문에 선량한 양민들이 경찰의 각종 악행에 견디다 못해 스스로 빨치산에 입산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지리산 기슭의 어른들은 증언한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의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구술 증언 한 토막을 올린다.

이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전후 7년 동안 의경경찰특공대로 동원돼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청춘을 희생당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 의용경찰특공대원들에 대해 군복무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다치거나 죽은 사람조차 상이군경 또는 전몰군경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야 이들 의용경찰 특공대원 출신 할아버지들은 '참전유공자'로 인정돼 월 8만 원의 생계지원금을 받고 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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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 저희들도 상대적으로 편하게 컸죠.

할아버지 : 하고 싶은대로 공부했고, 하기가 싫어서 못했지. 하라쿠면 얼마든지 했었는데.

김주완 : 나라가 우리가 조금 빨리 민주화가 됐으면, 어르신 같으신 분들 젊으실 때, 청춘도 모르고 이렇게 싸우시다가 나라를 지키고 해왔는데, 보상도 충분히 해드리고 해야 되는데, 그런 걸 보면, 우리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 참 답답합니다.

할아버지 : 전에 요량하면 보상 많이 받아요. 전에 요량하면. 하여튼 말 한마디라도, 우리 클적에는요. 우리 클 적에는 경찰이라쿠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경찰이라쿠는 것이... 가히 경찰이 빨갱이를 만든 기라.

김주완 : 뭐예? 만든기라?

할아버지 : 어, 경찰이. 뭐 술이나 먹고 싶고, 돈이나 탐이 나고 그러면 동네 저게, 뭐 한 것들 그런 사람들을 말도 잘 안 듣고 하는 거 그런 거 잡아다 뚜드리 패면, 빨갱이가 돼삐리는기라. 그런 걸 내가 다 봤어. 그렇다고 이것을 하이튼 확실히, 표실히 증거가 되고로 그런 말도 몬 할 그런 거시기지. 지금은 그런 거시기 있어예?

김주완 : 일제 때도 경찰이 참 무서웠는데, 일제 때보다 해방되고 나서 더 경찰이 더 무서워졌다는 거 아닙니까?

할머니 : 아이구, 말도 못했죠.
할아버지 : 예. 더 무섭죠.

김주완 : 그기 참 우리나라는 해방이 됐으면은 우리나라 경찰이 우리 국민들한테 더 잘해주야될낀데 그죠?

할아버지 : 예. 해방 후에, 해방됐다고 좋다고 날뛰다가 엄청난 시련을 우리 민족이 안 겪었소?

김주완 : 예. 잘 알겠습니다. 오늘 참 고맙고예.

할머니 : 아이구. 자기네들은 몰라요. 빨갱이가 얼마나 무섭고, 순사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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