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설날에 할아버지 뺨 때린 사연

김훤주 2009. 1. 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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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저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사건은 1970년 또는 71년에 일어났습니다. 물론 장본인인 제 친구로부터 이 얘기를 들은 때는 한 3년 뒤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1968년 겨울 풀빵(국화빵이라고나 할까요? 지름 2cm에 두께 1cm정도 되는, 밀가루 반죽을 틀에 부어 익혀 만드는 조그만 빵)이 하나에 1원 했습니다.

화폐 가치로 치면 그 때보다 지금이 한 스물다섯 배 정도 올라갔답니다.(제 실감으로는 그보다 더하지 싶습니다만) 당시 풀빵을 지금 사려면 30원쯤 한다는 얘기겠지요.

설날 할아버지한테 세배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주신 세뱃돈이 고작 5원이었습니다. 지금 간부 공무원이 돼 있는 이 친구는 화가 났습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해 이제 학생도 됐는데, 이게 뭐야! 이런 생각이었겠지요. 얼굴이 벌겋게 돼서 벌떡 일어나서는 뚜벅뚜벅 걸어가 느닷없이 할아버지 뺨을 때렸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할아버지 뺨을 때렸다’는 사건의 엽기성(?)에 눌려, 아주 흥미로운 이 사건의 전말이 궁금했지만 궁금증을 풀지는 못했습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은 조금 했지만요.

2003년인가에 어찌어찌 연락이 닿아 이 친구를 만났습니다. 부산에서였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20살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옛날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습니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문답이 오간 다음, 할아버지 뺨 때린 사건을 떠올리면서, 도대체 왜 그랬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친구 선한 웃음을 입에 빼물더니 얘기했습니다.

“그래 새벽 대청에서 세배를 올리는데, 먼저 세배한 다른 친척 형들은 50원 100원을 받았거든. 그런데 나한테는 딱 5원만 주는 거라. 내가 제일 어렸거든.”

“야! 그래도 어떻게 할아버지 뺨을 때릴 생각을 다 하냐?” “아니! 그냥 할아버지한테 가서 따지려고 했는데, 손이 그냥 스윽 나가 버린 거야. 생각이나 작정하고 저지른 일이 아니라.”

“그래,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기는? 뒈지게 맞았지. 어른들이 한꺼번에 ‘이런 호로 새끼가 있나!’ 하면서 끌어내 막 때렸거든. 그 바람에 받았던 5원도 잃어 버렸고.”

우리는 앞서부터 실없이 웃고 있다가, “……5원도 잃어 버렸고.” 발언에서 한 번 뒤집어졌습니다. ‘5원’에 대한 친구의 ‘집착’이 너무 가상하다 느껴졌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진짜 뒤집어지는 일은 뒤에 있었습니다. 친구가 이리 말했을 때입니다. “다음 설에는 5원짜리가 안 나왔어, 그리고 형들이랑 똑같이 받았지 싶은데. 그러니 뺨 때린 게 효과가 있기는 있었나봐.”

어쨌거나, 호로 새끼에서 ‘호로’의 말뿌리가 무엇인지 행여 아십니까? 청나라가 일으킨 병자호란이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청나라 오랑캐(胡)에게 포로(擄)로 잡혀갔던 이를 뜻한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우리는 그날, 국민학교 4학년 때 지켜보던 여자애들한테 서로 뽐내느라 밀걸레 빤 ‘바께쓰’ 더러운 물 을 누가 더 많이 마시나 내기한 일까지 떠올리며 밤새 술을 마셨답니다. 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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