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20년도 넘은 오랜 옛적에, 노동과 자본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다고, 다를 수밖에 없다고 저는 배웠습니다.

이런 얘기는 80년대는 물론 90년대 중반에까지만 해도 그럴 듯하게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 지나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87년 대투쟁을 거치면서 창원공단 거리를 휩쓸던 자전거 무리는 금세 오토바이 떼로 바뀌었고, 그러다가 90년대 초반 지나면서는 죄다 자동차로 넘어갔지요.

또 같은 즈음에 아파트로 수요가 몰리면서 집값이 엄청 뛰는 난리 '부루스'도 한 바탕 일어났더랬습니다. 그 즈음 공단 통근버스들도 자취를 감추지 않았나 싶습니다.

노동자 대다수가 다 같이 가난한 시절은 이 때 다했습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조차 자동차는 기본이고 아파트나 논이나 밭 또는 산 같은 땅 아니면 주식 따위를 챙기는(챙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 퍼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0년대 접어들면서 노동은 자본에 잡아먹히고 말았다고 내심 여기고 있었습니다. 대다수 노동자와 그 가족이, 껍질만 노동이지 알기는 자본 그 자체다고 여겼습니다. 자본에게 잡아먹힌 노동!!!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이니 한편으로는 당연한 경향으로 쳐야 하고, 더욱이 노동운동에서 제대로 대중교육을 못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며 지냈습니다.

오늘 그렇지 않은 글을 봤습니다. 자본이 꼴딱 삼키려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바로 그 현장에서, 꼿꼿하게 마주 선 채로 허리에다 두 손 터억 걸치고서는, "이거 우끼는 짜장이잖아", 툭 내뱉는 대목입니다.

노동의 눈길이 곳곳에서 반짝반짝 빛납니다. 글을 읽고 나서, 이렇게 빛나도록 도와준 조연이, 다름아니고 바로 자본임을 알아채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통째로 한 번 옮겨봅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만 좀 고쳤습니다.

제목은 <사원 가족 특강에 다녀와서-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강연을 듣고>이고 글쓴이는 '이미경'이라 적혀 있습니다. 제목이 너무 밋밋한 바람에 그만큼 내용의 상큼함이 죽어버렸습니다. 아쉽습니다.

사원 가족 특강에 다녀와서-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강연을 듣고

10시 시작한다던 강연이 20분이 지나도 강사는 나타나지 않고 카메라를 든 남자가 편하게 자리를 잡은 입구쪽 사람들에게 초등학생 줄 맞추기 가르치듯 열 맞추고 줄 맞추어 빈 자리 채워 앉기를 강요해 마음을 상하게 하더니 부사장께서 긴 강의를 먼저 시작하였다.


부사장님은 유능하고 멋지신(?) 분이었다. 말로만 듣고 TV에서만 보던 실체를 처음으로 보는 기러기 아빠라고 하셨다. 꿈이 있는 부사장 사모님께서는 자기발전을 위해 공부하러 유학을 가셨단다. 엄마 따라 유학 간 세 자녀들은 공부하는 엄마를 존경한다고 한다. 나도 그런 존경 받고 싶다.

나도 꿈이 있었다. 나도 공부가 하고 싶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바쁜 부모 밑에서 겨우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 다니다가 공고 졸업하고 공장 다니는 남편 만나 아이들 공부시키기에도 바쁜 나도 어느날부터 공부가 하고 싶었다.

부사장님 사모님처럼 외국 유학은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집 가까운 전문대 문예창작과 2년 4학기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학비가 한 학기에 250만원 최소 1000만원 정도는 있어야 그 꿈을 꿀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내겐 그 꿈이 그저 꿈이었다.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별로 안 유능하고, 그래서 안 멋진 내 남편에겐 꺼내 보일 수도 없는 내 꿈이었다.

나보다 겨우 세 살 많은 멋진 강사가 이루고 사는 꿈과, 같은 회사를 다니긴 하지만 부인을 공부시키는 부사장님을 남편으로 둔 사모님의 꿈이 현실인 자리를 떨치고 점심까지 굶고 나오는 내게 여자 과장님이 참석해 고맙다며 선물을 주었다. 비싼 화장품이었다.

용도를 몰라 버스정류장에 앉아 한참 동안 설명서를 읽어보니 샤워 후 뿌리는 향수라고 적혀 있다.

향수라 ….

하루종일 기름 냄새 페인트 냄새 땀 냄새 절여 씻어도 늘 무언가 냄새를 남기는 남편 앞에서 이 비싼 향수로 오늘 저녁 유혹해 볼까나….

치! 차라리 문화상품권이나 주지. 내 꿈보다 내 아이들 꿈을 위해 책이라도 사 주게…… 오늘도 나는 이렇게 늙어간다.

이미경

글이 좀 거칩니다. 그렇지만 저는 거칠어서 더 좋습니다. 자연스럽기도 하고요. 또 나중에 가다듬으면 아주 좋아질 개연성이 많다는 측면에서도 저는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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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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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7 1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에효 2008.12.07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오늘 밤에 함 유혹해 봐?
    에효,,, 팍팍한 세상 한숨이 나네요...

  3. 임현철 2008.12.07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제목이 야해서 기대하고 봤더니만 역사나군요.
    창원은 이소리 시인인가? 하는 분 땜에 많이 친근하네요...

  4. Favicon of http://blog.daum.net?ckp920 최경필 2008.12.07 2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반성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좋습니다.
    건필하시길....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08.12.07 2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어제 밤에 이 글 쓴 이를 만나는 즐거움이 제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리 한 번 올려봤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시 쓰는 모임 '객토'의 여섯 번째 시집 <가뭄시대> 출판기념회 자리였습니다. 저도 동인이 아니지만, 이 글 쓴 이도 여기 동인이 아니었습니다. 이름이 이명희라고 했습니다. 글에는 '이미경'이라 돼 있는데, 이게 이명희 씨 필명인지는 제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