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출연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구성물도 아니고, 취재였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취재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하더라도 우리는 뉴스를 하려는 것이었지, ‘시청자 세상’을 만들고자 한 게 아닙니다. MB 집사가 아무리 MB를 감싸며 말을 하더라도 ‘DAS’는 MB 것이라는 단서가 나오면 이를 보도하는 게 저널리스트라 생각합니다.
맥락을 왜곡했다고 합니다.
우선 당시 녹취록 전문을 첨부합니다.
꼭 한 달 전이네요. 지금은 많은 사실 관계가 더 드러났지만 당시 조국 장관과 부인은 사모펀드 투자과정에서 운용사의 투자처와 투자 내역 등을 사전에 전혀 몰랐다고 계속 주장해왔습니다. 사전에 알고 돈을 넣었다면 자본시장법이나 공직자윤리법 등의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인터뷰 취재 과정에서 부인 정 교수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정황 증언이 정 교수 자산 관리인 입에서 나온 겁니다. 더구나 자신의 펀드도 아닌 해당 운용사의 다른 펀드가 투자한 회사의 성장 가능성까지 타진했다는 증언까지. 저희가 보도한 건 이겁니다. 인터뷰의 90% 이상은 정 교수의 펀드 투자와 관련된 얘깁니다. 그러한데 이 얘기보다 중요한 다른 맥락이 있는지 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출입기자의 통화가 출입처와 내통한 것이라 합니다.
이번 검찰 수사가 순수하다고 법조팀 기자 어느 누구도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순수하지 않다고 해서 검찰을 상대로 취재조차, 보도조차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자산관리인이 장관 부인의 법 위반 정황을 처음 밝혔습니다. 자 그럼 이제 취재가 끝났으니 방송하면 되나요? 혹시 착오나 다른 의도에 의해 부풀려지거나 허위가 아닌지는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취재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근데 왜 하필 검찰에 그걸 확인하냐고 말합니다. 취재원이 수사 과정에서도 일관성 있게 같은 진술을 하는지는 증언의 신뢰도를 확인해볼 수 있는 수단입니다. 수사 기관이 이 증언의 신빙성 관련해 또 다른 근거들을 갖고 있는 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혐의를 적용하려는 지도요. 물론 정경심 교수 당사자에게도 물었습니다. 하지만 장관 측도 정교수도 답하지 않습니다. 뉴스가 나간 이후에도 단 한 번의 이의조차 제기하지 않습니다.
조사 받는 사건 피의자인데, 피의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일부라도 검찰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합니다. 저희는 자산관리인의 피의사실 즉, ‘증거인멸’ 혐의를 검찰에 물은 게 아닙니다. 자산 관리인이 말한 장관 부인의 의혹을 검찰에 물은 겁니다. MB 집사에게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MB의 집사의 의혹’이 아니라 ‘MB의 의혹’과 관련된 증언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수사 중인 검찰에 확인 시도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당시에도 그랬구요.
더구나 자산관리인은 저희와 인터뷰하기 전에 이미 검찰 조사를 한,두 차례 받았고 우리와 인터뷰한 내용, 보도 내용을 검찰에 먼저 진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찰에겐 당시 우리 보도 내용이 별반 새로울 게 없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자산관리인과 인터뷰했다는 사실을 갖고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자산관리인을 압박했다면 유감스러운 일이며 우리도 검찰에 항의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취재 과정에서 검찰이 인터뷰한 사실 자체를 알아챘다고 해서 그걸 마치 기자가 인터뷰 내용을 통째로 검찰에 넘긴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억지고 ‘거짓 선동’입니다. 기존 취재 관행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였다면 수긍할 수 있는 정도만큼만 해야 합니다. 더구나 대상이 된 뉴스도 잘못 골랐습니다.
정경심 교수는 이제 자산관리인을 놓아 주어야 합니다.
정 교수의 다른 의혹은 앞으로 재판에서 가려질 것입니다. 다만 수사가 시작된 이후 정 교수 때문에 형사 처벌의 위기에 빠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산관리인 김경록 씨입니다. 증거인멸의 죄는 징역 5년형까지 처해질 수 있는 가볍지 않은 범죄입니다. 다른 혐의는 몰라도 한 사람을 이 같은 범죄에 몰아넣었으면 적어도 반성은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젠 자산관리인이 모든 걸 꾸미고 숨겼다고 합니다. 자신은 시킨 적이 없다며 모든 잘못을 자산관리인에게 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신에게 향하는 비판을 막아줄 총알받이가 돼달라고 합니다.
취재를 할수록 이 사람이 Pb로서 고객을 상대한 건지 아니면 한 집안의 집사였던 건지 점점 더 헷갈립니다. 심성이 착하다고 합니다만 무슨 이유로 어떻게 젊은 사람이 정 교수와 그런 관계까지 된 것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 정 교수는 자산관리인을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합니다. 자산관리인의 변호를 정 교수 측 로펌 변호사가 아닌 다른 변호사가 맡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할 사실입니다.
어렵지만 ‘저널리즘의 원칙’은 지켜나가야 합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새로운 저널리즘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지난 10년간 우리는 무기력했습니다.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기성 저널리즘, 기존의 취재 관행은 대중에게 부정되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취재 과정조차 이젠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져서라도’, ‘짜장면 배달부를 붙잡고서라도’ 한 조각의 팩트라도 건져보려는 행위와 방법은 이제 대중의 감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교과서에 적힌 빛바랜 저널리즘 원칙들은 대중에게 그리 중요한 게 아닌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유튜브가 지상파를 기성 언론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좌우 진영 모두 그렇습니다. 유시민 이사장의 ‘알릴레오’도 그중 하납니다. 유 이사장 스스로 ‘어용 지식인’을 자처했고, 자신의 진영을 위해 싸우며 방송합니다. 자이트가이스트, 시대정신.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같은 것이 시대정신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성 언론, 우리 KBS뉴스엔 이런 시대정신이 담겨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현 정부 또한 작금의 ‘시대정신’일 수 있습니다. 야당이나 반대진영 측의 말과 행동을 보면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집니다.
하지만 시대정신을 담아내야 하는 저널리즘이라도 지켜야 할 원칙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 이사장은 엊그제 방송에서 정경심 교수의 자산 관리인을 내세워 정 교수 측의 여러 의혹에 대한 방어에 나섰습니다. 이 자산관리인이 정 교수 때문에 ‘증거인멸’의 범죄자로 떨어질 위기에 몰려있다는 사실은 유 이사장에게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오직 조국 장관과 정 교수만 중요할 뿐입니다. 진영의 이익과 논리를 대변하는 방송과 언론이 때에 따라선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한 개인의 인생을 제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한 진영의 실력자가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면서 ‘시대정신’을 앞세운다면 그건 언제든 ‘파시즘’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진영 언론’들과도 달라야 합니다. 진영 언론의 공격을 받아도, 대중의 손가락질을 당해도 지켜야 할 저널리즘 원칙은 지켜나가야 합니다. 어렵지만 싸우면서 길을 찾아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10여 년, 많이 싸우면서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책임감도 가졌습니다. 마음의 짐도 많았습니다. 파업이 끝난 이후도 이런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짐을 내려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10.10. 성재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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