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은 이제 낯설지 않은 일상 용어가 되었다. 철도·증기기관의 발명에 따른 1차산업혁명,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2차산업혁명, 컴퓨터·인터넷의 발달에 기반한 3차산업혁명에 이어진다. 4차산업혁명은 생활과 산업의 모든 분야·영역에 정보통신기술이 융합하는 것이다.
스위치나 리모컨을 조작하는 대신 말소리를 내어 텔레비전이나 전등을 켜고 끄는 것이 이제는 신기하지 않다. 말소리에 반응하는 정보통신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 교과서도 책이라는 형태를 벗어나게 생겼다.
컴퓨터 게임처럼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면 내용도 지금보다 풍부해질 수 있다. 지금은 말과 글로 소통하지만 이게 많은 부분 정보통신 프로그램으로 대체될 날도 멀지 않았다.
과학코딩캠프 처음 시작 모습.
1980~90년대만 해도 그럴 조건이 안 되었다. 무엇보다 컴퓨터 언어가 너무 어려웠다. 코볼(COBOL)이나 포트란(FORTRAN) 같은 것들이다. 중·고교에서 기본 개념과 조작 방법을 배웠지만 실생활에 적용하지는 못했다. 전문가라야 겨우 다룰 수 있었는데다 컴퓨터 자체도 충분하게 보급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은 달라졌다. 옛날 컴퓨터보다 몇 배나 성능 좋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휴대폰을 누구나 들고다닌다. 어려운 컴퓨터 언어는 전문가한테 맡겨두고 대신 그에 바탕하여 쉽게 다룰 수 있는 소프트웨어(SOFTWARE)가 개발되어 나온다.
초보자용으로 전세계 모든 학교에서 사용되는 스크래치(scratch)가 그것이다. 퍼즐을 맞추듯 블록을 끌어당겨 탑처럼 쌓는 방식이다. 조건에 따라 끼워맞추기(coding)를 하면 무엇이든 실행이 가능해진다. 어렵지 않은데다 결과 확인도 눈앞에서 바로 할 수 있어 흥미도 배가된다.
소프트웨어 코딩이 중요해지면서 학교 교육이 의무화되었다. 미국·영국·일본 같은 경우 이미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중학교 1학년에 적용되며 내년에는 초등학교 5·6학년까지 확대된다. 초등학교는 연간 17시간, 중학교는 연간 34시간 이상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아이도 학부모도 선생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경남도민일보와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이 작으나마 도움이 되도록 공부하는 자리를 공동으로 마련했다.
3월 3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통영시 인평동 경상대 해양과학대학에서 초등학교 2~6학년 20명과 함께 진행한 과학코딩캠프였다.
4차산업혁명이나 스크래치 같은 개념은 몰라도 되었다. 네 팀으로 나뉜 채 일정이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프로그램 조작·작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소프트웨어 코딩은 즐거운 놀이였다. 7시간은 초등학생들한테 견디기 어려울 수 있었지만 덕분에 끝까지 활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미로를 살펴보면서 블록 짜맞추기를 어떻게 할지 메모하고 있는 모습.
미로에서 득탬하기를 위하여 블록을 순서대로 짜맞추는 장면.
짜맞춘 화살표 블록에 따라 미로에서 득템을 하려고 움직이는 모습.
오전 프로그램은 미로에서 득템하기였다. (휴대폰·아이패드와 연결되지 않은 언플러그드 상황에서) 전후좌우 화살표가 그려진 블록이 20장 정도 주어졌다. 아이들은 바닥에 그려진 미로 속에 있는 아이템·상대방 위치를 파악하여 그에 맞게 블록을 짜맞추었다.
조립된 블록의 화살표대로 미로에 들어가 움직이면서 상대방에 걸리지 않고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식이었다. 마녀는 피하고 썬더블레이드는 챙겨야 한다. 코딩에 필요한 스크래치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오후에는 먼저 스크래치=아이팝콘 기본 사용법을 간단하게 익혔다. 캐릭터(스트라이프)를 고르고 걸맞은 배경을 선정한 다음 어떤 조건이 되면 어떻게 움직이라는 명령(스크립트)을 블록으로 조립하는 것이었다. 연극 각본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것과 같았다.
센서를 전등에 가까이 대어 밝기의 변화를 알아보고 있다.
아울러 센서를 휴대폰·아이패드와 연결시켜 온도·속도·밝기·기압·자기장 등 주변 조건을 파악하게 하였다. 이로써 '20도 이상(≥)이면 오른쪽으로 다섯 걸음 가라'든지 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었다.
기본 조건이 갖추어지자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머리를 맞대고 스스로 짜맞추기 시작했다. 옆에 선생님들은 단순히 거드는 정도에 그쳤다.
아이패드에서 스크래치로 스크립트를 구성해 보고 있다.
처음 방귀쟁이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센서가 든 비닐봉지를 엉덩이로 깔고 앉아 기압이 바뀌는 정도에 따라 방귀 소리 횟수와 크기를 조절했다. 자기가 구성한 프로그램에 따라 여기저기서 방귀 소리가 나는 것이 못내 신기했다.
풍선에 센서를 달아 하늘로 날리고 있다.
잔디밭에 나가 풍선을 띄워올리면서 기압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체크해 보았다. 열대여섯 개를 한 데 묶은 풍선에는 센서가 달려 있었다. 풍선이 높아질수록 기압은 떨어졌다. 이는 아이팝콘에 그대로 나타났고 스크립트는 기압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도록 짜여 있었다. 스프라이트는 이에 맞추어 좌우로 움직이거나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마지막은 '금고를 열어라!!!'였다. 한 학생이 금고에 설정된 비밀번호 네 개를 알아내어 같은 팀원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센서를 x축 왼쪽으로 움직이면 1, x축 오른쪽은 2, y축 위는 3, y축 아래는 4, 하는 식이었다.
금고를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종이에 적어 맞추어 보고 있다.
스크립트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성이 가능하기에 팀마다 제각각 달랐다. 단박에 다 맞힌 팀은 없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틀리고 다시 짜고 틀리고 다시 짜고를 되풀이하면서 아이들은 소프트웨어 코딩의 실제를 좀더 깊숙하게 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놀라웠다. 보통은 15분을 넘기기 어려운데 금고 열기 프로그램은 한 시간 남짓 했어도 산만해지지 않았다. 아이들과 소프트웨어 코딩은 코드가 잘 맞았다. 여태껏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어도 한 나절만에 모두 낯설지 않고 익숙해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흥미롭고 재미있게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간단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로 협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면 되었다. 다음에도 언제든 기회가 주어지면 기꺼이 다시 협력하여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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