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기자들이 아무렇게나 익명 보도를 남발하는 이유

기록하는 사람 2018. 4. 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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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양산지청은 지난 17일 작업자가 사망한 사고가 난 양산 ㄱ산업에 대해 안전진단 명령과 함께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창원시 신촌동 한 스테인리스 강판업체에서 … 몸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ㄱ(26·진주시 도동천로) 씨가 압사했다.”


위에 인용한 글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전하는 기사 중 일부다. 사고가 발생한 회사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하고 있다. 왜 회사 이름을 밝히지 못했을까. 사실관계 확인이 미흡해서? 그 회사가 명예훼손으로 걸 수 있어서? 아니면 로비를 받아서? 셋 다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그냥 관성적으로 그랬을 것이다.


익명의 문제는 없을까? 당연히 있다. 양산에 공교롭게 ㄱ자로 시작하는 업체가 있다고 치자. 그 회사에서 발생한 사고는 아니지만 그렇게 오인될 수 있다. 두 번째 기사 또한 창원에 있는 스테인리스 강판업체 모두가 의심받게 된다.


의료사고에 대한 보도도 그렇다. 관성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병원 이름을 익명처리하고 있다. 물론 의료사고 여부가 확실하지 않거나, 환자 가족과 병원 입장이 맞서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예 기사를 쓰지 말거나, 양측 주장을 충분히 담아주면 된다. 심지어 병원 측이 과실을 인정한 경우에도 익명처리하는 기사가 있다. 이런 경우 그 지역의 모든 병원이 피해를 입는다.


기자들의 이런 관성은 왜 생겼을까? 그게 ‘안전빵’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기사에 잘못이 있더라도 익명이니까 뭐 문제가 되겠어? 하는 안일함 때문일 것이다.


익명 보도가 원칙이라고 잘못 배웠을 수도 있다. 얼마 전 수습기자 교육을 하던 중 형사소송법을 읽도록 했다. 그랬더니 법 112조(업무상 비밀과 압수)와 149조(업무상 비밀과 증언거부)의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취재원 보호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며 씩씩거리는 기자가 있었다.


이렇듯 상당수 기자들은 ‘취재원 보호’라는 말을 마치 모든 기사의 출처를 익명으로 할 수 있다는 걸로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원 보호는 아주 예외적으로 공익제보자 또는 내부고발자에나 해당하는 개념이다.



한국 신문윤리실천요강은 ‘취재원을 원칙적으로 익명이나 가명으로 표현해서는 안 되며 추상적이거나 일반적인 취재원을 빙자하여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정해놓고 있다. 미국신문편집인협회 언론규범(Canons of Journalism)도 ‘비밀을 지킬 명확하고 절실한 이유가 없는 한 취재원은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되어 있다. 원칙은 실명 보도이고 예외적으로 익명도 허용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언론중재위원회 양재규 변호사의 말이다. “사회 구성원 일반의 건강이나 안전, 행복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써 그 사건 당사자나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 정보를 줄 필요성이 있는 경우라면 반드시 실명 보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날짜를 바꿔 팔았다고 한다면 마땅히 해당 마트의 이름을 공개해야 한다.”


특히 산업재해는 한국사회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연간 2000명, 하루 6명이 일터에서 죽어가는 산재 사망 세계 1위 국가가 한국이다. 지난 촛불집회에서 한 노동자의 절규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매일 여섯 명이 일터에서 죽는다는 사실이 매일같이 뉴스에 나오면 이 나라가 여태 이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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