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지역에서 출판하기

나는 그때 왜 풍운아 채현국을 알아보지 못했나?

기록하는 사람 2016. 5. 9. 14:52
반응형

만화가 천명기 님이 [풍운아 채현국](김주완 기록, 도서출판 피플파워)를 읽고 페이스북에 올린 서평과 감상입니다. 천명기 님의 허락을 받아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깁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사람 [풍운아 채현국]을 읽고-천명기


대개의 사람들은 유명인과 사진 한 장에 악수 한 번 나눈 것만으로도 대단한 친분인양 자랑하고 으스대기를 즐긴다. 개중에 간혹, 그 유명인이 유명해 지는데 자기가 지대한 역할을 했노라 과하게 오버하는 이도 있다. 우리 모두 지난 4월 13일 이전 상당기간, 그만한 오버의 궁극을 제대로 목도한 바 있다. 친박, 진박, 충박...


나 또한 유명인과 사진을 찍을 때 마다 그만한 과시 용도로 활용을 서슴지 않는다. 당 페이스 북에 증거 사진도 몇 장 걸려있다. 시골의사 박경철, 만화가 박재동, 강원도지사 최문순. 그리고 시사만화계에서는 꽤 이름난 시사만화작가들...


그런 사진만 찍은 것으로 친하다 내세우는 관계가 대개 그렇듯 나는 그 분들을 잘 알지만, 그 분들은 나를 거의 모른다.

 

그렇다고 그 자랑과 과시를 좋다 나쁘다 가치평가 할 필요는 없겠다. 인간의 실존적 멘탈관리에 필요충분조건이라 여기면 그만일 터.


양산에 웅상읍이란 동네가 있다. 십수 년 전 부산에 일자리를 얻어 내려가면서 터를 잡았으나 영문도 모르고 짤린 뒤, 오도가도 못하고 반 백수로 7년 여를 살았던 곳.


그저그런 도농복합 개발지구였던 탓에, 국문과 졸업장과 짦은 직장 경력으로 그 동네에서 벌어먹을 수단이라고는 입시학원 국어강사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렇게 학원강사로 나날의 땟거리 걱정을 여미던 중에, 놀이와 여행, 생태체험을 주 커리큘럼으로 운영하는 어느 방과후 어린이 대안학교와 연이 닿았다.


마침 그 학교 정체성에 만화 그리는 재주가 아이들 체험수업용으로 맞춤했고, 그 보다는 워낙 사람과 술자리를 좋아라던 학교 운영자 이 모 선생님과의 합이 제대로 맞는 바람에 금방 막역한 음주소울메이트로 발전(?)했다.


예의 그렇듯, 술자리가 잦으며, 그만큼 술자리 인맥도 늘어가게 마련. 여느해 이맘 때다.


선생님 학교 주관으로 그 해 어린이날 행사를 그 동네 고등학교 운동장을 빌어 진행했고, 나는 캐리커처 작가로 행사에 참여했다. 행사 뒤풀에서 이 선생님왈, ‘천 작가 정서에 딱 어울리는, 아주 골(!)때리는 영감님 한 분 있다’며 낯선 영감님 한 분을 소개했다.


채현국 어른. @김주완


그러나, 아담한 키와 반 백의 머리스타일, 순수 하달까, 장난끼가 많아 뵌달까를 단정하기에 다소 애매한 첫인상 외에는, 그닥 ‘골’ 때릴 만한 면면을 느낄 수가 없었고, 소주 몇 순배가 돌아가는 동안에도 영감님에 대한 특별한 호기는 일지 않았다.


이 선생님은 술자리 내내 ‘한 때 엄청난 돈을 버셨지만, 그 많던 돈 다 써버리고 없다’, ‘본인 입으로는 하등 별 볼 일 없는 동네 영감일 뿐이래지만, 저래뵈도 오늘 우리가 어린이날 행사용으로 빌린 효암고등학교 운동장 주인이다.’ ‘이사장인데도 불구하고 월급한 푼 안 받고, 맨날 화단에 앉아서 잡초만 뽑고, 애들한테 싱거운 농담이나 하고 산다’ 는 등으로, 영감님이 왜 ‘골’ 때리고, ‘천 작가’ 정서에 딱 맞는 분인지를 설명하는데 그 자리에서의 당신 대화 몫을 다 썼지만, 나는 끝내 그 영감님이 왜 ‘골’때리는 분인지를 알 수 없었다.


한 때 많은 돈을 벌었다가 좋은 일에 다 써버린 예는, 우리나라 역대 김밥 할머니들에서만 헤아려도 차고넘치는데다, 여느 교육재단 이사장 씩이나 되는 분이 일체의 학교일에 ‘참견’을 마다하고 화단에서 풀 뽑을 일이나 찾을 정도로 소탈한 건, 그 자체로 주위에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는 로망에 따른 행보일 수도 있으며, 이하 선생이나 학생들에의 만만한 학교 소사급 처신은, 당대 노무현 대통령이 젊은 검사들과의 대화까지 시도하는 ‘탈권위주의’에 비할 바가 아니란 생각들이, 이 선생님의 소개말씀 단락마다에 앞섰다.


그래서 그 내용으로만 조합해서 판단한 결론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사회에서 쉽게 찾을 수준의 ‘좋은 영감님’이었을 뿐, 감동내지 존경, 또는 내 정서에 딱 부합할 할 정도의 ‘골’때리는 영감님은 아니었다. 이후 그 영감님을 다시 술자리에서 만날 일은 없었고, 그 영감님의 기억은 내 뇌의 기억창고 한구석에나 쳐박혀 있었다.


필자가 이 영감님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어버이연합 ’ 덕분이다. 일당 2만 원에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그 연세의 어른스러움을 몽땅 팔아버린 노인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하나 싶을 때,

“젊은이들아 잘 봐둬라, 그리고 절대 잊지 마라. 못 배우고 생각없이 살다가 나이만 먹으면 어떻게 늙어 버리는 지를, 그 모습이 바로 저기 있다”는 늬앙스의 헤드 문장으로, 그동안 ‘어버이 연합’이 까먹은 우리시대 바람직한 노인들 처신 기대치 평균을 확 올려버린 한 인터뷰 기사에서였다.


그 기사의 사진에 든 영감님의 얼굴이 그때 그 영감님,

풍운아! 채현국.



그렇게 일말의 놀라움과 낯익음으로 검색하고 찾아낸 책이 바로 [풍운아, 채현국]이다. 이 책을 읽고서야, 당시 이 선생님께서 왜 이 영감님이 ‘골’ 때리는 영감님이며, 왜 이 시대 노인들이 이 영감님처럼만 살면 세상이 꽤 아름다워 질것이라 열변하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그 때 이 선생님이, ‘한 때 돈을 많이 벌어서 다 썼다’가 아니라 지금의 삼성이나 현대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쌓았으나 독재와 결탁하기 싫어서 몽땅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 줘버리고, 권력과 돈을 멀리한 시시한 삶이 최고의 삶임을 강조하고 실천하고 계신 영감님이라는 [풍운아 채현국]대로의 디테일한 설명만 해 주셨어도, 그렇게 그 동네에 사는 동안 한 번만 달랑 뵙고 잊어버리진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풍운아 채현국]을 읽는 내내 떠 올렸다.


그 어마어마하게 벌었던 돈을 독재권력과 결탁하기 싫어서 몽땅 나눠 줘버린 사람의 일대기와 그 인생철학이 궁금하지 않으신가? 당신은 그저 학교 화단 풀이나 뽑으면서 시시하게 살 뿐인데, 왜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노인 로망으로 삼는지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풍운아 채현국]을 엄지 척!으로 권한다.


특히, 그동안 지하철이나 버스등에서 노인들에게 기꺼이 자리 양보를 해 오던 마음에, 노골적으로 자리 양보는 개뿔!이라는 마인드의 싹과 뿌리가, 어버이 연합이나 보수참칭 엄마부대들의 추태를 거름과 양분으로 마구 자라는 느낌을 받은 젊은이들에겐, 제대로 강력한 제초제 역할을 해 줄 텐데...


[풍운아 채현국]만으로 우리시대 좋은 어른의 총량이 다소 부족하다 싶으면 같은 저자가 내 놓은 [별난 사람, 별난 인생]도 추천한다. 책에는 [풍운아 채현국] 이상으로 감동을 주는 우리시대 좋은 어른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어버이날, 현금을 최고로 여기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께 기왕이면 이 책들에 갈피로 현금을 끼워서 드리면 어떨까 싶다. 부모님들의 그만한 독서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어버이 연합급 꼰대성극복 면역력이 장착될 것이라 믿어본다.



글쓴이 천명기(만화가)

*위에 언급한 그 대안학교 이름이 ‘양산어린이창조학교’다. 지금도 여전히 ‘성적위주교육, 입시제도박멸’ 기치를 걸고서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과 들로-심지어 그 사모님은 매년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인도와 파키스탄 오지등을 1년 주기로 돌며 아이들 멘탈 강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계신다- 다니며 아이들의 호연지기!를 배양함과 동시에 성적스트레스를 정화해 주고 계신다. 경산에 올라온 십여 년차에도 때마다 안부통화 끝에 가끔의 장거리 음주미팅을 갖곤 한다.


참고로 양산창조어린이 학교는 문재인 더민주당 전대표 별가 바로 아래 있다.


그 선생님과 문재인 대표는 예전부터 형님동생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신은 그저 필부일 따름이라 하시지만, '시시하게 사는 게 최고로 잘 사는 거'라는 채현국 할배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인생 그까이 거 대충!’ 멘탈을 장착하신 분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아이들과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감성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디테일한데, 연중 거의 367일을 달리는 나만큼이나 술을 좋아하시지만, 주량은 나보다 한참 못 미친다는 게 유일한 약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