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우리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다 홀연히 사표를 내고 중국 유학길에 오른 기자가 있습니다. 이균석 기자였는데요. 그 친구가 중국에서 현지 신문 한 뭉치를 소포로 보내왔습니다. 우리 신문 편집과 제작에 참고하라는 뜻이죠. 남방주말의 1면. 우리나라의 연평도 포격사건이 헤드라인이다. 남방주말의 2면 상단입니다. 이건 또 다른 신문인데요. 편집자와 미술편집자의 이름을 명기하고 있네요. 여긴 주편(주편집자), 편집, 미편(미술편집), 책교(책임교열)로 구분해서 명기했습니다. 책임편집과 편집, 판식, 2판 편집자의 이름까지 명기했군요. 이건 남방주말의 시국 섹션인데요. 이 지면 역시 책임편집자와 보조편집자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이 신문은 지면 상단이 아닌 하단에 책임편집과 편집, 책임교열자의 이름을 밝혀두었습니다.
그래도 친정이라며 잊지 않고 싸서 보내준 정성이 고맙네요. 그 친구가 보내준 편지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이래저래 모인 신문을 버리기가 아까워 부쳐 보냅니다. 레이아웃 정도는 참고할만 하겠지요.
중국언론은 크게 '체제 내 언론'과 '체제 외 언론'으로 나눕니다. '신화사'나 <인민일보>, <중국청년보> 등은 모두 국가기관이나 중국공산당에서 관리하는 '체제 내 언론'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 외 민간기업이 만든 신문이 체제 외 언론입니다. 체제 내 언론 기자들은 근무환경이 상당히 좋습니다. 돈 이야기가 아니라 어딜 가도 '먹어준다'는 겁니다. 관련자료를 얻거나 인터뷰 따내기도 쉽겠지요. 그래서 체제 외 언론 기자들이 '나 같으면 발로로 기사 쓰겠다'고 비아냥대기도 하지요.
실제 민간자본으로 만들어진 신문사들이 꽤 괜찮은 기사를 써내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보낸 것들 중에 <남방주말>이란 신문을 보면, 한 면이나 혹은 두 면을 모두 할애해 한 건의 기사를 싣습니다. 대부분 해설이나 탐사 등등 깊이 있는 내용입니다. 이 신문의 모기업은 광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10종류가 넘는 신문을 찍어내는 언론 대기업이라 할 수 있지요.
중국 언론계는 상당히 활기차 보입니다. 한창 발전 중이어서 그런가요. 열정 가득한 기자들도 꽤 보입니다. 아직은 '신문위기'라는 걸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보는 대학생들이 꽤 많더라구요. 하지만 10대 20대 아이들이 문자보다는 디지털 이미지에 더 익숙한 걸 보면 언젠가는 중국 신문들도 새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겁니다.(후략)"
그 친구가 보내 준 중국신문들을 책상 옆에 두고 틈틈이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게 있더군요.
모든 지면의 상단 또는 하단에 책임편집(責任編輯)자의 이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책임편집자뿐 아니라 조리편집(助理編輯)자의 이름도 있고, 미술편집, 책임교열자의 이름도 있더군요. 어떤 지면은 '실습생'의 이름도 상단에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들의 이름 옆에 이메일과 전화번호까지 적어뒀더군요. 아마도 편집이나 기사배열에 대해 할말이 있는 독자는 메일이나 전화로 연락달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어떤 신문은 책편(責編), 편집(編輯), 미편(美編)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었는데, 아마도 '책편'은 책임편집자, 즉 데스크를 뜻하는 것 같고, '편집'은 편집기자, '미편'은 미술편집의 줄임말로 보입니다.
반면 '체제 내 언론'인 <인민일보>에는 그런 편집자의 이름을 찾을 수 없더군요. 우리나라 신문 역시 기사를 써낸 기자 이름은 반드시 명기하는 '기자실명제'는 정착되어 있지만, 편집기자나 교열기자의 이름을 명기하는 신문은 없습니다.
흔히 우리는 중국을 우리보다 더 폐쇄적인 사회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에서도 '체제 외 언론'은 우리나라 신문보다 훨씬 편집도 발랄하고 역동적이었습니다. 또한 편집기자의 이름까지 지면 상단에 표기하고 연락처를 공개함으로써 독자의 피드백을 받겠다는 자세 역시 우리보다 훨씬 개방적으로 보입니다. 특히 <남방주말>은 언론통제가 심한 중국사회에서 가장 반체제적 논조로 탄압을 받는 일도 많은 신문이라더군요.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편집자에게 책임성과 자부심을 부여하는 차원에서 우리 신문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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