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1951년 발표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요즘 읽고 있다. 어느 날 친구랑 <호밀밭의 파수꾼> 얘기를 하게 됐는데, 내가 읽은 적이 없다니까 '아직 그런 명작조차도?' 살짝 놀라는 낌새를 보였기 때문에 손에 잡은 책이다.
소개글은 이 소설을 두고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학교에서 또 퇴학을 당해 집에 돌아오기까지 며칠간 겪는 일들이 독백으로 진행되는 작품'으로 '성에 눈떠 가는 소년의 눈으로 본 세상과 인간 조건에 대한 예민한 성찰을 통해 청소년과 성인 모두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했다.
지금 중간 정도까지 읽었는데, 죽 펼쳐지는 줄거리나 주제랑은 관련없이 주인공 콜필드가 겪는 선생들의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간다. 아무래도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아 그런 모양이다.
이런 대목이다. "'입장을 바꿔서 자네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 솔직하게 말해 보도록.' 선생이 말했다. 선생은 내게 낙제점을 준 데 대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나는 정말 천하에 둘도 없는 저능아이거나, 바보일 거라고 선생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선생이었다 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며…… 지껄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생이 내 허튼소리를 가로막았다. 선생이란 사람은 언제나 말을 자르기 마련이다."
다른 구절도 있다. "'물론 장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어요. 그럼요 걱정되고 말고요. 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정도는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죠.' '앞으로 걱정하게 될 거다. 틀림없이 걱정하게 될 거야.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지 않을까 모르겠구나.' 난 선생의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마치 내가 시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글귀도 나온다. "'(자네는) 전혀 아는 게 없었어.' 선생은 다시 한 번 말했다. 때때로 이런 것들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처음 말했을 때 인정했는데도 똑같은 말을 두 번씩 하는 것 말이다. 그걸로도 모자라는지 선생은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했다."
소설에서 이런 구절을 드문드문 읽으면서, 내가 겪었던 70년대 중고등학교 선생님과 어쩌면 저렇게 같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 때도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무시하고 인격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게다가 폭력까지 심각하게 휘둘렀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올해 고등학교 들어간 딸과 그 친구들도 선생님께 그런 대접을 받고 있다는 데 있다. 정말 까마득한 낭떠러지 저 아래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요즘은 폭력은 그리 심하지 않다고 한다. 2005년 당시 스승의 날을 앞두고 촌지 주고받기 따위가 겁이 나 학부모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을 내다붙인 경남 마산의 합성초등학교 정문 풍경. 경남도민일보 사진.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말을 해보라고 했다. 그러고는 '내가 먼저 말할게' 하면서 선생님이 자기 얘기를 한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말을 하려고 하면 '선생님이 얘기하고 있는데 어디 끼어드느냐'고 그런다.
선생님이 한 아이에게 악기 연주를 시켰다. 아주 못했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시범을 보여달라고 했다. 선생님이 악기 연주를 했는데 그리 썩 잘하지는 못했다. 박수 소리가 조금 나왔다.
그런데 다음에 시킴을 받은 아이가 악기 연주를 아주 잘했다. 박수소리가 많이 나왔다. 그러자 선생님이 그 학급 태도 점수를 깎아버렸다. '너희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너희들 마음에서 악(惡)을 쫓아내기 위해서'라며.
어떤 아이가 증명사진을 새로 찍어 내고 싶다고 했다. 사진이 생각보다 잘 나오지 못해서 그런다고 했다. 선생님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다시 찍어 내도 소용이 없다. 차라리 성형 수술을 해라. 아이는 바로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다른 어떤 아이가 정규 교과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가 미술 과외를 받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너는 성적이 안 돼 미술대학쪽으로 가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 얼굴에 난 여드름이 흉칙하다, 인스턴트 과자를 좀 줄여라고 말했다.
내가 전해들은 경남 창원 한 고등학교 교실 풍경이다. 1950년대 미국 교실 풍경이나 1970년대 한국 교실 풍경이랑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선생님이란 것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우리나라에서 학생에 대해 선생님은 절대 권력이다. 선생님도 나름으로 아이들 이끌고 다스리는 데 어려움이 많은 줄은 알지만, 다른 직업인 대부분이 대등한 인간 관계를 전제로 하는 데 견주면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관계는 특권이라 할만하다.
이런 특권이나 절대 권력은 없애거나 줄이는 장치가 없다. 그렇기에 선생님이 아이들을 계속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아도 아무 탈이 없다. 1970년대도 그랬고 2010년대도 그렇다. 내가 당했던 일을 자식이 고스란히 그대로 당한다는 사실이 암담하다.
물론 나는 안다. 선생님들이 그러든 말든 아이들은 다들 자기 나름대로 자란다는 사실을. 그렇게 자라서 다들 자기 깜냥대로 선생님을 비롯해 이런저런 어른들이 쳐놓은 이런저런 울타리들을 뛰어넘어 나아간다는 사실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도 그렇게 할 것 같다.
그렇기는 해도 나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기를 바란다. 그런 상처가 상처로만 남지는 않고, 아이들이 어떻게 그것을 다스리고 견디어내느냐에 따라 때로는 커다란 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도 나름 알지만.
그냥, 스승의 날을 두고 한 번 아무 생각없이 떠올려 본 우리 현실이다.
김훤주
미디어 비평 전문 인터넷 매체 <미디어스>에 보낸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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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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