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뒤통수 치는 인터뷰 관행,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록하는 사람 2010. 4. 2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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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문형배 판사 보도를 보고 떠오른 생각

중앙일보 이현택 기자와 만나 나눈 이야기가 엉뚱한 말로 바뀌어 보도됐다는 부산지법 문형배 부장판사의 글(☞중앙일보 보도 유감)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문형배 판사는 자신의 글에서 "인사하러 온다길래 승낙하였고, 차를 대접하며 가볍게 몇 마디 한 것인데, 이를 마치 제가 기자와 인터뷰하는 것을 승낙하고 인터뷰를 한 것처럼 기사화하는 것이 저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이라고 썼다.

바로 이 대목에서 7~8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지역의 시민운동 명망가 한 분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지역사회에서 물의를 빚고 있던 다른 시민단체에 대한 비판성 코멘트를 받아 기사화한 적이 있었다. 기사가 보도되자 코멘트를 해준 그 분은 크게 당황하여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그냥 김 기자와 잘 아는 사이끼리 하는 말이었는데, 그걸 내 이름까지 넣어 보도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 나와 통화하면서 '취재'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지 않느냐"는 요지였다.

문형배 판사를 인터뷰한 것처럼 보도한 중앙일보 4월 22일자 7면 PDF


나는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기자가 전화를 해서 뭘 물어보는 건 당연히 취재라고 생각하셔야죠"라고 되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다행히 그 분은 더 이상 따지거나 원망하진 않았지만, 그 때부터 나는 취재원에게 전화 코멘트를 받는 방식을 좀 바꿨다. "이런 취지의 기사를 쓰는데, 이에 대한 코멘트 하나 넣으려 합니다"라는 말을 반드시 하고 난 뒤, 그의 말을 따는 식이었다.

인터뷰인줄도 모르고 한 말이 신문에…

사실 기자사회에서는 인터뷰를 하거나 코멘트를 딸 때 그걸 미리 고지하지 않는 걸 취재의 기법 중 하나로 생각한다. 특히 공식 인터뷰를 꺼리는 어려운 상대에게는 이번 중앙일보 기자처럼 그냥 차나 한 잔 하자고 한 뒤,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유도질문을 던져 그걸 기사화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 일이다.

이런 식의 취재가 과연 옳으냐 그느냐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놓고 본다면, 노련한 기자일수록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낸다. 서툰 기자일수록 "지금부터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며 정색을 하고 덤벼든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취재기법 중 하나라 하더라도, 최소한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설 때에는 '이런 이런 취지로 기사화를 해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하는 게 옳다고 본다. 특히 기사화하려는 내용이 그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어떤 '팩트'가 아니라, 그의 생각이 담긴 '말'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게 기본 예의다.

물론 기자가 볼 때 상대가 반드시 단죄해야 할 악인이라면, 그의 문제성 발언을 그대로 보도함으로써 여론의 판단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라도 이번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편의 박기준 부산지검장 전화통화 내용처럼 아예 녹음을 해야 문제가 없다. 만일 이번 중앙일보 이현택 기자가 녹음도 없이 문형배 판사의 말을 그렇게 보도했다면, 그건 자신이 가진 기자권력을 지나치게 과신한 나머지 문 판사를 아주 우습게 본 것이다.

중앙일보 기자 만나려면 녹음기는 필수

상대가 판사였기에 망정이지, 만일 중앙일보 기자보다 훨씬 큰 '정치적 발언권'을 갖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현 정권의 실세 국회의원쯤 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설사 그 보도가 사실이라도 본인이 강하게 부인해버리면 기자만 바보되기 십상이다.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의 말을 보도했다가 본인의 완강한 부인과 법적 소송에 따라 정정보도를 낸 경북일보.


뿐만 아니라 권력자가 자신의 발언을 허위로 지어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이라도 낸다면 어쩔 것인가? 이는 얼마전 'TK X들 정말 문제 많다' 발언을 둘러싼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과 경북일보의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언론이 수세에 몰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명예훼손 사건에서 피고소인이 명예훼손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기자가 허위로 지어내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있는가? 게다가 그 자리에는 증인이 되어줄 다른 배석자도 없었다.


이로 보아 만일 녹음도 없이 이런 기사를 썼다면 중앙일보 기자는 자신의 기자권력으로 부장판사 한 명쯤은 얼마든지 바보로 만들 수 있다는 오만한 기자정신의 소유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론 중앙일보 기자, 특히 피치못해 이현택 기자를 만나게 될 사람들은 미리 녹음기를 준비하는 게 좋겠다. 자칫하면 자신의 말이 엉뚱하게 왜곡돼 보도될 수도 있으니, 방어차원에서 아예 취재원이 녹음을 해두라는 말이다.

이현택 기자에겐 다행일지도 모르겠지만, 문형배 판사가 고소까지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또한 문 판사도 미처 녹음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만일 중앙일보가 이 부분을 사실에 기초하여 작성하였다면 증거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기자가 녹음을 했다면 녹음을 저에게 보내주십시오. 중앙일보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제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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