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선암사에서 처음 본 절간 부뚜막 풍경

김훤주 2010. 3. 28. 18:28
반응형

3월 12일 순천 선암사에 갔다가 귀한 구경을 했습니다.

2층 규모 뒷간도 멋있었고, 아직 피어나지 않은 홍매화들을 보면서 봉오리 속에서 막 몸부림을 쳐대는 꽃들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잎지는 큰키나무들 헐벗은 모습에서는 허전함과 아울러 가을에 가장 아름답게 이별을 했던 이파리들을 안에서 다시 뿜어내려는 기색을 살필 수도 있었습니다.

흐르는 냇물도 좋았고, 발치에서 조그맣게 움트는 초록 풀들도 참 싱싱했습니다. 모르는 이들도 없지 않겠지만, 저기 풀들도 봄을 맞아 확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피었다가 얼어터졌다가를 되풀이하며 처절하게 봄을 맞이한답니다.

그러나 이번에 선암사에서 본 으뜸 구경거리는 절간 부엌이었습니다. 부엌이라기보다는, 밥짓는 데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반찬 만드는 자리는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절간에서는 바깥에서 온 사람들에게 밥짓고 반찬 만드는 공간을 보여주지 않는 줄 알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내밀한 공간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선암사가 실수를 했는지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대웅전 옆에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출입금지'라고만 적혀 있고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하는 공간인지 몰라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출입금지'에 눈길이 끌려 안을 들여다봤더니 저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절간 부엌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창녕 관룡사에서 두어 달 절밥을 먹은 적도 있었지만 그 때조차 절간 부엌을 봤던 기억은 없습니다.

이번에 볼 때 아주 색달랐던 대목은 조왕(=부뚜막신)을 모시는 자리였습니다. 민속신앙이 불교신앙과 엉겨붙은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엉겨붙음은 외래 종교가 토착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보기도 하지만, 제가 이날 생각이 든 바는 그런 따위와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한자로 '나무조왕위'라 적혀 있습니다.

밥을 지을 때마다 저기 조왕위께 정성을 들이고 기도를 바친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밥을 지을 때마다 촛불을 켜고 절을 하고 염불을 하겠지요.

기도를 먹고 정성을 받으면서 지어지는 밥. 참 맛이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저런 밥을 먹는 스님들은 참 복받은 인생이라는 생각도 절로 들었습니다.

아울러 세상만물에 모두 정령(精靈)이 들어 있다는 생각도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정령이 들어 있는지 어떤지까지 제가 알지는 못합니다만. 그러나 저는 요즘 들어 애니미즘-범신론에 가까운 생각을 하기는 합니다.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세상만물 모든 것에 정령이 들어 있다면, 세상에는 사람이 함부로 해도 되는 것또한 하나도 없습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정령이 이런저런 작용을 할 수 있고 이런저런 마음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南無)가 적혀 있습니다. 불교에서 나무는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냥 평범하게 얘기한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 하면 '아미타부처께 귀의하고자 합니다'가 된답니다.

여기에 보니 나무조왕위라 적혀 있습니다. 부뚜막신에게 돌아가고자 합니다가 되겠습니다. 부뚜막신을 부처와 동격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동격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그만큼 존경하고 받든다는 정도가 되겠지요. 부처를 받들고 부뚜막신을 받들고 밥을 받들고 밥을 먹는 인간을 받듭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모두가 모두를 받듭니다.

가까이 부뚜막이 있고 멀리 스님들 거처가 있습니다.


신발이 있는 댓돌도 있고 신발이 없는 댓돌도 있습니다.


안과 밖, 밝음과 어둑어둑함의 대조가 좋습니다. 옛날 부엌답게 어두컴컴합니다.


많이들 허름하기도 합니다.


김훤주

반응형